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여성을 위한 정보의 변화와 시대상

이정웅 2010. 10. 29. 20:00

여성을 위한 정보의 변화와 시대상

2010. 10. 27. (수)

  현존하는 수많은 고문헌 중에 여성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담은 문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공교육의 대상이 아니었고 출사(出仕)를 위해서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의 교육은 오로지 가사를 익히고 부도(婦道)를 기르기 위한 교화 위주로 이루어졌다.
  여성이 배우고 익혀야 했던 일들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먹고 입는 일, 아이를 돌보고 어른을 모시며, 손님을 맞고 제사를 받드는 일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일이지만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여성의 가사교육은 특별히 서적을 매체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서적을 통한 교육은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 내훈(內訓)이나 여사서(女四書)같은 여훈서(女訓書)와 교화의 성격을 띤 열녀전(烈女傳)과 같은 책들을 통해 행해졌다. 여훈서나 열녀전을 통해 여성들에게 유교 교육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들 서적의 편찬은 곧 유교이념의 확산과 관련된다. 따라서 남성들이 추구했던 사상과 이념이 반영되어 있어 편찬과 간행에 남성들이 관여하였다.
  반면에 가사교육의 주체는 여성이다. 대부분 여성들은 가사와 관련된 실무 교육을 서적보다 가문 내에서 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서 전수받아 익혀야 했다. 여성들이 여성교육을 위해서 요리서나 여성백과 형식의 생활지침서들을 편찬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어떠한 교육이든 교육 내용에는 시대상이 반영된다. 유학이 사대부의 생활을 지배한 시기에 여성의 전유물인 가사와 요리도 사대부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수행과 관련이 깊다.
  사대부 가문의 위격(位格) 유지와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 가사 교육을 위한 서적으로 우선 요리서에 주목해본다. 현재 알려진 음식 관련 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전순의(全循義)의『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1459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죽, 밥, 국수, 떡, 과자 등의 조리법 229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1500년대 초 김유(金綏)가 저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에서도 모두 121가지 음식을 다루고 있다. 『수운잡방』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술담는 법으로 59항에 이른다. 허균이 1611년에 저술한『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130여 종류의 조리법이 전해지고 있다. 『임원십육지』나 『산림경제』에도 조리법이 실려 있어 조선시대 식생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저술들은 남성들에 의해 한문으로 쓰여진 것으로 여성 교육용으로 집필된 것은 아니다.
  여성을 위한 한글 음식조리서가 저술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음식디미방』이다. 『음식디미방』은 1670년 경 안동의 장씨부인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조리법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직접 쓴 한글 요리책이다. 『온주법』은 내앞마을 의성김씨 청계공 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자미상의 순 한글 조리서로 1987년에 발굴되었는데 총 56개 항 중에 술이 44항, 누룩 만드는 법이 2항이다.
  음식은 지방마다 가문마다 조리법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다. 반가에 내려오는 조리서들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조리법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저술되어 보존되어 온 것에서 보듯이 현재 전해지는 조리서는 양반가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이 모두 안동 지역 사대부가의 식생활과 관련되고 있다.
  이들 조리서에는 특히 술 담는 법에 관련된 것이 많아 안동지역 전통 술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또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조리법이라기보다는 주로 손님을 대접하거나 특별한 날 먹는 음식에 대한 조리법이 많다. 이들 요리서들이 봉제사 접빈객이 일상인 사대부가의 유교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나아가 조선시대 양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음식 관련 내용외에 다양한 생활 지식을 수록한 서적으로 대표적인 것이 『규합총서(閨閤叢書)』이다. 