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담배 이야기

이정웅 2010. 10. 14. 17:42

계곡만필』에 실린 담배 이야기

2010. 10. 4. (월)

  호랑이 담배 피울 적의 이야기. 담배 연기를 머금은 멋진 영화 배우, 그런가 하면 폐암으로 사망한 어느 코미디언은 절대 흡연을 하지 말 것을 광고한다. 이처럼 담배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도 그 해악에 대해서는 현대에 들어와 더욱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담배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 식물로, 북위 60도에서 남위 40도까지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다. 1558년 스페인왕 필립 2세가 원산지인 남아메리카 중앙고지대에서 종자를 구해와 관상용, 약용으로 재배하면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후인 16~17세기 일본에서부터이다. 그 때문에 담배라는 명칭도 ‘tobacco'의 일본식 호칭이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담배를 담바고라고 불렀으며, 남쪽에서 들어왔다는 의미로 남초(南草) 또는 남령초(南靈草) 등으로도 불렀다. 담배가 조선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선 중기에 골초로 유명했던 계곡(溪谷) 장유(張維: 1587~1638)는『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담배가 들어온 지 20년 만에 위로는 고위 관리에서 아래로는 가마꾼과 초동까지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령초(南靈草)를 흡연(吸煙)하는 법은 본래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담박괴(淡泊塊)라고 하면서, 이 풀은 남양(南洋)의 제국(諸國)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처음으로 이 물건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초동목수(樵童牧豎)에 이르기까지 복용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 이 풀은 『본초(本草)』 등 여러 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성질이나 효능(效能)을 알 수는 없으나, 다만 맛을 보니 매우면서도 약간 독기(毒氣)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복용해본 적은 없고 그저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곤 하는데, 많이 들이마시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나 오래도록 피운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중에 겨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南靈草 吸煙之法 本出日本 日本人謂之淡泊塊 言其草出自南洋諸國云 我國 自二十年前始有之 今則 上自公卿 下至轝臺蕘牧 無不服之 其草不見於本草諸書 未知性氣及主治但味辛似有小毒 人未嘗茹服 但燒烟吸之 吸多則亦令人暉倒 久服者不必然 世之不服者僅僅千百之一耳]」

 

  위의 기록 중에서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초동목수(樵童牧豎)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거나, “세상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중에 겨우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라는 기록에서 담배가 당시 사회 전반에 유행하던 분위기를 엿볼 수가 있다. 다음의 기록을 보자.

 

  「지난번에 절강성(浙江省) 자계(慈溪) 출신인 중국 사람 주좌(朱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중국에서는 남초를 연주(煙酒)라고도 하고 연다(煙茶)라고도 한다. 백 년 전에 벌써 민중(閩中)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세상에 두루 퍼져 있으며, 적비(赤鼻)를 치료하는 데 가장 효력을 발휘한다.” 하였다. 이에 내가 묻기를, “이 물건은 성질이 건조하고 열이 있어서 필시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인데, 어떻게 코의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니, 주좌가 대답하기를, “응체(凝滯)된 기운을 흩뜨려서 풀어주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傾見華人朱佐 浙江慈溪人也 言中國稱南草爲烟酒 或稱烟茶 百年前閩中已有之今則幾遍天下 治赤鼻最有效 余問此物燥熱 必傷肺 何能治鼻 朱曰 能散滯氣故耳其言亦有理]」

 

  위의 기록에서는 중국에서는 민(閩) 지역에 이미 백년 전에 담배가 유행한 상황, 장유가 담배가 폐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 주좌가 주독에 의해 코가 붉게 되었을 때 담배가 일정한 효능이 있음을 언급한 내용이 주목된다. 이어서 장유는 담배가 차처럼 널리 유통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남초(南草)가 흡사 중국의 차(茶)처럼 세상에 널리 쓰여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차는 위진 시대에 처음 세상에 드러나 당송 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마침내 천하 백성들의 일상용품이 되어 마치 물이나 곡식처럼 쓰이게 되었으므로, 국가에서 전매하여 이익을 거둬들이기에 이르렀다. 지금 남초로 말하면, 세상에 유행된 지 겨우 수십 년밖에 안 되는데도 벌써 이처럼 성행하고 있으니, 백 년쯤 지난 뒤에는 그 이익을 두고 차와 다투게 될 것이다.[余謂南草之用於世 殆將如中國之茶 茶自魏晉始著 盛行於唐宋 至於今日遂爲天下生民日用之須 與水穀同用 國家至榷賣收利 今南草之行甫數十年耳 其盛已如此 百年之後將必與茶爭利矣]」

 

  이어서 장유는 사람들이 담배에 대해서, 술 취했을 때는 깨게 하고, 술 깼을 때는 취하게 하며 더울 때는 춥게, 추울 때는 덥게 한다는 세인들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옛날에 남방 사람들이 빈랑(檳榔)을 중히 여기며 말하기를, “술에 취하면 깨게 하고 술이 깨면 취하게 하며, 배고프면 배부르게 하고 배부르면 배고프게 한다.”하였는데, 이는 대개 빈랑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극찬한 말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남초(南草)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배고플 땐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땐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땐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땐 서늘하게 한다.”라고 하는 등 남초를 극찬하는 말이 빈랑의 경우와 아주 흡사하니, 이 또한 한 번 웃을 만한 일이다.[古者南人重檳榔 謂醉能使之醒 醒能使之醉 飢能使之飽 飽能使之飢蓋酷嗜而稱美之耳 今世嗜南草者 亦言飢能使之飽 飽能使之飢 寒能使之煖 熱能使之凉其稱之絶類檳榔 亦可一笑]」

 

▶ 최북_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중 부분_국립중앙박물관소장(한국의 미 인용)

 

  담배가 전래된 후 흡연은 조선시대 생활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갔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아 담배는 그림으로도 자주 표현되었다. 풍속화에 등장하는 담배를 썰고 있는 장면, 담뱃대를 들고 있는 장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은 담배 애호가들의 행위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순조가 “남초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혹은 위를 조양(調養)하는 데 이롭다고 하고 혹은 담(痰)을 치료하는 데 긴요하다고 하나,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속습(俗習)이 이미 고질이 되어 남녀노소를 논할 것 없이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겨우 젖먹이를 면하면 으레 횡죽(橫竹)으로 피우고 있는데, 세상에서 더러 ‘팔진미(八珍味)는 폐지할 수 있어도 남초는 폐지할 수 없다.’고 하니, 비록 금하고자 하나 이유가 없을 따름이다.”라고 한 것에서도 담배의 유행은 19세기에도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조선후기에 전래되어 대표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던 담배. 그러나 오늘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흡연은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공건물이나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공간은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먼훗날 담배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될까?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