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스파스

"시민품 돌아온 비로봉…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이정웅 2009. 9. 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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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북사면에 위치한 고려시대에 축조된 공산산성터. 인근도로가 개방되어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하게 될 예정이다. 채근기자mincho@msnet.co.kr
팔공산 정상부의 1,175m봉(비로봉) 통과 허용조치는 대구 지방사에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다. 1960년대 초 군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막혔던 일반인 통행을 가능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사실상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팔공산의 온전한 답사가 이로써 가능해진다. 포항 죽장 지점 낙동정맥(태백산맥)에서 출발해 보현산 화산 팔공산 황학산 등을 거쳐 왜관 자귀산까지 이어가는 '팔공기맥'이라는 특별한 산줄기 종주도 덩달아 완전해질 수 있다. 팔공기맥은 6·25전쟁 때 최후의 보루가 돼 이 나라를 지켜 준 사선이어서 우리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답사해야 하는 산줄기다.

물론 일반 시민들은 정상부 도로가 개통되면 자동차를 이용해서도 쉽게 정상부에 오를 수 있다. 팔공산 한티재 북편의 동산계곡(군위군 부계면 동산리)을 통해 팔공산 북사면으로 진입하면 된다. 정상부 부근에 도달하면 곧바로 옛 공산성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때 몽고군 침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란했다가 숱하게 굶어죽었던 이 지역 가장 슬픈 역사가 도사린 터다. 임진왜란 때도 많은 피란민이 몰렸고 의병들이 그곳을 근거지로 적병에 대항했다.

옛 성 유적 인접해 있는 장군봉(1,123m)은 절경과 숱한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그 서편에는 높이 100여m의 놀라운 풍광을 숨긴 청운대 절벽이 있고, 김유신 장군의 전설을 간직한 장군수 굴, 원효 수도 전설을 가진 원효굴 등도 있다. 시민들이 드디어 이 절경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국은 그 부분에 주차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탐방객들은 거기서 자동차 혹은 도보로 정상 봉우리(일명 제왕봉·1,193m봉)로 가거나 더 나아가 동봉 혹은 서봉 등으로도 왕래할 수 있게 된다. 마침 최근엔 1,193m봉 도보 등산로도 개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팔공산 정상부 최고봉은 방송-통신탑들이 들어서 있는 1,193m봉이지만 규모가 극히 작은 반면, 북편으로 200여m 떨어져 있는 1,175m봉(비로봉)은 상부가 평탄할 뿐 아니라 그 면적이 수만평에 이른다. 또 거기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까지 있어 고려 때 이후 공산성이 세워져 대구권의 피란처가 돼 왔다. 하지만 그런 특성은 현대 들어서도 군 부대 주둔에 적지로 꼽히게 해 지금까지 일반인 접근을 불가능케 만들기도 했다.

이번 비로봉 개방은 군 당국이 시민들 편의를 고려해 자발적으로 취하는 그야말로 전례 드문 획기적 조치다. 사정이 다르긴 하겠으나 범시민적 개방운동으로까지 번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주 무등산 정상은 여전히 봉쇄돼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그러나 군부대의 출입 통제로 그동안 잘 유지돼 왔던 정상부 자연상태가 개방을 계기로 심각한 훼손을 겪는 일은 앞으로 더 애써 막아야 할 과제다. 공산성 유적을 잘 보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직 남아있는 성문 등을 다잡아 복원하고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가산성이 더 중요한 유적같이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는 그게 공산성 복구를 포기한 대신 만든 근세 구조물일 뿐이다. 문화재와 원시자연 보호 조치는 도로 개설 작업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