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시민들의 자연학습장 대구수목원

이정웅 2008. 6. 28. 12:22
[5월 대구수목원 한바퀴] 21개 그린루트 리얼생중계
철쭉부터 보리·밀까지…식물도감에 실린 웬만한 수목은 다 있네 초록 천국
"와! 쓰레기 매립장을 이렇게" 한번 놀라고
1750종의 식물 심어져 있어 또 한번 놀라고
분수광장에서 사진 한장 안찍으면 후회
한적한 숲속 산책로에선 사색하기 그만
#초입부터 우스꽝스러운 장승에 한바탕 웃고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대구수목원 초입.

오른쪽 주차장 가는 삼거리 모퉁이에 장승 4개가 코믹하게 서있다. 노란색 버스에서 내린 유치원생들이 병아리처럼 재잘거리면서 담당 교사 뒤를 따라 수목원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꼭 노란 팬지 같다.

앞산순환도로 끝에서 유천교로 가는 상화로 끝 지점, 이곳에서 2차 삼성아파트를 끼고 좌회전해 200여m쯤 가면 정면에 푸른 터널이 보인다. 수목원 입구다. 그 초입에 놓인 갈색 벤치가 관람객을 편하게 맞이한다.

주차장 남쪽 돌계단을 올랐다. 침엽·활엽수원을 거쳐 코뿔소 형상석과 금강송이 군데군데 서 있는 잔디광장(수목원에는 남·북 두 곳에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을 지나간다. 잔잔한 음악이 숲속에서 스며나온다. 스피커도 여기선 나무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데 숨겨 졌다.

수목원 청사 앞에 집결한 대구수목원 자연해설사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거기서 만난 최연소 자연해설사 김은자씨(35), 그녀는 자녀들에게 꽃과 나무 이름이라도 제대로 가르쳐주기 위해 자청해 해설사가 됐다.

이곳은 원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1986~90년, 대구시의 생활쓰레기 410만t이 여기에 매립됐다. 그런데 그 위에서 '연꽃' 같은 수목원이 생겨나 화제가 됐다. 이정웅 전 대구시 녹지과장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전국에선 처음으로 친환경 생태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대다수 시민들은 '매머드 그린 프로젝트'를 알지 못했다. 두께 18m가량의 쓰레기 위에 대구지하철 공사장 등 각종 건설공사장의 잔토를 평균 6~7m 높이로 복토 했다. 이후 97년부터 2002년까지 수목원으로 가꿔나갔다. 영국 런던 그리니치 밀레니엄타운, 호주 시드니 올림픽 공원, 영국 런던의 스톡클리 공원 등도 대구수목원처럼 쓰레기 위에 세워졌다.

7만4천평의 수목원에는 1천750종의 식물이 있다. 초본류는 1천300종 27만 포기, 나무는 450종 8만 그루. 모두 21개 섹터로 분류돼 심어져 있다. 대구의 시화인 목련과 시목인 전나무 등을 볼 수 있는 시화원을 비롯해 약초원, 약용식물원, 분재원, 무궁화원, 유실수원, 염료식물원, 철쭉원, 죽림원, 괴석원 등이 쭉 이어진다. 식물도감에 실린 웬만한 수목은 다 있다. 모든 코스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5시간 이상 소요. 그냥 일주하는데도 1시간30분쯤 걸린다. 수목원이라지만 편의시설을 감안하면 공원급이다. 관람로에 모두 12개의 빛가림 정자, 곳곳에 벤치가 놓이고, 매점도 한 군데 있다.


#인기만점 분수광장

모든 동선은 관람로의 북쪽 4분의 1 지점에 형성된 분수광장에서 시작된다.

모든 관람로는 광장에서 만나 거기서 흩어진다. 그래서 분수광장은 늘 관람객으로 북적대고 분수 때문에 활기가 가득하다. 중장년층도 여기만 오면 아이처럼 깔깔댄다. 인기 촬영지는 한 쌍씩 네 구역에 조성된 보리·밀밭. 벌써 이삭이 팼다. 하지만 상당수 관람객은 이 둘을 제대로 구분 못한다. 밀은 이삭에서 난 수염이 수직으로 올라가지만 보리는 45도 방향으로 벌어져 있다. 팻말이 있어 구별할 수 있다. 96년부터 시작된 '푸른대구 가꾸기 사업' 일환으로 벌어진 '1천만그루 나무심기' 달성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곁에 수목원에서 가장 키가 큰 금강송이 있다.

#선인장 온실에서 아이쇼핑

수목원 청사 북측에 선인장 온실이 있다. 앙상한 겨울엔 이 온실이 수목원의 꽃 구실을 한다.

온실 탄생 과정이 눈물겹다. 3년전에 작고한 대구시 수성구 매호동 정주진씨가 시가 2억원대의 각종 선인장을 수목원측에 기증했다. 현재는 문옥희씨가 관리하고 있지만 기증 후 타계하기 전까지는 정씨가 돌봤다. 지역의 모 호텔에서 그 선인장에 눈독을 들였고 한때 수성구 황금동 어린이공원에 기증될 뻔도 했다.

압권은 천장을 향해 덩굴처럼 뻗어올라간 브라질 산 부켄베리아. 그 꽃이 꼭 진달래꽃을 머리띠처럼 기다랗게 이어놓은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 선인장은 꼭 UFO 같다. 아이쇼핑하듯 지나치지 말고 팻말에 적힌 이름과 모양새를 비교하는 것도 참 재밌다. 노란 바늘이 박힌 호박 모양의 쿠션처럼 생긴 금호, 탁구 라켓 모양의 잎을 붙이고 있는 멕시코산 대환분, 종류석 같은 길상천, 노루 꽁지 같은 백섬 등이 눈길을 끈다.

#관람 포인트 이모저모

분수광장에서 남쪽으로 올라간다. 수목원의 서편 가장자리로 빠져나갔다. 가장 한적한 산책로가 나온다. 광장에서와 달리 여기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색하며 걷기에 딱이다. 미사토로 잘 다져진 길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숲속으로 사라진다.

한참 걷다보면 세계 35개국 153개 외국 수목원에서 보내 온 200여 종의 희귀 식물도 보인다. 아직 우리 토양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 모두 앙상하다. 여기서 가장 수난을 많이 당하는 식물은 화목원의 두릅나무. 새순이 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특히 봄나물 좋아하는 중년 관람객은 그걸 보면 본능적으로 따간단다. 특히 대구에선 경북대 농대 앞에서밖에 볼 수 없는 희귀 소나무인 흰 백송 3그루는 침엽수원의 명물. 화목원에 가서 참나무가 5종류(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이 밖에 앞산 케이블카 옆에 대규모 군락지를 이루고 있고 대구가 자생지인 가침박달, 팔공산에서 볼 수 있는 산림청 보호대상식물인 깽깽이풀과 같은 대구 대표 식물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