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인물

나무에 관한 책 두 권

이정웅 2009. 11. 25. 19:18

수령 600년된 소나무로 단종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뜻의 관음송. 천연기념물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349호. 영남일보 DB
수령 600년된 소나무로 단종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뜻의 관음송. 천연기념물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349호. 영남일보 DB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나무' 혹은 '사람'의 이야기를 엮은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책은 나무의 이야기이자 역사와 예술과 인간의 이야기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에는 어린 왕이 걸터앉아 서울 쪽을 보며 통곡했다는 관음송이 있다. 나무는 폐왕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고 슬픈 소리를 들었다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령포 일대에 홍수가 나자 단종은 읍내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때 부근 언덕의 은행나무에서 은행 몇 알을 따 자신의 운명을 점쳤다고 한다. 거처를 옮긴지 얼마 안 돼 사약을 받고 한 많은 짧은 생애를 마친 단종의 시신은 그 은행나무를 심은 엄임의의 12세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수습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의 700년된 음나무 아래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집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공양왕은 이성계에 의해 원주로 유배됐다가 1934년 3월 삼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채 2년이 안돼 왕비와 두 아들과 함께 목이 졸려 죽는다. 474년 34대를 이어오던 고려 왕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때 그의 곁에는 귀신을 쫓는다는 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 고고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사진)가 14년에 걸친 답사와 조사를 통해 나무에 얽힌 전설과 사연을 담은 책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를 펴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와 숲은 모두 250여개에 이르는데, 이 중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73개가 수록되었다.

문화재 나무마다 역사적 사실을 두루 짚어내면서 나무의 사진●행정구역·지정 시기·지도상 위치 등의 정보까지 꼼꼼히 더했다.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는 상림, 김종직이 다섯 살 아들을 잃고 슬픔을 이기기 위해 심었다는 느티나무, 곽재우가 북을 걸어놓고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2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향토 사학자 이정웅씨3
향토 사학자 이정웅씨
의병을 훈련시켰다는 현고수(懸鼓樹) 느티나무, 이언적이 자신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심은 조각자나무, 김정희가 청에서 가져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백송 등 책은 이처럼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나무들을 답사 대상으로 삼아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향토 사학자 이정웅씨

'대구·경북의 명목을 찾아서'

산림 전문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재야 향토 사학자로 활동 중인 이정웅씨(사진)가 펴낸 '대구·경북의 名木을 찾아서'는 2년 동안 경상도 일대의 명목을 찾아다니며 그 유래를 파헤친 작품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 서상돈 선생이 천주교 대구교구청 앞에 심은 히말라야시더와 박태준 작곡 '동무생각'의 무대가 된 대구 동산선교사 주택의 담쟁이 덩굴, 정만양·규양의 형제애를 상징하는 회계서원 향나무, 장수황씨의 네 번째 가보인 칠봉가 탱자나무 등 25종 52그루의 나무 이야기가 실렸다.

진성이씨의 뿌리인 주촌의 뚝향나무는 평양 영변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로 14세손 만인(晩寅)은 '경류정 노송기'라는 기문(記文)을 남겨 나무 한그루조차 허투루 다루지 않은 선비정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예천군 풍양면의 회화나무는 동래 정씨 일가가 17명의 정승을 배출하는데 일조하면서 한 가문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나무로 손꼽히고 있다.

경상도 사람들과 극한의 대립관계에 있었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심은 포항의 은행나무는 지금껏 '남인의 나라'에서 위풍당당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금을 내는 예천의 석송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하사금 500만원을 종자돈으로 매년 초·중·고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씨는 "명목이 지역의 소중한 문화·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홍보하지 않는 지자체가 많아 안타깝다"면서 "수령이 많아 노쇠해가는 명목의 유전자 보존이나 후계목 양성이 시급하며, 종택에 심어진 나무는 가문의 상징수로 정해 특색있게 보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09-11-25 08:20:0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