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대구, 민심도 꼴찌인가? | ||||||||||
입이 열 개라도 되받을 말이 없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할 '건덕지'도 찾기 어렵다. 욕도 아니고 비아냥도 아닌 ‘꼴찌’의 수모를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다. 입속으로만 ‘그래도 뿌리 있는 문화 도시고 교육 도시인데…’라고 되뇌어 보지만 계수(計數)를 들이밀며 꼴찌라니 어쩔 도리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경제지표나 통계만 꼴찌라면 또 그러려니 하겠는데 경제보다 더 소중한 것들, 예를 든다면 긍지, 인심, 그리고 덕(德) 같은 정신적 가치마저 덤으로 잃어 가는 것이다. 세 가지의 실화(實話)를 놓고 과연 우리가 경제만 꼴찌 도시인지 정신도 꼴찌 도시인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이야기. 대구시 복현동 아침 등굣길, 시내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 길가는 사람을 눈치봐가며 붙들고 사정을 한다. ‘아저씨, 휴대폰 한 통화만 하게 해주세요.’ ‘아주머니, 집에 전화 한 번만 해줄 수 없겠습니까.’ 방금 전 엄마가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주고 돌아간 뒤 버스를 타기 직전 버스비를 안 넣고 온 걸 알고 엄마에게 다시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오전 8시 20분, 바쁘게 지나가는 어른들 틈에서 휴대폰 한 통화를 구걸하기 일곱 사람째, 어느 새 시계는 10시 30분을 넘어갔다. 2시간 동안 끝내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이냐’고 묻거나 ‘번호가 몇 번이냐 내가 걸어줄게’라고 말을 건네 온 사람은 없었다. 여덟 번째, 드디어 포기하고 늘 다니던 길거리를 눈여겨 가며 학교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북구 복현동에서 중구에 있는 학교까지 걸었다. 그 사이 학교에서는 아이가 안 왔다는 전화를 받은 학부모와 학교 측이 납치가 아닐까 비상이 걸렸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는 등 소동 속에 낮 12시가 가까워서야 교문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교장선생님이 놀람 반 반가움 반 울상이 다 된 아이를 끌어안았다. 10살짜리 어린아이가 2시간을 길거리에서 그 흔해 빠진 휴대폰 한 통화를 호소했는데도 7명의 시민이 냉랭하게 흘려 지나가 버리는 도시.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그 아이 할아버지가 말했다. ‘대구 인심이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메말랐습니까?’ 둘째 이야기. 대형마트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트 직원이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경찰서에 가자’고 윽박질렀다. 아이의 손에는 포장이 뜯긴 장난감 자동차가 들려있었다. 엄마가 계산대서 계산하고 나올 동안 밖으로 미리 나와 어린 호기심에 포장을 바쁘게 뜯느라 엄마를 놓쳐 버렸다. 다시 엄마 찾는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 뜯긴 장난감을 든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수상히 여긴 직원 눈에 좀도둑으로 걸린 것이다. 경위를 묻지도, 답할 여지도 주지 않고 경찰서를 들먹이며 끌고 가니 아이가 놀라 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매장 안이 10여 분 소란한 실랑이가 벌어져도 누구 한 사람 ‘왜 그러느냐’고 아이 편에서 사정을 들어보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1주일 전의 실화다. 지체장애자가 육교 난간에 목을 맸다. 3시간이 넘도록 어느 행인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약한 자의 주검에 대한 무관심, 휴대폰 한 통화료, 장난감 영수증, 경제적 가치만 보였지 약한 자의 주검이나 동심의 상처 같은 건 보질 못했다. 경제만 좇았지 나눔의 인심과 약한 자에 대한 배려 같은 심덕(心德)은 저 멀리 팽개쳐져 있었다. 경제를 조금 잃었다고 마음까지 버리면 대구는 정말 꼴찌 도시가 된다. 호주머니는 비더라도 마음이나마 부자 도시로 지키자. 김정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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