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푸른 대구, 꿈이 아니었다

이정웅 2009. 1. 8. 17:19

 

 

하천법을 무시하고 심은 신천의 수양버들 (수나무를 심어 꽃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 들어가는 말


나무를 많이 심어 도시를 푸르고 쾌적하게 가꾸어야 할 필요성(必要性)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꼈던 감(感)은 전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70~'80년대 개발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할 때에도 그랬었지만 삶의 질이 가장 소중한 가치로 자리 매김 된 ‘환경의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여건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예로 보다 많은 시민들이 나무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가정 한 그루 나무심기’와 ‘기념식수(紀念植樹)’를 장려했었다.

각 가정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물론 구․군이나 공원의 일정한 장소에 출산을 하거나 회갑, 결혼, 입학, 승진, 영전, 개업 등 개인이나, 단체생활에 있어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날에는 나무를 심어 기념하도록 권장하였으나, 참여하는 시민이 너무 미미했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전체 녹지 양을 증대시키고,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가로수 가지치기를 약하게 하였더니 시민들의 반발이 컸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몰래 기름이나 소금물을 부어 죽이기도 했다.

또한, 월드컵대회나 유니버시아드 등 큼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거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화분을 설치하였으나 꽃이 말라 죽어가도 물 한 바가지 떠서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는 처지였으며, 조그마한 공터라도 놀리지 않고 쌈지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분수와 의자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고 할 때에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 모 유명인사까지도 앞장서서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부족한 여건을 감안해 시정부가 주도적으로 전개하고자 했으나, 그것 역시 예산확보가 쉽지 않았다. 즉 복지증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복지사업에, 예술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기업가는 기업 활동에 필요한 분야에 투자의 우선순위(優先順位)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더욱 아쉬운 점은 지역사회를 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언론(言論)이나 환경(環境), 시민(市民)단체는 물론 의회조차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 당시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척박한 풍토에서도 물러서지 아니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하여 이룬 성과가 1,000만 그루 나무심기였다.

성과가 어느 정도 눈에 띄고 몸으로 느껴지게 되자 시민들의 동참도 늘어나고 의회도 지원하게 되었다. 또한 지방지는 물론 중앙지까지 성공사례가 보도 되자 부산, 울산, 안양, 전주, 하남, 군산, 순천, 여수 등 전국의 수많은 도시가 벤치마킹을 하러왔고, 2001년 9월에는 우리나라 최고 조경전문가 집단인 ‘(사)한국조경학회’가 제정한 제1회 대통령상(大統領賞)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앞산에서 바라본 대구 시가지와 팔공산

 

시정부가 나무심기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 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투입된 시비(96~2002)는 1,057억 원으로 대구시 매 회계연도 일반회계 세출예산 1조 5천 억 원의 1.0% 인 150억 원에 불과했다.

기업(企業) 활동에 필요한 투자는 사실 그 열매가 일부기업과 근로자에게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비해 나무심기는 공익적 혜택이 전 시민에게 골고루 배분(配分)된다는 점에서 수혜자가 한정된 다른 어느 사업보다 효과가 크고 나아가 해가 갈수록 성장함에 따라 부가가치(附加價値)가 커진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의 투자와 다르게 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 선대(先代)가 지금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이 땅을 물려주었듯이 우리 역시 다음 세대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대구를 물려주어야 할 책무(責務)가 있기 때문에 나무심기에 대한 투자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후대가 살아가야 할 이 땅을 개발이라는 미명(美名)하에 너무나  많이 뭉개고 헐어버렸다.

20세기 초 프랑스 여행가 “바라”의 기행문을 보면 ‘중심부에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읍성(邑城)이 자리 잡고 망루(望樓)에서 바라본 시가지는 한 폭의 수채화(水彩畵)처럼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한 세기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도 시가지는 온통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뒤덮여 삭막하기 그지없고 읍성(邑城)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목가적인 도시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찢어지고 뭉개진 도시를 이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도시의 경관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이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외국 자본과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우선 도시가 아름답고 쾌적해야 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대회와 2003년 유니버시아드를 대비해 녹지와 공원을 늘리고, 가로환경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도 이들 양 대회를 통해 대구를 국제사회에 알려 투자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그 때 방문했던 많은 외국인들은 숲이 우거진 대한민국의 한 지방도시 대구를 보고 놀라워했었지 않았던가.

