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금호동 택지개발지구 내
한강 정구선생 유허비등 공원
건립계획
2007. 10
달구벌 얼 찾는 모임
사수⋅금호동 택지개발주민대책위원회
칠곡향교
청주정씨 문목공 대종회
목 차
1. 개요 ..........................................................................2
2. 계획의 배경 ..............................................................4
3. 주요공간별 방향 ........................................................4
4. 계획방향 ...................................................................5
5. 주요도입시설 ...........................................................14
6. 대구 사수․금호지구 개발계획 평면도 .....................16
7. 추진기관 및 단체 ....................................................17
1. 개요
1) 과업명 : 사수⋅금호동 택지개발지구내 한강 정구선생 사적비 등 공원 건립계획
2) 위치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금호동 택지개발지구 내
3) 면적 : 7,700m2
4) 목적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자 대구 문풍진작에 크게 기여한 한강 정구선생 의 유허지가 택지로 개발됨에 따라 역사적 흔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어 개발지구내의 근린공원에 정구선생을 기리는 사양정사, 유허비, 매 화동산, 관어대, 조각동산 등을 설치하여 공원시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 고, 공원명칭도 한강공원으로 명명하여 역사적, 장소적 의미를 부여함으로 써 지역적 정체성을 가진 공원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음
5) 한강 정구선생
◦ 1543년(중종 38년) 경북 성주 유촌에서 출생
◦ 본관 : 청주
◦ 호 : 한강(寒岡)
◦ 저서 : 한강집, 심경발휘, 오선생예설분류, 고금충모, 고금인물지
◦ 관직 : 창녕현감, 통천군수, 우승지, 강원도 관찰사, 공조참판, 대 사헌
◦ 72세부터 78세까지 6년간을 대구 사수동에서 저술과 후학을 양성
곽재겸, 서사원, 손처눌, 송원기, 정광천, 채몽현, 도성유, 도경유, 박 종우 등 많은 사림을 양성하여 대구 문풍진작에 기여
◦ 1620년(광해군 12년) 대구 북구 사수에서 세상을 떠남
6) 추진기관
◦ 주체 : 달구벌 얼 찾는 모임
◦ 주관 : 대구광역시, 사수⋅금호동 택지개발주민대책위원회,
칠곡향교, 청주정씨 문목공 대종회
◦ 시행 : 대한주택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
7) 행정사항
◦ 조성계획안 제출 : 달구벌 얼 찾는 모임
◦ 조성계획안 검토 확인 : 사수⋅금호동 택지개발주민대책위원회,
칠곡향교, 청주정씨 문목공 대종회
◦ 시행청에 협조의뢰 : 대구광역시
◦ 시행 : 대한주택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
8) 대상지 현황
◦ 대구금호택지개발지구내에 위치
◦ 택지개발지인 사수동에 정구선생이 6년간 기거
◦ 근린공원내의 섬뫼(蟾山:수매산)는 소나무, 참나무 등 임상이 매우 양호 - 원형보전지로 지정
◦ 섬뫼(蟾山:수매산) 주변은 정지가 완료될 경우 현재보다 약 4m내외가 높아짐
◦ 근린공원내 하천이 통과 - 아꾸럼천
◦ 섬뫼(蟾山:수매산) 이외의 공간은 북에서 남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룸
◦ 공원의 지정이 남북으로 이어지고 북측으로 저수지와 산 능선으로 연결됨
◦ 공원좌우측으로 공동주택용지로 지정
◦ 공원중앙부 좌우측에 광장이 배치
◦ 공원남측으로 도로가 통과하고 유수지와 인접
◦ 공원이 단지 중앙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양호하여 이용률이 높을 것 으로 예상됨
9) 기타
◦ 기본계획자문 : KOREA LANDSCAPE 연구소 농학박사 이 제 화
(053-764-8565)