『규합총서』는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 1759-1824)의 저술로 여성들을 위한 가정백과전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규합총서』는 3부 11책으로 구성된『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의 1부에 해당되며 4권 5책으로 되어 있다. 1) 주식의(酒食議)에는 술의 종류와 빚는 법, 술과 건강과의 관계, 장 담기, 밥, 죽, 반찬 만들기, 떡과 과줄 만들기 등이 수록되어 있고, 2) 봉임측(縫紝則)에는 옷 만들기, 길쌈, 수놓기, 염색법, 빨래, 다듬질, 누에치기, 등잔 관리 등이 수록되어 있고 3) 산가락(山家樂)에는 밭농사, 원예, 가축 기르기, 팔도 소산물 등이 수록되어 있고 4) 청낭결(靑囊訣)에는 태교 및 육아법과 구급방, 약물 금기 등이 수록되어 있고 5) 술수략(術數略)에는 집의 좌향(坐向)에 의해 길흉을 가리는 법, 택일, 환난 대처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요리서를 넘어서 부녀자들이 집안을 경영하면서 부딪치는 의식주 전반에 관해 알아 두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여성의 가사교육 내용이 체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冒頭)에서 다룬 주사의에 실린 술과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외국 여러 나라의 술의 종류와 구기주(枸杞酒) 등 약주 20여 가지의 제조법, 유명 술잔의 내역, 술 마신 뒤 먹어서는 안 될 음식, 술 끊는 방문, 술 깨는 방문, 술병 안 들게 하는 방문, 술 못 마시는 사람을 마시게 하는 방문, 유황배(硫黃盃) 만드는 법 등 술과 관련하여 참으로 다양한 정보를 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규합총서』에는 부녀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으면서도 술에 관한 내용을 모두에 실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사대부가의 여성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했던 부분이 접빈객 봉제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규합총서』는 빙허각 생존시에 이미 세상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알려져 전사되곤 했다. 제일 많이 필사되어 이용되었던 부분이 주사의와 봉임측이었다. 여성의 일이 주로 주사의와 봉임측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사되면서 이본과 파생본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서 필사자 당시의 사회에 맞추어 내용이 가감 또는 변개되어 갔다.
  여성교육의 내용이 다양해지는 또 다른 면모를 『여자초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97년(정조 21)에 경상도 안동의 선비 김종수가 딸에게 지어준 『여자초학』에는 전국의 지리를 비롯해 관직 품계, 과거절목, 집안 족보까지 수록되어 있다. 여성에게 가사 뿐 아니라 양반가의 교양도 갖추어주기를 요구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성이 가사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서적을 통해 얻는 것은 여성에게 학교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학교 교과목에 가정 과목이 있어도 내용이 제한적이어서 실제로 여성들이 가정을 경영하면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여전히 교과서 밖에서 얻어왔다. 1960년대 이후에 가정백과전서와 요리서들이 꾸준히 간행되어 온 배경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백과사전에서 다루는 분야도 다양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책수도 많아졌다. 『규합총서』에 당대 여성에게 부과된 삶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처럼 현대여성의 삶이 반영되어 그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는 1990년대에도 여성이 가정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은 학교교육보다는 여성백과사전을 통해 얻었다. 분야가 더욱 다양해져 요리와 육아, 유아교육, 임신 출산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 외에 인테리어 주택, 취미, 레저 스포츠, 국내와 해외여행, 미용 다이어트, 가정 경제, 생활법률, 세계요리 등이 폭넓게 다루어졌다.
  여성교육의 내용과 여성의 사회진출 분야가 남성과의 경계가 약해지는 2000년대에 오면서 여성들이 정보를 얻는 방법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거기에는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존재한다. 생활화에 필요한 정보를 책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얻을 수 있게 됨으로써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한정된 정보보다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과 학생시절에 부모로부터 가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오늘날 여성이 가사와 관련된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얻는 기회는 더욱 많아졌다.
  가장본(家藏本)으로 대를 물려가며 전해지거나, 유통된다 해도 필사본 중심으로 유통되던 전통시대와는 달리 더 이상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폐쇄적이지 않고 정보 생산자의 수준과 계층이 다양해졌다. 블로거들이 동참하면서 본인이 알고 있고 경험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많아 취사선택에 신중해야 원하는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지역적 특징이나 가문의 고유함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가사 관련 지식과 정보들이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제공되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디미방』이나 『규합총서』에서 시대성을 읽을 수 있었듯이 우리 시대의 시대상이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선시대의 여성을 위한 저술의 편찬 목적에서 볼 수 있는 사명감과 신중함과 책임감 같은 것을 오늘날 인터넷 정보 생산자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이 시대의 한 특징이 아닌가 한다. 이용자에게 지혜와 현명함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글쓴이 / 최진옥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 주요저서
  조선시대 생원진사 연구, 집문당, 1998
  CD-ROM 사마방목, 한국정신문화연구원·서울시스템, 2002(공편)
  CD-ROM 사마방목, 한국정신문화연구원·서울시스템, 1997(공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