따라서 도시에 숲을 조성하는 것은  환경적으로 쾌적하게 하여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한다. 나무심기와 공원・녹지조성에 시민들의 보다 높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의회(議會)가 이를 수용해 투자를 더 늘려 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녹색도시로의 출발


민선 1~2기 동안 시정을 이끌었던 문희갑 시장은 취임 초부터 대구를 세계적인 숲의 도시로 만들자고 제안하여 관련 공무원들을 무척 당황하게 했다. 서울 등 국내의 다른 도시에도 뒤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세계의 유명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숲의 도시를 만든단 말인가? 참으로 난


감(難堪) 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년도에 사업비를 미리 확보했어야 했어야했는데 미처 대비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했었다. 그러나 계획안이 확정되자 예산부서에 의해 시장재량사업비나 구·군에 지원하는 교부금 등으로 사업비가 확보되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1~2억 원을 확보하기 어려운데 말 한 마디로 수십억 원을 확보했으니 막강한 시장의 파워에 대해 새삼 놀라웠다. 이 후 시장은 물론 정・부시장이 매주 번갈아 현장에 나가 나무심기에 직접 참여하는 등 혼신(渾身)의 노력을 경주했다. 또한, 시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지역 일간지에 광고를 하기로 했었는데 이 역시 비용이 마련되지 못했었다. 청구, 우방 등 당시 지역의 큰 기업체로부터 협찬 받기로 하고 필자가 홍보 책임자를 만나 성사시켜 광고를 했었고, 또한 지침과  조례도 만들었다.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한 담장 헐기 사업에 대한 시비지원을 제도화하여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한편, 역내 대학의 조경 관련 교수들을 중심으로 ‘도시녹화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주요 공원개발이나 녹지조성에 관한 자문 구하는 한편 교통섬 등 작은 빈터라도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는 등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 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제1차 5개년('96~2000년)계획의 목표 300만 그루를 1년 앞당겨 그 것도 100만 그루 이상 초과달성하였으며 특히, 공원・유원지 나무심기를 획기적으로 늘렸을 뿐만 아니라 사상 처음으로 초·중·고교에 나무심기 사업비를 시정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매일 현장을 점검하고, 늦은 밤까지 다음 계획을 수립하랴 자료를 정리하랴 파김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성적인 시장과 구성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우호적(友好的)이지 못해 큰 나무를 심는다, 생태적이지 못하다. 좁은 인도(人道)에도 나무를 심어 불편을 준다는 등 부정적인 보도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 중에서 비난(非難)이 극에 달했던 때는 중구청과 경찰청을 옮기고 그 자리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할 때였다.

                            

 

                                  세계최대의 러시아제 헬기를 동원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소나무 심기



평당 1,000만 원 대의 금싸라기 땅을 팔아서 적자인 시정부의 재정에 보태지 아니하고 왜 공원

을 조성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성이 강하고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쳤던  문 시장은 이러한 비난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밀고 나가 결국 새로운 명소로 만들었다



▇ 대구시 녹지정책의 성공요인

 

무덥고 삭막한 도시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대구가 녹색이 넘치는 쾌적한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데도 기인하였지만 가장 큰 요인은 최고 정책 결정권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한 담당 공무원들의 열성적인 노력, 아울러 새로 도입한 몇 가지 녹지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강력한 리더십.


