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유교 이념의 산실, 최고의 대학 성균관.

이정웅 2011. 2. 28. 12:58

유교 이념의 산실, 최고의 대학 성균관.

2011. 2. 28. (월)

  입학 시즌이 되면 대학가는 활기로 넘쳐난다. 요즈음에는 대학가의 전세난과 물가 폭등으로 대학생들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대학생활은 인생에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꿈과 기대를 가져보는 시기일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 대학인 성균관 역시 유생들의 입학준비, 신고식 등으로 분주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삶과 우정, 정치적 야망을 다룬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방송되었다.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이곳에 들어간 유생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과연 성균관 유생들의 모습은 드라마에 비친 모습 그대로일까? 드라마는 여장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묘한 사랑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면서 매우 발랄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실제 조선시대 성균관은 그처럼 낭만적인 곳은 아니었다. 과거의 1차 시험에 해당하는 소과(생진과)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들이 들어와 관리로 나아가는 최종 관문인 문과 시험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드라마만큼 낭만적이지 않았을 것이고 치열한 고시 경쟁이 기다리는 살벌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 대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기원은 고려말부터 유래한다. 고려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이 충렬왕 때 성균관으로 개칭되었고, 공민왕 때는 신진사대부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기능이 강화되었다. 조선 건국 후 성균관은 ‘명인륜 성인재(明人倫 成人材 : 인륜을 밝히고 인재를 양성함)’의 목표를 두고, 1398년 현재의 성균관 대학교가 있는 종로구 명륜동에 세워졌다. 성균관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文廟)와 교육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식당, 약방, 전곡 출납을 맡은 양현고 등의 건물이 들어섰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편찬한 시문집 『동문선(東文選)』 권82에 수록된 성간(成侃 1427~1456)의 「성균관기(成均館記)」에는 조선시대 성균관의 연혁과 교육 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태조께서 즉위하신 모년(某年)에 국학을 동북쪽에 설립하였다. 무릇 경영한 지침 및 계획과 설계와 규모, 제도가 모두 적절하게 되어 하나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략을 들면 남쪽에 문묘(文廟)가 있고, 문묘의 좌우에 무(廡)가 있다. 문묘에는 앞선 성현을 제사하고, 무(廡)에는 앞선 스승을 제사하니, 이것은 나라의 옛 전례이다. 동쪽에는 정록소(正錄所)가 있고, 그 남쪽에는 부엌이 있으며 부엌의 남쪽에는 식당이 있다. 문묘의 북쪽 양 옆으로 장랑(長廊)이 있고, 장랑의 북쪽에 터를 돋우고는 좌우로 협실(夾室)을 만들고 중앙에 마루를 만들어 선생과 제자가 강학하는 장소를 만들었는데, 이를 명륜당(明倫堂)이라 부른다. 본관(本館)은 집이 대소를 합하여 무릇 96칸인데, 이 명륜당만이 문묘와 함께 특별히 높을 뿐만 아니라 치목(治木)도 잘했고 구조도 튼튼하며, 우뚝하게 높고 눈부시게 찬란하다. [我太祖卽位之某年。設國學於東北隅。凡經營,指計,規模,制度。咸底厥宜。無一不完。大略南爲廟。廟左右。有廡。廟主祀先聖。而廡祀先師。國之故典焉。東爲正錄所。其南爲廚。又其南爲食堂。廟北兩旁。引長廊。廊之北。高其基。左右夾室而中爲堂。以爲師生講勸之所。是謂明倫也。館爲屋大小。計凡九十有六。而獨是堂。與聖廟爲最尊。攻斸純締構堅。隆然其高也。奐然其新也。]」

 

             ▶ 명륜당

 

 「학관(學官)은 대사성 이하 모두 몇 명인데, 이른 아침 북을 올려 제생(諸生)을 불러 뜰아래 정렬을 시키고 한번 읍(揖)한 다음, 명륜당에 올라 경서를 가지고 논란한다. 군신에 대한 도리를 강론하고 부자에 대한 도리를 강론하며, 장유(長幼)에 대한 도리를 강론하고 부부, 붕우에 대한 도리를 강론한다. 부드럽게 가르쳐 익숙하게 하고 서로 경계하여 도와준다. 움직이고 쉬는 때를 따라서 조이고 늦추어, 날마다 점진하고 달로 젖게 하여 연마시키고 변화시킨다. 후일에 장차 나라에 충신이 되고 가정에 효자가 될 자가 반드시 크게 배출될 것이다. 아 거룩한 일인 동시에 우리 동방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혹은 말하기를, 성인의 가르침이 또한 여러 가지인데 이 당을 유독 명륜당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부자나 군신이나 부부나 장유나 붕우의 사귐은 본래 천리의 당연한 것으로, 천지와 함께 시종을 같이하니 인간의 도리가 어찌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하(夏)ㆍ상(商)ㆍ주(周)의 교(校)ㆍ서(序)ㆍ상(庠)ㆍ학(學)이 모두 이 윤리를 밝히지 않은 까닭이 없다.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면 백성들은 아래에서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 …… 진(秦)ㆍ한(漢) 이후로 정학(正學)이 바로 전하지 못하여 신(申 : 신불해)ㆍ한(韓 : 한비자)이 훼손하고 노장(老莊)이 음란하게 하여 인륜이 밝혀지지 못함이 시작되었고, 훈고학의 얽매임과 사장학(詞章學)의 떠벌림에 인륜이 전혀 밝혀지지 못하였으니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아, 가히 애석하지 않은가. 이제 이 명륜당에 머물고 이 명륜당을 오르내리는 자는 이 이름을 보아 그 뜻을 알며, 한갓 뜻만을 알 것이 아니라 또한 진실로 실천해서 성조(聖朝)의 교육을 육성하는 뜻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니, 이러면 되는 것이다. [學官大司成以下凡幾人。大昕。鼓徵諸生。列于庭下。一揖之後。升是堂。執經論難。講之爲君臣焉。講之爲父子焉。講之爲長幼焉。講之爲夫婦朋友之道焉。揉而熟之。箴之翼之。時其動息而弛張之。日漸月漬。磨勵變化。他日。將爲忠臣爲孝子於國於家者。必將林林焉而出。吁。其盛矣。自我東國以來之所未有也。或曰。聖人之敎。亦多端矣。名是堂獨以明倫。何也。曰。父子也。君臣也。夫婦也。長幼也。朋友之交也。本諸天理之固然。窮天地而始終。夫人之爲道。豈有大於此乎。曰夏,曰商,曰周之校序庠學。無非所以明此倫也。人倫明於上。庶民親於下矣。…… 秦,漢以來。正學不傳。申韓以毁之。老莊以淫之。而倫始不明。訓詁之拘拘。詞章之嘐嘐。而倫全不明。其異於物者。幾希。嗚呼。可不惜哉。今之遊於斯。陟降於斯者。覩其名而知其義。非徒知其義。抑亦允蹈其實。以無負聖朝長育之意。斯可矣。]」

 

  성균관 교육의 중심은 유교 이념의 확산과 실천이었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과 같은 충(忠), 효(孝), 별(別), 서(序), 신(信)의 윤리는 최고의 가치이자 실천 덕목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유교 이념을 습득하는 한편,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관직을 통하여 유교 이념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국가 이념인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질서를 잡아가고자 했던 나라 조선. 그 중심에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있었다.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