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벙어리 재판’

이정웅 2010. 4. 13. 07:56

[수암칼럼] ‘벙어리 재판’
 
 
 
참 재미있는 재판이었다. 검사는 저 혼자 캐묻고 전직 여성 국무총리는 묵묵부답 딴청을 부렸다는 ‘벙어리 재판’(진실을 들을 수 없으니 판결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뜻의 우리네 속담) 얘기다.

돈 준 사람은 분명 돈을 줬다는데 의자 위의 돈은 온데간데없고, 돈 받았다고 의심받은 피고인은 묵비권으로 버티니 판사님도 긴가민가 애를 먹었을 법도 하다. 사정이야 어쨌건 이번 재판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은 한마디로 이런 말이 된다.

‘5만 달러는 개가 물고 갔나?’

물론 개가 물고 간 거냐는 우스개 같은 추리도 의문은 남는다. 100달러짜리 뭉치 5개가 든 돈 봉투 2개면 웬만큼 입이 큰 놈 아니고는 덥석 한입에 물고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돈 줬다는 사람이 애당초 돈 준 일이 없거나 받은 사람이 재빨리 다른 곳에 챙긴 뒤 입 다물고 버틴 게 된다. 그런데 판사는 개가 물어 갔는지 사람이 챙겨 갔는지는 가려내지 못한 채 돈 줬다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을 들어 무죄라 판결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앙심으로 주지도 않은 돈을, 그것도 총리급 거물에게 줬다고 했을까라는 평범한 의문은 그대로 남는다.

검찰과 병든 노인의 모함일까 아니면 묵비권 전략으로 진실을 묻어버린 걸까. 이도저도 명쾌하지 않다 보니 티격태격 이견(異見)만 무성하다.

구약성경에도 거짓 증언에 대한 교화(敎話)는 많다. 남의 미녀를 탐하다 거부당하자 ‘젊은 사내와 사통했다’는 거짓 증언을 꾸며 모함한 원로 두 사람을 따로따로 떼어 ‘그 여인이 사통한 곳이 어디냐 ’고 심문해 한 명에겐 ‘유향나무 밑에서’란 답을 받아내고 한 명에겐 ‘떡갈나무 밑이었다’는 대답을 받아 거짓 증언임을 밝혀냈다는 다니엘의 일화다. 이번 전직 총리 재판에서는 검찰과 법원 모두 구경꾼들이 무릎을 칠 만큼 명쾌한 다니엘의 판결을 보여주지는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마음속 한쪽에 뭔가 덜 털어낸 찜찜함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 재판이었다.

찜찜했던 건 한 가지 더 있다. 묵비권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그럴싸한 제도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익적 법 이익과 인권을 지키는 장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의 이야기다. 부정비리, 권력의 부패, 공직 지도자의 범법 같은 사익(私益)을 보호하는데 악용된다면 그런 묵비권은 또 하나의 부도덕일 뿐이다. 꼭 묵비권을 찍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재판을 일부러 받지 않는 자는 유죄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 푸블릴리우스의 말은 공판에서 검사의 심문에 입을 닫는 묵비권 행사도 유죄의 고백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번 전직 총리의 묵비권 행사가 스스로 유죄를 고백한 거냐 아니냐는 판단은 푸블릴리우스나 국민이 아닌 그녀의 양심이 판단할 문제다. 더욱이 방청석의 국민은 사회정의를 바랄 권리는 있되 법정 안의 정의를 결정하는 권한은 판사에게 있다. 따라서 어떤 판결이든 존중해 줄 수밖에 없지만 이번 전직 총리 재판은 솔로몬이나 다니엘의 판결만큼 뒷맛이 상큼하고 명쾌하지는 않았다고 감히 평가한다

더구나 이번 재판은 정치판에서 서로서로 아전인수, 유리하게 써먹으려 호시탐탐 벼르고 있던 사안이었다. 민감한 재판일수록 더더욱 쌍방 간 뒷말이나 이론(異論)이 없는 판결이 요구된다. 어떤 재판이든 재판부로 하여금 명쾌한 판결을 힘들게 만드는 ‘벙어리 재판’과 고의적 묵비권은 엄정하게 분별, 심리돼야 한다.

묵비권은 정당한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제도지만 악용될 때는 공익과 정의가 속고 밀려나야 하는 매우 나쁜 제도이기 때문이다. 고의적 묵비권에 의한 벙어리 재판을 막는 방법은 한 가지, 솔로몬이나 다니엘 같은 검찰과 사법부의 지혜로움이다. 항소심에서 다니엘 같은 판사가 나타날지 아니면 또다시 벙어리 재판이 될지 지켜보자.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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