시정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간부회의나, 산하 기관장회 때마다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의 당위성을 빠뜨리지 아니하고 의제로 삼아 강조했다. 심지어는 그 바쁜 시장이 나무의 모양, 식수방법, 수종선택, 사후 관리 상태까지 하나하나 짚어 회의 시 마다 강조함으로써 시정(市政)의 분위기를 녹색도시 가꾸기로 이끌어내, 주관부서 뿐만 아니라, 다른 실·국이나 산하 기관에서도 나무심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자 맡고 있거나 영향력 있는 개별 기관이나 단체, 소관기관의 청사, 발주한 사업장에서 경쟁적으로 녹지의 질을 높였고, 녹지부서의 애로 사항 즉 사업비확보나, 인력충원에 해당부서가 신속하게 조치했으며 특히 전례에도 없는 낮은 서열의 녹지과장을 간부회의에 참석시킴으로 시장의 의지가 왜곡되지 아니하고 곧 바로 전달되어 정책결정과 집행(執行)이 빨라지도록 한 점 또한 성공요인의 하나이다.


둘째. 담장 헐기 운동 전개.


담장 헐기 사업은 많은 기관 단체가 참여해 물리적으로 녹지공간을 확충한 효과도 컸지만 익명성이 높은 도시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헐었다는 면에서 대구시의 녹지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 사업은 시비로 시정부가 직접 추진하거나 구·군으로 하여금 대신 추진하도록 하였고, 대형병원 등 자체 부담능력이 있는 곳은 해당 기관 자부담으로, 교회, 가정집 등 소규모 사업은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대구사랑시민회의가 대상자를 선정하여 가구 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이외에 폐기물수거와 설계를 무상으로 해 주는 등 3가지 유형으로 추진했다.

 2002년 말을 기준으로  201개소 연장 11,374m에 225,151㎡(68,108평)의 녹지를 확보하여 2,043억 원 상당의 시비를 절감하고 푸른 대구 가꾸기에 불을 붙였으며 전국에 파급되어 현재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이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따라서 시비(市費) 절감 효과도 컸지만, 이웃 간에 마음의 벽을 허물어 공동체정신을 되살리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례로 일본에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노숙자와 불량배들이 들끓었던 경상감영 터의 구 중앙공원을 대구은행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면서 담장 없애기를 설계에 반영하여 우리나라 담장 헐기 사업의 효시가 되었다.

일부 자료나 연구 논문에서 대구의 담장 헐기 사업이 서구청이 가장 먼저 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는 단지 준공한 날 자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실제로는 경상감영공원이 먼저 시행되었다. 경상감영공원은 공종이 복잡하다보니 준공이 늦었을 뿐이다. 이점 바로잡고자 하니 착오 없었으면 한다.

또한 민간인으로 최초로 담장을 헌 사람은 중구 삼덕동 거주 김경민(현 대구YMCA사무총장)씨였다.


셋째. 제도개선 등 다양한 방법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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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예산을 집행하는 기준은 예산회계법이다. 이 법에서는 토목·건축·조경 등 여러 공종이 포함된 공사라고 하드라도 분리해서 발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정부가 발주하는 모든 공사를 이 법에 따라 발주해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집행하다보니 조경부분 공사는 하도급 하는 것이 관행화 되어 설계금액의 50%나 또는 그 이하로 시공되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질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런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분리 발주하도록 조치하였다. 적정한 이윤(利潤)을 보장해 주는 대신 양질의 공사가 되도록 감독을 엄격히 해 조경의 질을 높였으며, 아울러 공공주택이나, 2,000평방미터 이상 건축물에 대해서는 건축 공무원이 담당하던 허가와 준공과정에 녹지직 공무원을 참여 하도록 해 민간분야 조경의 질도 높였다.

또한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신천 등 둔치에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하게 가꾸고 싶었으나 하천법에 나무를 못 심도록 되어 있어 이를 금지한 하천법 개정해 달라고 건설교통부에 요구하기도 했었지만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법을 무시하고 심기도 했다. 

 

 

 

 

            아름다운가로수(위두류공원 왕벚나무, 아래 팔공산순환도로 단풍나무)

 

법을 개정해 주지 아니하고 민원을 오히려 지연 시킨다는 이유 등으로 행정자치부,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 되어 시행이 중단되었지만 당시 민선 1~2기 시정부는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 하여 나무 심기에 매진했었다.

