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육군 대장’ 이용석

이정웅 2010. 4. 20. 14:39

수암칼럼] ‘육군 대장’ 이용석
 
 
 
이용석, 사실 그는 대장이 아니라 중령이다. 육군3사관학교 16기생, 오는 10월 만기 전역을 앞둔 현역 군인이다. 그런데 왜 그의 이름 앞에 ‘육군 대장’ 계급을 붙였는가. 지난 34년간 그가 대한민국 육군에서 만년 중령으로 봉직해 온 동안의 역정(歷程)과 천안함 미복귀 장병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 해답을 풀어보자.

2000년 4월 3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328고지에서 육군 중령 이용석은 60년 전 6`25 전쟁에서 산화한 호국 장병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이후 10년째 전국 방방곡곡 전투 지역만 찾아 산야(山野)를 누비고 있다. 10년 동안 그가 지휘하는 발굴팀이 찾아낸 유해는 4천317구(4월 9일 기준). 국군 3천618구와 UN군 13구 그리고 북한군 485구, 중공군이 268구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전사했거나 실종된 전체 국군 장병은 16만 2천394명, 현충원 등에 안장된 2만 9천202명을 제외한 13만여 명은 아직도 치열했던 격전지에 묻힌 채다.

그가 처음 유해 발굴 사업을 기획하고 전투 고지를 누비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중령이 유골이나 파고 다닌다’고 비아냥거리거나 ‘삽질만 하면 나오는 거 아니냐’고 폄하당하는 마음고생을 겪었다. 그러나 DNA 감식 등으로 유가족들을 찾으면서 사회적 관심이 커져 나가 참전 용사나 주민들의 제보가 잇따라 한 해에 1천 구 이상 찾아내는 등 발굴 사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발굴 사업 초기, 장의사와 문화재 개발 전문기관, 대학 등을 찾아다니며 발굴 절차와 유해 염습법을 배우고 실습해 가며 요령을 터득해 나갔다. 어떤 대학교수에겐 ‘이봐요, 우리는 장의사가 아니야’라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수모 아닌 수모도 겪었지만 미국에 있던 어느 인류학 전공 교수는 유해 발굴을 도와달라는 호소에 흔쾌히 귀국, 지원해 주기도 했다. 다부동 369고지에서 ‘최승갑 일병’이란 이름이 새겨진 삼각자를 발굴, 유가족을 찾아내 태극기를 덮은 유해 앞에서 통곡하게 한 장면은 6`25 전쟁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도입 부분이 되기도 했다.

10년 세월 동안 철원 전투지에서 벌떼에 휩싸여 응급 주사를 맞고 양구 900고지에서는 낙상으로 1개월간 고생하는 등 온갖 고초와 애환을 마다 않은 이용석 중령, 그는 지난해 11월 제대 장교에게 주어지는 사회 적응 교육 기간(1년)의 휴식도 반납하고 단 한 명의 유해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계속 고지를 누비고 있다. 전쟁이 멈춘 지 60년이 지나고 이 중령팀이 산야를 헤치고 다니는 지금 이 순간, 침몰된 천안함의 젊은 수병 8명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바로 1년 전 이맘때, 경북 영덕군 경정리에서는 북한 어뢰에 침몰됐던 미 해군의 유해가 발굴됐었다. 6`25 전쟁 때인 1950년 9월, 동해 바다 위에서 북한군 어뢰에 맞아 침몰된 미 해군 함정에 승선했던 로버트 웨렌 랭웰 해군 대위였다. 어뢰 격침 후 수십 년을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이름 모를 어부의 그물에 걸려 뭍으로 올라온 뒤 다시 버려져 땅에 묻혔다가 이 중령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천안함 후배 장병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는 이 중령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도 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을 찾기 위해 소리 없이 민관 일체로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는 구호 아래 북한 땅까지 들어가 조국의 아들들을 찾아옵니다. 이제는 국가가 영웅들을 일으켜야 합니다."

고참 중령의 검붉게 그을린 얼굴과 눈빛을 보노라면 ‘저, 다시 태어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이 업무(유해 발굴 사업)를 또 하겠습니다’는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중령이 하루아침에 대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일으켜 세운 4천317구의 호국 영령과 아직도 격전지에 묻혔을 13만 국군 장병의 넋, 수십만의 유가족들은 10년 세월을 유해 발굴이란 궂은 업무에 몸바친 참 군인정신 하나만으로도 두 어깨에 별을 달아 ‘육군 대장 깜 이용석’으로 불러주고 싶을 것이다.

천안함 미복귀 해군들의 귀환을 위해서라면 태평양을 다 뒤져서라도 끝까지 찾아 나설 법한 그와 발굴단의 호국정신에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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