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1604.gif“350m에 불과하지만 제 인생에서 더없이 빛나는 길이라 믿습니다.”

이동영(37)씨는 17일 오후 12시57분, 리치먼드힐의 베이뷰 길에서 ‘짧지만 가장 화려한 길’을 달린다. 길어야 1분. 그러나 60억 명 중에서 뽑힌 대표주자의 일원으로 지구촌 축제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결코 짧은 거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더욱이 이씨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성화를 들고 캐나다에서 뛰는 단 2명의 한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연아 선수는 이씨에 이어 19일 해밀턴에서 역시 350미터 정도 성화를 봉송한다.

“사실 처음에 한인은 저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더 영광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 스타와 같은 반열에 서게 돼서.”

이씨가 성화주자로 최종 선정된 때는 10월 말. 영화관에서 우연히 성화봉송 이벤트를 진행하는 코카콜라의 광고를 보았다. 별 기대 없이 신청서를 보냈는데 9월 초 덜컥 1차 심사를 통과했다.

2차 시험은 신중하게 치렀다. 지역사회와 환경문제에 어떻게 기여하느냐는 주관식 질문이었다. 20대 때 철인 3종경기로 체력을 단련했던 이씨는 요즘처럼 눈비가 오지만 않으면 회사까지 왕복 24km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지난 10월엔 토론토마라톤에 출전해 풀코스를 달렸다. 대회 준비는 별 게 아니다. 회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그냥 달려서 출근하는 게 전부다.

“이런 일상을 담담하게 써서 제출했는데 이게 심사위원들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아요. 10월 말 최종 합격통지서를 보내오더군요.”

17일 실제 성화봉송 땐 큰빛교회 교우들이 대거 응원을 나온다고 한다. 오문길 장로는 “구역모임 멤버들이 태극기와 캐나다국기를 들고 함께 뛰기로 했다”고 전했다.

회사에 달려서 출근하는 것처럼 이씨에겐 엉뚱한 면이 많다. 지난 97년 1월1일 캐나다에 왔다. 새 출발을 뜻있게 하고 싶어 새해 첫날을 잡았다. 노바스코샤 아카디아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한 이씨는 대학 한 학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2000년 IBM 인턴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턴생활이 끝나는 날, 대학 졸업 후 오라는 회사 간부의 말에 “그땐 나를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할 것”이라 배짱대답을 하자 그 자리에서 정식 입사지원서를 꺼내놓더라는 것. 그렇게 정식사원이 된 이씨는 요즘 회사 핵심경영정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제 아내가 이런 말하면 너무 거창하다고 핀잔을 주는데요, 아무튼 우리 한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데 기여한 거 같아 정말 기쁩니다.”

이씨는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영어공부하면서 만난 홍애식씨와 2000년 결혼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