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인물

340년전 손맛 잇는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

이정웅 2009. 5. 16. 21:40

340년전 손맛 잇는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
 
 
 
▲ 영양은 현재 한국 전통음식의 보고인 음식디미방의 복원 및 계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여성군자 장계향 선생을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심어가고 있다. 여성후학들이 두들마을에서 음식디미방의 진수를 배우고 있다.
일월산과 반변천의 소중한 가치를 느낀 일행은 영양 석보면의 두들마을(언덕위의 마을)로 향했다. 두들마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마을이다.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마을 전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그 절경만큼이나 두들은 퇴계 이황의 제자, 작가 이문열, 독립운동가 등 한국의 대표 인물을 낳은 명문가이기도 하다.

일행이 두들마을에 간 까닭은 음식디미방의 저자이자 여성군자 장계향(정부인 장씨)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다. 장 선생은 어찌보면 영양이 낳은 가장 위대한 분이다. 일행이 도착한 날 마침 두들마을의 전통한옥체험관에서 장 선생의 인품과 전통음식의 맛을 배우려는 여성 후학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 선생은 한국 전통음식의 보고(寶庫)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했다. 음식디미방은 지금으로부터 약 340전에 쓰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두들마을에 터를 닦은 석계 이시명의 아내인 장 선생이 딸들을 위해 지은 조리서인 것이다.

일행이 장 선생을 만나는 이유는 장 선생이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를 집대성한 분인 것은 물론 신사임당 못지 않은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양이 가장 자랑하는 영양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행은 40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장 선생은 조선 선조 31년(1598년)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뒤 석계 선생에게 시집와 숙종 6년(1680년)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장 선생의 부친 경당 장흥효는 퇴계 이황과 학봉 김성일로 연결되는 퇴계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또한 경당은 서애 유성룡과 한강 정구에게 수학한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다.

장계향 선생의 부친이 바로 경당이다. 장 선생은 부친을 스승으로 둔 것이다. 부친의 영향으로 장 선생 역시 시·서·화에 능했다. 장 선생은 불과 12살의 나이에 유가의 몸 가짐과 성리학에 대한 열정 등을 적은 '경심음', '성인음', '소소음' 등 3편의 시를 창작했다. 말년에는 여성과 자녀의 몸가짐, 부모에 대한 공경, 이웃 사랑 등을 담은 시도 적었다.

김동걸 영양군 학예연구사는 "장 선생의 시에는 유학의 높은 철학적 사유와 자녀들의 선비상, 인간에 대한 애정, 어진 어머니의 형상이 잘 표현돼 있다"며 "이는 장 선생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 선생은 19살 때 석계의 계실(繼室·둘째 부인)이 됐다. 장 선생은 전실인 김씨 부인의 자녀를 포함해 7남 3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퇴계의 후학인 장 선생의 자녀들 역시 퇴계의 후학이었다. 자녀의 학문적 스승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장 선생의 셋째 아들인 갈암 이현일은 영남학파의 대학자이자 당시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이조판서를 지냈다.

국가는 장 선생의 자녀 교육과 인품에 감복해 정부인의 품계를 내렸고, 이때부터 장 선생은 '정부인 장씨'라고 불리게 됐다. 현재 석계 종택의 위패에는 정부인 장계향으로 모셔져 있다.

김동걸 학예연구사는 "주목되는 것은 장 선생의 자손들에 의해 당시 영남학맥이 주도됐다는 점이다. 이는 퇴계 학통과 학맥의 전수 과정에서 장 선생의 학덕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자녀들로 하여금 영남학통의 큰 맥을 잇게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장 선생의 인품과 자녀교육은 셋째 아들 현일이 쓴 '광지(壙誌)'에 잘 나타나 있다.

"자애로움과 엄격함으로 자녀들을 훈도했고, 서화와 문장에 뛰어나 훌륭한 필적을 남겼다. 흉년으로 민생이 참혹할 때 구휼에 정성을 다하고 노인을 보살피고 고아를 데려다 가르쳐 인덕과 명망이 주변에 자자했다. 또한 친정 부모와 시가 부모를 모시고 봉향함을 극진히 해 몸소 효의 전범을 보이시니 그 아래에서 훈육된 자녀들 또한 효성이 지극했다."

장 선생의 역작인 음식디미방도 조리서로서의 그 가치 못지않게 장 선생의 학문적 정신과 인품이 서려 있는 것이다.

임정평 영양군 문화관광 담당은 "음식디미방에는 퇴계학의 정신과 한국의 어머니상이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일행은 음식디미방의 가치를 탐구했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 일흔의 여성은 조선의 유교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아는 방법'이라는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진수성찬으로 펼쳤다. 한문도 아닌 한글로 너무나 상세히 기록했다.

국수와 만두를 비롯한 면병류, 어육류, 소과류, 주류 등의 조리법과 저장·발효·보관법 등에 이르기까지 146가지를 소개했다.

더욱이 34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재연할 수 있게끔 배려했으니 음식디미방이 갖는 그 가치가 정말 대단했다.

또 음식디미방은 옛날과 오늘의 식문화를 비교·연구하는 소중한 자료이자 거의 사라져 버린 옛 조리법을 발굴할 수 있는 지침서로서도 그 가치가 대단하다.

영양은 올해부터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 장씨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있다. 이제 음식디미방을 넘어 한국의 어머니, 여성군자 장계향 선생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음식에 학문을 담고, 자녀 교육과 부모 공경, 이웃 사랑을 평생 실천한 장계항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어머니상이 아니겠는가.

가정의 달 5월 단절과 삭막함이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이때에 장계향이라는 위대한 어머니상이 우리에게 더욱 깊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종규기자 영양·김경돈기자

자문단 김동걸 영양군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