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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역의 진산(眞山)이자 광주의 어머니로 통하는 무등산. 대구·경북에서는 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 선동열 감독의 현역시절 별명 '무등산 폭격기'와 '무등산 수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광주지역에서 무등산의 존재 가치는 생각 이상이다. 천연기념물 서석대를 비롯, 입석대, 규봉암 등 웅장한 기암 괴석들이 즐비해서도, 시내와 가까워 자주 출입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광주 시민들에게 무등산과 광주는 동일시된다. 그래서일까. 무등산 봉우리를 군부대와 방송·통신 시설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운동의 산실인 광주의 기운이 군부와 권력에 짓눌리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민들이 산 정상을 되찾고자 안간힘을 쓴 이유는 그런 문화적·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무등산 관련 단체가 무려 75개 지난해 5월19일.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의 어느 시민단체 협의체 대표와 2시간30분 동안 무등산 산행을 했다. 역대 대통령 중 무등산을 오른 것은 처음일 뿐 아니라 시민단체 대표가 동행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시 산행에 동행한 시민단체 대표는 대통령에게 정상의 군 부대(2만8천여㎡)를 이전하고 산 정상을 시민에게 되돌려 줄 것을 건의했다. 즉각적인 확답은 없었지만 검토할 수 있다는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무등산 정상을 되찾기 위한 시민운동은 이처럼 거침이 없었다. 당시 노 대통령과 대동한 이는 바로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이하 무보협)의 김인주 본부장이다. 이 협의체에는 무려 75개 시민단체가 가입돼 있다. 모두 무등산을 보호하고 사랑하자는 단체들이다. 1989년부터 시민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 무등산 정상을 개방하자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1965년부터 시민들에게 통제된 무등산 정상이 이 협의회 중심의 시민운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군부대는 여전히 산 정상에 있지만, 90년 4월 정상 일부인 서석대(해발 1천100m), 입석대(1천17m)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왕봉 정상까지 직선거리로 200~300m 떨어진 곳이다. 먼 발치나마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석대·입석대 일대는 등산로 정비공사로 올 연말까지 잠시 통제되고 있는데, 대신 폐쇄로인 누에봉(북봉)이 대체 등산로로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1천187m)은 아직 개방되지 않고 있지만,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인 장불재(900m)의 KT 2중계소와 KBS 송신소 주변은 완전 개방이 됐다. 등산객들이 시설물을 둘러싼 철조망을 따라 등산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다.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진입도로에는 광주시내버스가 다닌다. 버스 번호는 1187번. 시민단체의 요구로 산정상 높이(1천187m)와 일부러 같은 번호를 광주시에서 배정했다. 시민운동에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간 셈이다. ◆시설이전과 동시에 생태복원도 군사시설보호구역과 등산로 경계를 오가며 오른 무등산의 중봉(915m). 1만2천여㎡의 넓은 부지에는 억새풀이 무성하다. 같이 동행한 무등산 문화관광해설사 이애심씨는 "원래 있던 군 부대 일부가 이전한 뒤 99년에 완전히 생태복원이 이뤄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95년부터 군부대 이전의 목소리를 높인 결과다. 특히 생태복원을 위해 군 부대 주둔 이전 지도의 등고선을 참고했고, 이물질 유입을 우려, 외부에서 흙 한줌도 반입하지 않았다. 인근 누에봉(북봉)은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위로 군 작전도로가 나 있지만 일반 차량이 진입하면 센서가 요란하게 울린다. 하지만 칼로 베어 놓은 듯 기이한 형상의 암석을 중심으로 주위에 개망초, 오이풀, 쥐오줌풀이 지천에 깔려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이씨로부터 2003년 KT의 1중계소(1980년 준공)가 있던 곳(5천500여㎡)이라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바위가 많기로 유명한 누에봉은 원형복원을 위해 돌의 흘림 각도까지 계산한 정밀한 작업이 이뤄졌다. KT에서 4억원을 들여 복원했다. 이처럼 무등산에서 군부대와 통신시설이 있던 흉물스러운 자리가 점차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같은 생태복원운동은 정상 인근 시설물 이전과 관련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무보협은 도립공원인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려는 노력에 전력질주하고 있다. 환경훼손 방지뿐 아니라 군 부대 이전에도 적잖은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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