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노력 끝…친일인명사전 등재 제외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 아들 신철식씨

이정웅 2009. 11. 30. 20:28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 명예회복 기뻐"
발행정지가처분 신청 등 끈질긴 노력 끝…친일인명사전 등재 제외
 
 
 
신철식 신현확씨 아들·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공직에서 물러났어도 올백머리 스타일의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55)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최근 아버지, 고 신현확 총리의 명예를 지키는데 성공하면서 그는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신 전 총리가 포함됐다가 최종 명단에서 빠지게 된 것은 발행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한 그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쉽지 않은 소송이었고 소송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당초 신 전 총리를 친일파로 규정한 것은 1943년 고시에 합격한 뒤 일본 상공성의 수습사무관으로 근무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당시 신 전 총리를 조선총독부가 아닌 일본 본토의 사무관으로 임명한 것은 '내선일체'의 상징으로 만드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친일파로 낙인찍을 수 있는 근거로 충분했다.

그러나 신 전 차장은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합방체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며 "1945년 봄 휴가를 간다는 핑계로 고향 왜관으로 돌아온 후 해방 때까지 복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밥상머리에서 하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면서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을 보지 않고 한 순간의 행위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며 "신중하고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아들로서 도리를 다 한 그가 국무총리의 아들이라는 후광으로 차관자리에 오른 건 아니었다. 칠곡이 고향이었지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와서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시 22회로 공직에 입문, 30년간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 등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고위공무원의 아들로 자라 공직 외의 다른 길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직을 맡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차관을 지냈지만 그는 그 시절을 '적대적 정권에서 보낸 10년'으로 기억했다. 사퇴 종용도 여러 차례 받았고 관두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너까지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DJ 추종자들만 남아있으면 이 나라는 어찌하느냐'는 주변의 지적에 끝까지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런 정권에서 일을 하면서도 소신을 굽힌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언제 나가도 좋다는 생각을 자락에 깔고 일했기 때문이죠."

신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늘 정치권의 '러브콜' 대상으로 만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는 한나라당으로부터 공천제의를 받았지만 정치는 하지않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실 그는 선거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대학 1학년때 아버지가 칠곡에서 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만사 제쳐두고 선거운동을 도왔고 행시 합격 후 사무관 발령 대기중이던 1978년에도 아버지의 선거를 진두지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입법기관이 되기 위한 선거인데도 불법행위 없이는 당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됐다.

국무조정실 차장 시절 그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최고의 자산가에 올랐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부동산과 대학때 산 삼성전자 주식 매각 대금으로 매입한 서울 강남 빌딩 등 500억원대에 이른다. 공직자로서는 엄청난 재산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돈 많은 사람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며 "나를 필요로 하고 부른다면 희생하고 봉사할 각오는 되어있지만 지금 어디 가서 장관 한 자리 한다고 해서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2007년 4월 신 전 총리가 작고하자 아버지의 족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우호(于湖)문화재단'을 설립, 이사장이 됐다. 재단은 '우호학술상'을 제정, 인문사회학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그는 앞으로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松下政經塾)처럼 미래 국가지도자를 기르는 역할로 확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09년 11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