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과 평화의 고장, 대구경북 '다시는 6·25 비극없도록' 낙동강 전적지 되살려야 | ||||||||||||||||||||||
1950년 8월 14일 오전 8시쯤 경주 기계천 제방에 피란민 200여명이 몰렸다. 어머니는 생후 21개월인 이씨를 업은 채 네 살인 형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누나를 안고 하늘을 바라봤다. 미군 폭격기 5, 6대가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이씨의 누나는 “기절한 뒤 깨어나 보니 아버지는 얼굴이 피투성이인 채 다리를 내 목에 걸치고 있었고, 어머니는 옆에 누운 채 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졸지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잃고 세상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고아 신세가 돼버렸다. 부모가 난리 통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바람에 지금까지 형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을 통해 남·북한 각각 100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냈다. 어떤 전쟁이든 군인보다 민간인 피해가 더 컸다. 한반도에 6·25와 같은 전면전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북한 핵시설 폭격 등을 가정한 전쟁수행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개전 1주일 안에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 1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 민간인 피해는 더 심해 전쟁 1주일이 넘어서면 사상자가 약 500만명이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 전쟁에서 죽음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 죽음은 반드시 적군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볼 수도 없다. 적군의 폭격이나 화생방전에 의해 희생될 가능성이 크지만, 6·25 때처럼 아군이나 미군의 오폭이나 피란대열 속에서 억울한 양민이 희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았다. 전쟁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죽음이 생명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듯…. 6·25 전쟁은 낙동강 전선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수세에서 공세로, 후퇴에서 반격으로 결국 한반도의 남쪽을 지켜낸 셈이다. 경북지역 낙동강 전선에는 숱한 유적이 남아 있지만, 그 현장과 의미는 점차 퇴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낙동강 전선 유적을 호국과 평화의 상징처로, 역사문화관광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낙동강 전선은 6·25 당시 마지막 보루이자, 전쟁의 양상을 결정적으로 바꾸게 한 역사적인 유적지”라며 “한국사나 세계사적으로도 주요한 유적이 방치되거나 사라지고 있는데다 그 의미마저 희석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왜관, 영천, 경주, 포항 등 낙동강 전선의 유적자원을 다시 살려내 안보교육의 장과 세계적인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동강과 동해안을 따라 형성된 전쟁유적지를 복원하고 소규모 박물관, 소공원 등을 조성한 뒤 이를 역사탐방코스로 벨트화하면 세계적인 노천박물관으로 관광자원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난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새로운 관광영역인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산재한 낙동강전투 유적 6·25 당시 경북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전선은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북한과 중공군의 공세 속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반격에 나섰던 전환점도 낙동강 전선이었다. 상주 화령장전투(7월 중순), 안동 내성천전투(7월 말), 칠곡 다부동전투(8월 초~중순), 경주 안강·기계전투와 영덕 장사상륙작전(8월 중순), 군위 조림산과 화산전투(9월 초), 영천전투(9월 초순), 포항 형산강도하작전(9월 중순) 등등. 1950년 8월 55일간 치열한 싸움을 벌인 칠곡 다부동전투는 엄청난 희생을 담보로 대구를 사수하고 북한군의 공세를 수세로 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같은 해 9월 영천전투는 국군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해 총반격을 단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9월 중순 인천상륙작전과 양동작전으로 펼쳐진 영덕 장사상류작전은 유격부대 상륙을 통해 북한군의 정보 교란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50년 7월 중순 3일 동안 벌어진 상주 화령장전투, 8월 초 풍기-영주-예천-안동으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4일 동안 치열한 공방을 벌인 안동 내성천전투, 9월 초 1주일 동안 군위 조림산과 화산에서 치른 전투 등도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주요 전투였다. 포항 형산강 도하작전으로 9월 중순 적에게 빼앗긴 포항시가지를 탈환하고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경주에서 8월 초부터 47일간 공방을 벌이며 고지의 주인이 17차례나 바뀐 안강·기계전투는 다부동전투, 영천전투와 함께 낙동강전선의 3대 전투로 꼽힌다. ◆평화와 관광의 명소로 “한국전쟁이 6·25 맞지요?” 본지가 지난해 6월 지역 초·중·고·대학생 425명을 대상으로 ‘한국전쟁과 통일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일 당시 한 고교생이 한 말이다. 중고생의 17~25%는 6·25와 관련한 ‘인천상륙작전’ ‘인해전술’에 대해 알지 못했다. 6·25의 시점과 발생배경, 진행과정에서 대해 명확히 인식하는 청소년들이 드물었다. 동족 간에 엄청난 피를 뿌렸던 뼈아픈 기억이 세월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형제간의 우애와 아픔을 다룬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미국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 배우 나시찬 주연의 TV 전쟁드라마 ‘전우’의 리메이크, 일부 청장년층의 인기를 모으는 서바이벌게임, 인터넷 전쟁게임물 등등. 6·25를 겪었던 세대들은 전쟁의 끔찍함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전쟁영화나 드라마, 게임 속에서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보다 감동과 짜릿함, 재미가 더 부각되고 있다. 전쟁이 희화화되고, 전쟁에서의 죽음이 결코 감동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전전(戰前)세대의 아픔이 잊히고, 전후세대의 무감각이 일상화될 때 전쟁은 또다시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쟁 유적지를 활용한 안보교육과 이를 역사적인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거제 포로수용소전시관, 폴란드 아유슈비츠수용소박물관, 독일 베를린 유대인박물관과 홀로코스트기념관 등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낙동강 전선 유적지를 역사적 유적으로 복원·개발한다면 교육과 체험의 장, 세계적 관광명소로,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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