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정상에서 2007년 10월 3일 개최된 제4340년 개천절 행사
팔공산과 금호강
2007년
태초에 생성되었을 팔공산은 오늘도 변함없이 흰 구름을 머리에 이고 달구벌의 영고성쇠를 지켜보며 묵묵히 서 있다.
돌이켜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한반도에 오악(五岳)을 두어 국기(國基)를 다질 때, 팔공산을 중악(中岳)으로 해서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나라의 융성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수도를 경주에서 이곳으로 옮기려 했던 연유도 기실 웅장한 팔공산과 넓고 기름진 달구벌이 범상한 곳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대표할 명산으로 설악을 꼽는다. 웅장한 산세와 흐름세가 넉넉한 폭포, 거대한 바위들이 뒤엉켜 한 폭의 동양화처럼 빼어난 경치를 연출하는 산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미술사학자 고(故) 김원룡님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 남산을 일러 ‘한국미의 보고’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나의 견해는 다르다. 나는 팔공산이 설악산보다 낫고 경주 남산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설악은 경치는 아름다우나 혼(魂)이 없는 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설악에는 보물 2점밖에 없다. 그러나 팔공산에는 보물보다 격이 높은 국보가 2점이요, 보물은 무려 20여 점이나 있으며 보다 격이 낮은 지방문화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말하자면 설악은 겉모양이 반지르르한 기생의 자태라면 팔공산은 고결한 인격과 부덕을 겸비한 양가의 맏며느리로 비유할 수 있다. 또한 김 교수의 지적처럼 경주 남산은 55처소의 사지(寺址), 38기의 석탑, 59체의 석불이 있고. 평생을 경주사랑에 바친 윤경렬님은 남산의 불상이 신라인의 정겨운 모습을 닮아 한국미를 대표한다고 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훌륭한 작품들은 현재 자취로만 남아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학자들이나 신라 유적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붐빌 뿐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자 찾는 참배객은 적다는 뜻이다.
반면 팔공산은 어떤가. 비록 불상의 수나 불적은 남산에 미치지 못하나 사시사철 참배객이 끊이지 않고 있어 오늘날의 불교성지는 팔공산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팔공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본사인 동화사와 10교구 본사인 은해사가 있고 조계종의 중흥조이신 보조국사가 거조암에서 고려불교를 개혁하기 위하여『권수정혜결사문』을 쓰셨으며, 부인사는 고려가 국운을 걸고 만든 초조대장경을 봉안했던 호국의 절이며 그 외에도 수많은 사찰과 암자에서 비구, 비구니가 불국정토를 구현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곳이다. 일명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 부처님은 기도하는 이마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 전국 각처에서 참배객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과연 어느 산이 있어 이보다 더 많은 중생을 끌어 들이고 있는 곳이 있으랴.
또한 팔공산은 종교적으로도 편협하지 않아. 천주교도 포용하고 있으니‘한티성지’가 그것이다.
신라 때에는 삼국통일의 초석이 김유신 장군이 수련했고, 임란 때에는 지역의 의병들이 공산성을 거점으로 항전했을 뿐 아니라, 사명당이 동화사를 승군본부로 삼아 왜적과 대항했으며 6.25동란 시에는 북괴군을 저지함으로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한 반격의 거점이 된 곳이 팔공산이다.
문화유적은 물론 동·식물의 종 다양성도 풍부하여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공원 지정 당시 식물 132과 680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최근 면밀히 조사한 결과, 1,100여 종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학술상 매우 중요한 산으로 대두되었다.
30여 개의 아름다운 계곡과 맑은 물, 수많은 전설, 봄의 붉은 진달래, 여름의 우거진 숲,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의 설화(雪花가) 어우러져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싫증나지 않는 산이다.
최근 대구가 수구세력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 21세기 국제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말이 일부 세력에 의해 유표 되고 있으나 퇴계학과 남명학으로 모두 수용하고 17세기 노론이 장권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면서 국정을 농단할 때에는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했고 특히 올해로 100년을 맞는 국채보상운동이나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의거와 호남과 충청도 인사는 지역국회의원으로 내보내는 폭 넓은 정치적 식견을 볼 때 대구사람들은 오히려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팔공산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칠곡, 선산, 군위, 영천, 경산의 5개 군에 걸쳐 있으며 1980년 5월 13일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시민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연간 1,000만 명이상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팔공산은 전국 유수의 국민관광단지로 자리 매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산(聖山)이 단지 시민들의 놀이터로만 이용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 많은 동식물, 호국의 정신이 서려 있는 유적지를 돌아보며 대구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기는커녕, 고성방가, 희귀식물 채집, 쓰레기 투기로 산을 더럽히고 있으니 안타까운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천단과 문헌으로만 전해오던 공산성지를 확인하였고, 일제가 지맥을 끊기 위해 박아 두었던 쇠말뚝도 뽑았다. 문화재연구원의 모 박사에 의하면 군부대까지 포함해 지표조사를 다시 한다면 경주남산 못지않은 많은 유적이 발굴 될 것이라고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팔공산은 경치만 아름다운 여느 산과 달리 ‘문화재의 보고’이자 ‘호국의 산’ 이며‘불교의 성지’이다.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하여 삼국통일의 초석이 되었듯이 자라나는 지역의 청소년들이 호연지기를 키워 통일성업의 주역이 되고, 새롭게 펼쳐질 21세기에는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인물로 자랐으면 한다.
팔공산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식물인 노랑무늬붓꽃을 비롯해 ‘백제의 얼’로 대표되는 고란초도 자라고 있다.
팔공산은 거대한 자연사박물관이다. 적당한 높이와 아름다운 산세는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고, 아이들이라도 동반한다면 우리 고장이 자랑스러운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팔공산은 지역을 뛰어 국가를 대표하는 온 국민이 아끼고 사랑해야할 겨레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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