또한, 민간이 시행하는 각종건물에 대한 조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조경상’을 제정해 우수한 건축물에 대해 시상을 하고, 구·군 간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해마다 녹지 사업을 평가해 잘 된 구청을 시상하였고, 또한 마을 마다 특색 있는 숲을 조성하기 위해 마을 이름에 나무 이름이 들어 있는 마을에는 해당되는 나무를 심는 예를 들어 송현동(松峴洞)에는 소나무를, 계산동(桂山洞)에는 계수나무를 심도록 하기도 했었다.

구, 군별로 교통이 편리한 장소에 나무시장을 개설해 양질의 묘목을 싼값에 공급하도록 하고, 나무복덕방을 운영하여 생산 농민에게는 판로를 개척해 주고 조경회사나 시민 등 소비자는 직거래를 통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나무를 골라 사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했었다. 시민단체의 비난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뿌리 부분의 직경은 20Cm,  흉고직경은 15Cm이상 큰 나무를 심었다.

새로 나무를 심을 경우 자른 뿌리를 감안하여 긴 가지를 싹둑 싹둑 잘라 심는 것이 관례였으나 미관상 좋지 아니하여 가지 솎아서 티알(t/r)율을 맞추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심기 붐을 조성하기 위하여 수목원에서 기른 나무를 한 가정에 1~2그루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나무나누어주기운동도 전개했다 


넷째. 가로수 심기와 사후관리의 혁신


도시에 있어서 가로수의 중요성은 크다. 그러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폭(路幅)이 5m이상 인도 중에서 가능한 곳은 2줄로 심고, 일률적으로 8미터 간격으로 심도록 되어있는 산림청의 가로수관리지침을 무시하고 시내 도로의 경우에는 6미터 간격으로 심어 식재 밀도(密度)를 높였다. 이 결과 Km 당 서울시가 35그루, 부산시가 42그루인데 비해 대구시는 무려 76그루였으며, 시민 1당 가로수 수량도 대구가 15인 당 1그루인데 비해 서울은 37인 당, 부산은 32인 당 1그루로 이 역시 다른 도시보다 많다. 

또한, 50미터 이상 광로에는 중앙에 분리대(分離帶)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어 도심지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뿐만 아니라 병충해 방제가 어렵다, 간판이 가린다. 고압선으로부터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점포 운영상 자동차 진・출입이 어렵다는 등 시민들의 민원 때문에 강하게 전정(剪定)하였으나 민선1~2기 중에는 많은 민원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약하게 전정하여 녹지 양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음은 물론 무질서하게 붙어 보기 싫은 간판도 보이지 않게 하여 도시 경관 향상에 크게 기여하도록 했다.

또한 한전의 고압선 때문에 강하게 전정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가로수보다 전주를 높이든지 아니면 전선의 피복을 태풍이 불어도 끊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하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지중화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보기 싫도록 가을 한철에 많이 자르려고 하지 말고 다소 수고를 하드라도 봄, 여름 2회에 걸쳐 전정토록 하였다.



다섯째. 녹지직 공무원의 증원 및 사기 진작.


행정구역의 56%가 임야이기 때문에 산불예방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시정의 주요목표가 나무심기였던 만큼 당시 녹지직 공무원의 업무는 부하(負荷)가 컸다. 그러나 이 일을 수행하는 공무원 수는 70여 명에 불과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많은 부서가 통폐합되고 인력이 감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 시정부는 녹지직 공무원을 오히려 20여 명을 증원시켰을 뿐 아니라, 복수직렬로 행정직이 맡아왔던 팔공산 자연공원관리사무소장 등을 녹지직으로 배치해 사기를 진작시키고 업무의 전문성을 높였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수의사가 소장을 맡아왔던 동물원이 있는 달성공원도 녹지직으로 보임해 수의직은 물론 대구시공무원 직장협의회로부터도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녹지직 우대 조치로 승진이 빨라지자 담당 공무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 새로운 환경변화와 대응전략