◦ 조형물(유허비, 시비)자문 : World Amenity 환경조형연구소 조각가 오용환(053-536-7418, 011-536-3145)
2. 계획의 배경
◦ 공원의 장소성과 지역성을 살림으로써 특색있는 공원으로 조성
◦ 역사 교육의 공간으로 기능
◦ 공원이용자들에게 다양한 경험 제공
◦ 당시 한강 문인 344명의 후예 및 일반인들의 관광지로 활용
3. 계획의 방향
1) 금호택지개발지구의 방향과 조화
◦ 지구의 토지이용계획과 조화
◦ 접근성을 고려하여 섬뫼(蟾山:수매산) 주변공간을 활용
◦ 기존 지형을 최대한 보전 섬뫼(蟾山:수매산)의 지형과 임상을 보전
2) 근린공원의 기능과 조화
◦ 근린공원은 근린거주자 또는 근린생활권으로 구성된 지역생활권 거주 자의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치되는바 본래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도록 계획
◦ 근린공원내의 시설배치와 동선계획과 상충되지 않도록 고려
3) 한강 정구 선생과 연계성
◦ 한강 정구선생과 연관된 시설 등을 도입
◦ 관련시설
- 사양정사
- 관어대
- 매화동산
- 시비
◦ 유허비 건립
◦ 해당 근린공원을 한강공원으로 명명
4) 교육적 효과 도모
◦ 성리학의 대가인 한강선생의 업적을 기림
◦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
◦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제공
4. 주요공간별 계획방향
1) 입구광장
◦ 택지지구내 도로에서 인지성 고려
◦ 한강공원에 대한 안내 - 공원안내판
◦ 주차장 설치
◦ 광장의 설치로 만남, 휴식의 공간으로 기능
◦ 공원안내판 디자인
◦ 규격 : 2,000x1,500x300
◦ 재료 : 화강석
디자인 예)
2) 사양정사
◦ 칠곡군 신동의 사양서당을 준용
◦ 규모 : 30㎡
◦ 재료 - 목재와가
◦ 단 마루만 설치하고 양쪽방과 벽은 험
◦ 편액설치 - 사양정사(泗陽精舍)
3) 관어대
◦ 배치 - 연못공간과 연계성을 가지며 못가에 설치하여 실제 물속의 고 기를 볼 수 있도록 고려
◦ 규모 - 16㎡내외, 4각정자(부용정 형태)
◦ 재료 - 목조와가
◦ 편액 - 관어대(觀魚臺)
4) 수공간
◦ 관어대와 연계
◦ 어류
◦ 수생식물 식재 - 연, 창포, 수련
6) 매화동산
◦ 사양정사와 연못 중간부분에 위치
◦ 한강 선생은 고향에 백매원(百梅園)을 세워 유생들을 교육
◦ 매화동산을 조성
◦ 산책로 설치
◦ 안내판 설치
7) 유허비
◦ 내용 - 여기 사수동(泗水洞)은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 학술사상사 내지 문화사에 큰 위치를 점유한 한강(寒岡) 정구(鄭逑)先生의 유적지(遺蹟地)로서 선생의 78세 긴 생애에서 마지막 6년간 후학양성과 연구저술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생을 마감하신 사양정사(泗陽精舍)의 옛 터가 있던 곳이다. 이제 사수동이 원래의 칠곡군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고 급속히 개발이 진행되어 지난날의 자취가 인멸(湮滅)될 위험이 있게 되자, 달구벌 얼 찾는 대구지방의 有志人士들과 淸州鄭氏文穆公派 大宗會에 속한 자손들이 뜻을 모아 이 곳에 한강공원(寒岡公園)을 만들고 유허비를 세워 널리 온 세상에 알리고 길이 후인들에게 전하려 한다.
선생의 휘(諱)는 구(逑), 자(子는) 도가(道可), 호(號)는 한강, 시호(諡號)는 문목(文穆)이요, 본관과 성은 청주정씨(淸州鄭氏)로서 선대는 서울에서 세거(世居)했는데 부친 사중(思中)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선생의 외손으로 현풍에서 성주 유촌(柳村)에 옮겨 살면서 선생을 낳았다. 1543년(중종 38년)이었다. 천자(天資)가 영특한 선생은 일찍 학문에 뜻을 품어 17세에 성주향교에서 덕계(德溪) 오건(吳健)에게 배우고, 이어서 21세에 안동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그리고 24세에 진주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배방(拜訪)하여 제자의 예를 닦았다.
당시 퇴계와 남명은 嶺南左右道에서 각기 크게 강석(講席)을 열고, 전국의 인재들은 장진(獎進)함으로서 학풍이 울흥(蔚興)케 했는데, 좌도의 학풍은 인(仁)을 주로 하고, 우도의 학풍은 의(義)를 주로 하였다. 그런데 도산(陶山)과
덕천(德川) 두 사문(師門)으로부터 학풍을 흡수 소화하여 自己를 대성한 분이 바로 寒岡先生이었다.
