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60년 전의 '주먹밥'

이정웅 2010. 6. 28. 20:22

 60년 전의 '주먹밥'
 
 
 
중국 청(淸)나라 황제들은 조선왕조의 왕이나 황제들보다 평균수명이 훨씬 더 길었다. 태조인 누루하치부터 부의(溥儀) 황제까지 12명 황제 중 30대 이하에서 죽은 황제는 4명, 30% 선이다. 그것도 성병에 걸린 동치(同治) 황제(19세)와 수두에 걸렸던 순치(順治) 황제(24세) 아편중독으로 죽은 문종(文宗)(31세) 등 질병 관련 사망을 빼면 단 1명인 셈이다. 대신 60세를 넘긴 황제는 6명으로 50%나 된다. 반면, 조선왕조는 30대 이하에 단명한 왕이 11명이나 되고 60세를 넘긴 왕이나 황제는 단 6명(22%)으로 청나라의 절반밖에 안 된다.

청나라 황제들의 장수 비결이 빈번한 소수민족 간의 투쟁 등으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끊임없이 ‘움직인’ 때문이란 분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독특한 황실 식사법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청나라 황제들의 식단은 대체로 한 끼 밥상에 30여 가지의 반찬과 국들이 나온다. 그러나 황제는 푸짐한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똑같은 반찬에 두 번 이상 젓가락을 댈 수 없었다. 아무리 자기가 즐기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두 번 이상을 집어 먹지 못한다. 만약 같은 음식 쪽으로 세 번째 수저가 나가면 즉시 옆자리서 시중들던 식사 담당 시종이 그 반찬 그릇을 치워버린다. 어느 음식에 두 번 이상 황제의 젓가락이 가는지를 감시 통제하는 것이다.

이튿날에도 어제 두 번 먹었던 음식에는 손을 못 대게 한다. 첫째 목적은 황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가 알려지지 않게 함으로써 아첨꾼을 막고 독살 기도를 방지하는 것이고 둘째 목적은 편식 방지에 의한 건강 지키기라고 한다. 그런 독특한 황실 식사법은 민중 속에도 검소한 식문화를 번지게 했고 청조(淸朝) 중반기까지 황제의 왕성한 건강과 장수로 탄탄한 국력을 다지는 원동력의 하나가 됐다.

며칠 전 우리나라 국방부장관과 미군사령관 두 전`현직 대장(大將)들이 6`25전쟁을 회고하는 ‘6`25 주먹밥’ 시식(試食) 행사 장면이 보도됐다. 굳이 60년 전 그 시절의 주먹밥을 먹어 보인 이벤트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고난 시절의 호국정신을 되새겨보자는 뜻일 것이다. 매일 밤새 40여 명의 병사들을 고지 위로 올려 보낸 뒤 새벽녘 주먹밥 40개를 만들어 올라가 보면 살아있는 병사는 언제나 3, 4명뿐이었다는 다부동 피의 능선, 산화한 전우 몫의 주먹밥을 눈물과 함께 씹었던 바로 그 ‘6`25 주먹밥’을 씹은 두 장성(將星)의 모습을 단지 기념일 이벤트로만 감상하기에는 먹는 것에 대한 반성 거리가 너무 많은 요즘이다.

장군들의 주먹밥 이벤트뿐 아니라 빵 2개와 물고기 5마리로 5천 명 군중을 먹였다는 성경의 가르침에서도 깨달아 볼 게 있다. 제자들이 가진 빵과 물고기로는 군중을 다 먹일 수 없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50명씩 나눠 모아 앉혀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곧 흩어져 있으면 제 주머니 빵을 저 혼자 먹게 되지만 곁에 모여 앉으면 차마 저 혼자 제 빵만 꺼내 먹지 못하고 내 보자기 속의 빵을 나눠 먹게 되는 인간 본성의 허를 꿰뚫었다고 볼 수 있다.

60년 전, 눈물 어린 주먹밥을 먹으며 자란 세대는 보수 골통인 양 매도하고 외면하며 제각기 모래알처럼 흩어져 돌아앉아 이기적 편향 의식에 빠져 있는 한, 백 마리의 물고기와 천 개의 빵이 있다 해도 서로 나눠 먹지 못한다. 비록 오늘날의 피자나 핫도그보다 맛이 없을진 몰라도 그 주먹밥을 먹으며 총탄 앞에 맞섰던 구국 정신만은 피도, 목숨도 나누고, 버릴 수 있었을 만큼 강하고 신성한 것이었음은 알아야 한다.

두 젓가락만 먹는 식사법으로 강성했던 청나라 황실도 31세, 19세, 38세에 차례로 요절한 마지막 3대째의 황제들이 아편과 성병 등에 빠져 선대의 ‘주먹밥 정신’을 잃으면서 망했다. 우리에게도 60년 전 주먹밥 정신을 단지 흘러간 보수 세대의 추억 거리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주먹밥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잊지 않을 때 강국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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