그동안 양적으로 많은 나무를 심고 공원과 녹지를 확충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내적으로는 시민들의 신뢰를 받았고 대내적으로는 대구시하면, 숲이 많은 도시, 공원과 녹지, 나무가 많은 도시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은 글로벌시대에 도시의 경관은 또 다른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담장 헐기는 명맥만 겨우 유지될 정도로 투자가 미미하고, 기존의 큰 가로수마저 작은 나무로 교체하는가 하면,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약 전정도 어느새 강 전정으로 바뀌어 녹지의 양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주민을 표로 의식하는 자치제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시정부 역시 자치구나 군의 이러한 무지한(?) 행태를 제지하기는커녕 시비(市費)를 지원하는 등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등 굵지 굵직한 국제행사가 곧 치러질

 

 

                          위 담쟁이덩굴                                                아래, 메타쉐콰이아

 

예정이다.. 세계인들에게 대구를 모습을 다시 보여줄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호기를 맞아 대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나무심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무라는 것이 당년에 몇 미터씩 자라는 것도 아니고, 금형(金型)에 넣어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닌 만큼 빠른 시일 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녹지정책 전반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꽃이 피는 나무를 좋아하는 시민들은 화목류를 많이 심으라고 하고, 녹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늘이 짙은 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하는 등 시민들의 의사를 통합하기 어렵고 토질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도 없이 이 나무를 심어라 저 나무를 왜 심지 아니하였느냐고 비난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를 100%다 들어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점을 미리 밝혀두고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대구시의 도시 숲은 그 동안 1,000만 그루 나무심기를 통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노선의 가로수는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처럼 사각으로 전정하여 세계적인 도시의 면모를 닮아 가고 있다.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 가로수 역시 개체하지 아니하고 지주를 철거하면서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라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모든 조경지나 가로수를 이상적으로 가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한꺼번에 새로운 수종으로 다 바꾼다는 것도 역시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인 몇 몇 조경지나 거리를 선택해 그 노선만은 빠진 곳은 보식하고 작은 나무는 큰 나무로 교체하는 등 집중 관리했으면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우선 되어야할 구간이 팔공로와 팔공산순환도로 가로수다. 일대의 잘 자란 가로수는 주변 경관과 어울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 되었으며 특히 가을은 더 아름답다.


이런 평가가 있기까지에는 담당 공무원의 노력도 컸지만 일부 구간은 시장이 직접 수종을 선택할 정도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곳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부분적으로 허술한 곳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어 보완이 필요하고 또한 볼륨을 더 높이기 위해서 가로수 이외 인근 자투리땅과 주

 

 

                                잔디 등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옥상녹화(일본 북구주시)

 

 

변의 산-동화집단시설지구, 동화사, 파계사, 갓바위-에도 집중적으로 심어 동아시아 10대 관광지로 선정된 동화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게 해야 한다. 또한 금호JC 주변의 와룡산이나 무태 꽃밭소(산자락의 붉게 핀 꽃이 물에 비춰 이름이 유래된 곳) 등 관문지역이나 산불피해지역에는 진달래 등 화목류룰 집중적으로 심어 대구의 랜드마크로 가꾸어야 한다.

가로수 전정 역시 주민들을 설득해서 전정을 최소화해야 하며, 이미 심어진 큰 나무를 작은 나무로 교체하는 작업도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현실에 예산낭비라는 비난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녹지의 양이 현저히 줄어 가로수의 보내 기능인 대기정화 미기후조절, 생태 축으로서의 역할이 떨어진다. 또한 무질서 한 간판을 노출시켜 미관을 후퇴시킬 수 있다.

시비 투자를 절감하면서도 녹지공간을 확충하고 폐쇄적인 시민들의 마음의 벽까지 헐어 대구녹지사업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는 담장 헐기 사업도 더욱 확대되어야한다. 시비투자도 확대되어야겠지만 민간부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경관심의를 강화해 두 줄심기 등을 유도해야 한다.

