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스테파노 김수환 추기경과 계산성당 향나무

이정웅 2014. 1. 2. 08:55

 

 게산성당 경내의 향나무 김수환나무

 계산성당

 가난하고 소외된 곳을 찾는 김 추기경

 어머니와 함께

 최초의 계산성당

박정희 대통령과 김 추기경

스테파노 김수환 추기경과 계산성당 향나무

 

 

 

 

 

계산성당(사적 제290호, 1902년)은 서울의 명동성당(사적 제258호, 1898년)과 평양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지어진 고딕식 건물로 영남지역 천주교의 성지이다.

높고 뾰족한 건물은 초가와 기와집에 익숙한 조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볼거리가 되어 구경꾼들로 붐볐다고 한다.

처음(1899년)에는 목조로 지었으나 큰 지진으로 불이나 1901년 새로 지은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오래 전부터 노거수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계산성당은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톨릭과는 무관한 ‘이인성’을 기리는 나무를 지정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으나 어느 누구가 적당할지 미루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개척한 로베르 신부가 합당할 것 같은 생각을 가졌으나 동상이 이미 서 있어 다시 나무로 그를 기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그 외에도 여러 주임신부들이 사목을 담당했으나 종교적으로는 훌륭한 분이지만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생각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대구 출신이라는 점과 세계에서 가장 연소한 나이로 추기경에 오른 분으로 늘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분으로 각인되어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1922년 대구의 중구 남산동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이다. 할아버지는 고향이 충남 연산으로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때 순교한 김보현(金甫鉉)이고, 부친은 김영석(金永錫)이며, 모친은 대구출신의 서중하(徐仲夏)이다.

박해를 피해 다녀야 했던 당시 천주쟁이들이 다 그랬듯이 옹기장수로 전전하는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은 선산에서 초등학교는 군위에서 다녔다.

1941년에 서울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4월에 일본 동경의 상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국하였고, 1947년에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편입하여 1951년에 졸업했다. 그 후 독일 뮌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195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안동성당(현 목성동성당) 주임신부가 되었다. 1955년부터 이듬해까지 김천성당(현 황금성당)의 주임신부와 성의중고등학교의 교장을 겸임하였다.

독일 유학 후 1964년부터 1966년까지는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자리하였고, 1966년에 주교가 되었다. 1968년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대주교가 되었으며, 1969년에 추기경으로 서임(敍任)되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와 1981부터 1987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장을 2차례 역임하였고, 1975부터 1998년까지 평양교구장 서리로 자리하였다. 1998년에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에서 퇴임하였다.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2000년 제13회 심산상 외 다수를 받았고, 2001년 독일 대십자공로훈장과 2002년에 칠레 베르나르도오히긴스대십자훈장을 받았다.

군사정권 당시 독재정권 퇴진운동과 시민활동을 전개하였고, 혼란스러운 시국과 관련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종교지도자로서 약자를 끌어안았다.

2009년에 87세로 선종하였다.

저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이 땅에 평화를><우리가 사랑한다는> 등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역대종합인물시스템)

 

추기경께서는 오래 동안 성직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외로 계산성당과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서품을 이곳 계성당에서 받았고 특히, 가난을 떨치기 위해 장사가 하고 싶었던 그를 성직자의 길로 인도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 마다 다잡아 준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계산성당에서 했다.

효성이 지극한 추기경은 대구대목구장 비서로 발령을 받자 교구청 바로 옆에 집을 먼저 마련하고 그 곳에서 어머니를 임종했다.

성당 남쪽 화단에 가지가 꾸불꾸불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향나무가 있다. 굴곡이 많은 현대사의 부조리에 대해 기회 있을 때 마다 원로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던 추기경 삶을 닮은 것 같은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