선생의 학성덕립(學成德立)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는데 우선 그 제자로서 후일 회연급문제현록(檜淵及門諸賢錄)에 등재된 분들만도 344명이었다. 대부분이 영남출신들이지만 특히 대구에는 그 광역주변분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예를 들면 대구의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 낙제(樂薺) 서사원(徐思遠),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아헌(亞軒) 송원기(宋遠起), 낙애(洛厓) 정광천(鄭光天),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兪), 낙음(洛陰) 도경유(都慶兪), 태암(台巖) 최동집(崔東集), 도곡(陶谷) 박종우(朴宗祐) 등이 있고 광역주변분들로 칠곡의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 현풍의 존제(存齊) 곽황(郭趪), 성제(省齊) 곽준(郭䞭), 인동의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 창녕의 외제(畏齊) 이후경(李厚慶),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 성주의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 등이 있었다. 바로 제자라 할 수는 없지만 고령의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송암(松庵) 김면(金沔), 달성의 대암(大庵) 박성(朴惺) 등이 모두 가까운 종유(從遊)로서 선생의 학문적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
이리하여 대구광역을 중심으로 그 일원에 제제다사(濟濟多士)가 탁마경진(濯磨競進)하여 문풍이 크게 진작되고 화민성속(化民成俗)의 결과로서 대구는 嶺南一道의 중앙에서 새로이 달구벌의 얼을 일깨우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여 국내 어느 웅주거목(雄州巨牧)보다 높은 영예를 향유하게 되었다. 선생은 사대부의 한사람으로 학우즉사(學優則仕)라는 기본임무가 있음에도 평생 과거를 통한 출세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조정의 징소(徵召)에 대해서도 내직(內職)에는 되도록 응하지 않았고, 오직 외직(外職)은 고을 수령으로 대민봉사가 가능했기 때문에 몇몇 고을에 부임하였다. 그리고 임진 항일전쟁 7년간에 國難과 민우(民憂)에 대한 蹶을 다하였다. 수제치평(修齊治平)에 바탕을 둔 선생의 학문은 심학(心學), 예학(禮學) 등 성리학에의 깊은 조예(造詣)와 함께 박학(博學)달식(達識)으로 과다(夥多)한 저술을 남겼다. 정치, 법제, 역사, 지지(地誌) 내지 의학의 분야에까지 범위를 넓혔다. 치평(治平)의 사명감에서 애민우국(愛民憂國)의 정열(情熱)을 잠시도 식힐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의 학문이 응용구시(應用救時)의 고차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응용구시적 학문경향은 젊은 제자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을 통하여 근기지방(近畿地方)에 전수됨으로써 후일 성호(星湖) 이익(李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의 근기철학(近畿哲學)을 창출케 하였다. 실학은 근대적 사유(思惟)의 맹아(萌芽)를 틔운 것인 만큼 현재 학계의 각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실학의 연원(淵源)이 선생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달구벌의 얼을 찾는 많은 뜻있는 분들이 선생을 통하여 영남 성리학의 전통은 물론이고 근기철학의 성과를 아울러 섭취하여 대구의 생활문화를 가일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7년 8월 광복절
大韓民國學術院 會員, 成均館大學校名譽敎授, 退溪學硏究院長
文學博士 驪州 李佑成 삼가 지음
◦ 배치 - 입구광장 주변
◦ 규격 - 3,000X600X200
◦ 재료 - 화강석
◦ 디자인 예)
8) 시비
◦ 내용
스스로를 반성하며 - 自省
대장부 마음은
밝은 해와 푸른 하늘
특 트인 기상 누구나 바라보니
번쩍이는 빛 참으로 늠름하도다.
大丈夫心事 白日與靑天
磊落人皆見 光芒正凜然
한강 정구선생이 스스로 돌아보아 한점 부끄러움 없는 늠름한 기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 시이다.
스스로를 반성하며 - 自省
한스럽구나, 그럭저럭 보낸 한 평생
새벽에 홀로 일어나니 감회가 사무치네.
밝디 밝은 성인 말씀 모두가 나에겐 경계
생각하노니, 지금부터 노력을 더욱 굳세게 하리.
每恨悠悠過一生 晨窓獨起感懷長
昭昭聖訓皆吾戒 計自如今立脚剛
한강 정구선생이 새벽에 일어나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성현의 말씀을 경계삼아 자신을 굳세게 닦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시이다.
시대를 탄식하며 - 歎時
내관 삼백명 외직 삼천명 가운데
나랏일에 마음을 둔 이 그 몇이던고?