‘담쟁이 도시 만들기’는 나무 심을 공간이 부족하고 열대야 일 수가 증가되는 현실에서 적정한 대안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특히, 학교나 구·군의 청사 등 공공 또는 공익성이 강한 건물은 모두 참여 시켜야 한다. 묘목을 무상 지원하는 것으로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공공근로사업 대상자와 사회적 취약자 등을 대상으로 벽면녹화사업단’이라는 시행단을 조직해 직접심어주면 사업효과도 높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어 일조이조라라는 생각이 든다.

옥상녹화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될 사업이다. 그러나 현형 방법이 적정한 것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조경효과와 생태적인 효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바람직하냐 하는 것이다. 더구나 기존의 주택들의 옥상이 하중을 견딜 수 없고 방수가 완벽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성토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조경효과는  포기하고 초본류 위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무 솎기도 하루 빨리 실시해야 한다. 그동안 양적으로 많이 심었던 곳에는 나무끼리 경쟁이 지나쳐 생장상태가 매우 불량한 곳이 있다, 솎아 다른 곳에 심어 사업비도 절감하고 기존 나무는 잘 자라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열대식물원과 대형 수족관 같은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인구 100만의 도시 일본의 북구주에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 한 적이 있다.


둘째,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확대.

  

내 집 앞 나무나 꽃은 내가 보살핀다는 시민들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간판이 가린다거나 차량 진・출입 시 방해가 된다 하여 고의로 가로수를 훼손(毁損)하는 사례도 없어지도록 지도해야 한다.

쾌적한 숲의 도시 건설은 시정부와 시민이 손을 맞잡을 때 효과가 더욱 상승된다, 이웃 나라 일본은 도시녹지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투자를 확대한 결과 어느 도시할 것 없이 녹화가 잘 되어있지만 도시가 한결 더 아름다운 것은 시민들이 집집마다 나무를 심고 집 앞에 화분(花盆)을 내놓기 때문이다.

대구시 역시 푸르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하며 시정부 역시 투자를 확대 할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한 나무심기투자 = 소모성 경비라는 인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도록 의회와 시민을 설득해 도시에 있어서 투자의 제1순위가 나무심기를 포함한 쾌적한 환경조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력충원과 장비현대화

 

일련의 공원・녹지행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구․군 사업소의 인력이 우선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또한 급수차, 약제 살포차 등 현대식 장비가 크게 확충되어야 한다. 현재 3~4명이 고작인 구․군의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전담할 과(課)가 신설되어야 한다.

서울시와 대구시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도시녹화, 공원관리, 산림보호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녹지직 공무원이 맡는 것을 볼 때 서울시의 녹지직 공무원 400여 명과 비교하여 공원, 녹지와 산림면적이 더 많은 대구시는 10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서울시와 상응하도록 구, 군별로  공원・녹지과가  설치되고 녹지직 공무원도 증원되어야 한다.

녹지직 공무원 또한 정열이 필요하다. 나무심기와 산불예방이 시기적으로 맞물려 일이 힘들고, 5급 이상의 상위 직이 한정되어 승진이 늦어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으나 소수직렬이 방대한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싸움에서 다른 조직의 구성원에게 이겨야 하고 그 길은 오직 일을 통해 평가받는 방법뿐이다.

한때 중앙부처공무원들이 대구로 전출 오게 되면 무뚝뚝한 대구 사람들을 사귀기가 힘들어 어렵고, 그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찜통더위와 깨끗하지 못한 공기와 물, 지저분한 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져 공기와 수질도 좋아지고 늘어난 공원, 녹지로 더위마저 한풀 꺾였다. 대구의 도시녹화 성공사례를 취재하러 온 모 중앙일간지의 여 기자는 시가지를 둘러보고 평소 들었던 것과는 다른데 놀랐으며 기회가 되면 대구지사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할 만큼 외지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 일련의 변화는 의회의 협조도 컸었지만 의욕에 넘쳤던 시장과 이를 뒷받침해 열심히 일했던 공무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보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