"달성 10경 포함 '남소' 성당못 아닌듯" 최진문 대구환경운동연합 편집위원장 주장 | ||||||||
조선 전기의 대학자 서거정(1420~1488)이 쓴 '달성 10경' 중 제5경 '남소하화(南沼荷花)'의 한 구절이다. 서거정은 '남소'에서 피어난 연꽃의 아름다움을 칠언절구 시로 응축해 달성 10경으로 '남소'를 꼽았다. 그간 대구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 내 '성당못'으로 알려져 있던 '남소'. 그러나 달성 10경의 남소는 성당못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역 학계와 문화해설사들에 따르면 '남소'는 남쪽 못이란 뜻으로 성당지(聖堂池), 지금의 성당못을 가리킨다는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최근 대구읍성의 달서문 바로 옆, 천왕당못(현 서문시장)이 있던 자리가 '남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소가 천왕당못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최진문 대구환경운동연합 편집위원장은 "'남소'의 '소'는 늪을 뜻하는 말인데다 해동지도(18세기 중반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와 여지도(18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 등 고지도에 기록돼 있는 달서문 옆의 못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남소가 지금의 성당못이 아닌 서문시장 자리에 있던 천왕당못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 씨의 주장은 서거정과 관련한 역사적 상황도 고려한 것. 최 씨에 따르면 고려 초기 대구현은 수성군에 포함돼 있다가 조선시대 세종 때(1419년) 대구군으로 승격되고 수성군은 수성현으로 격하, 도시 세가 역전됐다는 것. 달성은 신라 이후 조선 초까지 대구군의 중심지였으며, 달성 서씨는 고려 중기 이후부터 대구군을 대표했던 호족. 때문에 달성 서씨 집안인 서거정은 성당못이 과거 수성군 지역이었기 때문에 대구현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수성군 지역의 성당지는 서거정의 달성 10경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는 달성 10경에 수성군 지역의 가창, 앞산, 성산 등 많은 명승들이 포함되지 않은데도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그 당시 고문헌을 살펴봐도 대구에 있던 못 중 천왕당못은 없었다."며 "고지도에서 달서문과 가까운 곳에 못이 표기됐다는 이유로 남소를 천왕당못이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고지도의 특성상 중요 부분을 확대해 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며, 결정적으로 신천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 있던 수성군 지역의 입암, 침산, 도동의 측백수림 등도 달성 10경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세종 때 발간된 경상도지리지에는 성당못이 수성현에 속해 있으며, 팔공 10경 중 도동과 팔공의 경우 대구와 큰 알력 다툼이 없었던 해안현에 속했기에 10경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구신택리지'를 펴낸 권상구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대구신택리지를 만들면서 지역사 중에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역사적 사실 등 기본정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최 씨의 주장도 체계적인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달성 10경 중 하나인 '입암'의 경우 그간 '건들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건들바위가 입암이 아니라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더 얻고 있어 이번 남소의 위치에 대한 이견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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