임금은 근심 걱정으로 밤낮 수고로운데
못 신하들은 즐거이 밤마다 술에 취해 있구나
內官三百外三千 王事留心有幾人
聖上憂勤勞夙夕 群臣嬉戱醉昏晨
한강 정구 선생이 수많은 벼슬아치 가운데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탄식한 시이다.
춘첩 - 春帖
늙은이는 종일토록 조용히 앉아 있고
아이 또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닦는구나.
거친 밥 나물국도 즐거우니
이 밖의 수많은 일 무엇을 더 구하리?
翁惟靜坐終日 兒亦讀書自修
蔬食菜羹亦樂 萬船此外何求
한강 정구선생이 새봄을 맞아 집안의 모든 사람이 자기 수양을 제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시이다.
우연히 읊음 - 偶吟
봄 산은 비단같고 물은 쪽빛인데
관동 두셋과 함께 바람을 쐬며 시를 읊노라.
만약 당시 공자의 탄식을 안다면
요순의 기상을 그대들도 느낄 수 있으리
春山如錦水如藍 風詠冠童共數三
若會當時夫子歎 唐虞氣像許君參
공자가 그의 제자 증점(曾點)이 덕을 닦고 도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탄식한 것처럼, 한강 정구선생이 그의 제자들 역시 증점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시이다.
낙동강에 배를 띄우며 - 泛舟洛東江
평생의 삶 속에 무슨 일이 가장 좋을까?
오늘의 뱃놀이도 노래할만 하구나.
좋은 벗들과 만나 함께 술을 취하였는데
석양은 빛을 드리워 너른 물결 비추네
平生何事最爲多 今日船遊亦可歌
邂逅良朋仍共醉 斜陽倒影照平波
한강 정구선생이 46세(1588년)때 여러 벗들과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만경창파모천(萬頃蒼波慾暮天)’의 시구로 운자를 나누어 서로 시를 지었는데, 선생은 ‘파(波)’자 운을 얻어 당시의 정경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우연히 읊음 - 偶吟
마음이 한가로우니 도의 기운이 더해지고
어려운 일 참는다면 곤경을 이길 수 있다네.
말을 삼가면 마침내 화가 적을 것이고
아껴 쓰는 것이 남에게 구하는 것보다 낫다네.
心閑增道氣 忍事適災屯
謹言終少禍 節儉勝求人
한강 정구선생이 마음을 한가하게 가지는 것, 어려움을 참는 것, 말을 삼가
는 것, 검소한 생활 등을 인생의 중요한 지표로 생각하고 지은 시이다.
무제 - 無題
흐린 달밤 텅빈 골짜기에서 처음 호랑이를 만나고
바람 거센 큰 바다에 비로소 뗏목을 띄운다네.
인생만사 평탄하다 말하지 마소
인생살이 여기에 이르면 마침내 어찌하리!
月沈空谷初逢虎 風亂滄溟始泛槎
萬事莫於平處說 人生到此竟如何
한강 정구선생이 태평스러운 때라도 항상 조심하여 위급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잘 대처해 나갈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시이다.
◦ 배치 - 광장에서 사양정사에 이르는 산책로 변에 설치
◦ 재료 - 화강석
◦ 규격 - 1,200x800x300
◦ 디자인 예)
9) 조각동산(2,700㎡)
◦ 공원내 볼거리 제공 - 공원의 예술적 가치를 높임
◦ 청주 정씨 한강 정구 선생 문인 - 50여개의 문중에서 1개소씩 조각을 기증
◦ 조각물에 문중의 내력을 소개
◦ 배치도를 작성 - 산책로, 휴식시설 등
◦ 개소당 면적 : 약 10㎡
◦ 공원조성 후 관리청의 승인 후에 각 문중별로 설치
◦ 규격, 재료 등은 별도 마련
◦ 사례 - 대전 뿌리공원
5. 주요도입시설
시설명 |
규격 |
단위 |
수량 |
비고 |
사양정사 |
목재와가(3m☓10m) |
개소 |
1 |
|
관어대 |
부용정 |
〃 |
1 |
|
연못 |
|
㎡ |
285 |
|
매화동산 |
|
〃 |
350 |
|
조각동산 |
조각품 50여점 |
〃 |
2,000 |
문중에서 제작 설치 |
사적비 |
화강석 |
개소 |
1 |
|
시비 |
화강석 |
〃 |
8 |
|
광장 |
|
㎡ |
320 |
|
주차장 |
|
〃 |
400 |
|
산책로 |
폭2.0m |
m |
700 |
|
안내판 |
공원안내, 시설물안내 |
개소 |
6 |
|
기타 |
|
식 |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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