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형 퍼주기’ | ||||||||||
"빈 우유병을 자유나 이념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해주지도 않을 답을 듣기 전에 필자의 생각부터 밝힌다. 내 아이의 우유병을 채우고 싶으면 먼저 돈을 벌어서 분유를 사다가 우유병에 넣은 다음 가스 불에 데운 물을 태워야 한다. 분유 살 돈, 가스 살 돈은 엉뚱한데 퍼주고 자유니 평등 민주 같은 구호에다 붉은 머리띠만 매고 있어서는 우유병 속에 단 한 방울의 우유도 채울 수 없다. 그리고 아이는 굶주려야 한다. 강 대표에게 우유병 얘기를 던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 번지기 시작한 또 다른 ‘퍼주기’에 대한 반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며칠 전 강 대표는 천안함 희생 장병 영결식장에서 유족 한 분으로부터 이런 질책을 들은 적이 있다. "북한에 왜 퍼줍니까. 쟤들(천안함 희생 장병들)이 왜 죽었습니까. 이북×들이 죽였어요. (돈)주면 무기 만들어서 우리 국민 죽으라고 이거(대북 지원) 주장합니까. 이북 주란 말 좀 그만 하세요. 피가 끓어요!"…. ‘나눈다’는 말과 ‘퍼준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나눈다는 것은 동족애(愛)나 이웃 사랑이며 상생과 생산적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퍼주기는 나눠줘 봤자 고마운 줄 모르고 확대 재생산되지도 못하고, 거꾸로 피해만 입는 일방통행식 동정을 말할 때 쓴다. 지난 10년의 5억 달러가 동족애의 나눔이었는지 퍼주기였는지는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그동안 받은 쪽이 그 돈을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배곯는 주민의 배를 불리고, 금강산`개성공단의 발전과 6자회담 등에 도움되게 쓰여졌다면 그건 나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폭죽놀이에 60억 원씩 쓰고 어린이는 굶기고, 무력충돌에 돌려 쓰여졌다면 그건 퍼주기다. 그런 ‘퍼주기’가 이제 대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도처에 번져가고 전염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위기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상급식 공약, 미분양 아파트 사주기, 재개발 건설회사들의 선심성 이사비 경쟁 등등…. 곳곳에 우리끼리의 ‘남한형 신종 퍼주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10년 퍼주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면역이 생기고 불감증이 생겨서인가. 무상급식부터 보자, 분명 좋은 일이고 필요하다. 어느 누가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밥상 앞에서 아이들의 마음까지 상처받는 것을 옳다고 여길 것인가. 그러나 이미 97만 명(전체 학생의 13%)의 저소득층 초`중`고생들에게 무상급식은 시행되고 있고 여유 있는 집 아이들까지 전면 무상급식하자면 매년 3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냉정히 현실을 보자, 지금 국가부채는 400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작년 재정적자만 51조 원이다. 10년만 전체 무상급식으로 가면 밥값만 20조~30조 원의 부담이 는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식으로 마구 퍼쓰지 말고 당분간 참고 생산적 경제 쪽으로 더 돌려 충분히 키우고 불린 다음 우유부터 사고, 그 다음 민주니 평등을 말하는 것이 순서라는 게 반대론이다. ‘남한형 퍼주기’는 그뿐만 아니다. 미분양 아파트를 3조 원이나 풀어 사주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다. IMF 외환위기 때 4천여 개뿐이던 건설회사가 12년 새 1만 3천 개로 제멋대로 불어났다. 그동안 이들은 아파트 장사하려고 재개발 주택과 토지를 천정부지의 값으로 펑펑 ‘퍼주면서’ 매입했다. 당연히 아파트 값은 오르고 서민은 비싸진 새 집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미분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죄는 서민의 구매 능력이 아니라 업계의 퍼주기였다. 그걸 왜 세금으로 3조 원씩 쏟아 구제해 주려 하는가. 퍼주기로 망한 부실회사에 세금을 퍼붓는 건 분명 포퓰리즘이다. 그 건설업체들은 지금도 서울 경기지역 재개발 아파트의 시공권을 따내려고 재개발 주민에게 이사(移徙)비라며 3천만 원씩이나 퍼주고 있다. 지방서민들 수년간의 생계비가 공짜로 펑펑 퍼부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이런저런 ‘남한형 퍼주기’들은 대북 퍼주기보다 더 위험한 윤리적 포퓰리즘이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김정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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