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청마 유치환선생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히말라야시다

이정웅 2014. 4. 1. 07:34

 

 청마 유치환 선생이 교장으로 재직할 때 교정에 있었던 히말라야시다

 철거되기 전 대구여고 교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유치환 선생 기념표석

 

 

 

대구여고 옛터 표지석

 

청마 유치환선생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히말라야시다

대구는 많은 예술가를 배출하고 또한 그들이 시, 소설, 그림, 서화, 음악, 연극, 영화 등 전 장르를 망라한다는 점에서 어느 도시보다 예술의 향기로 가득한 예향(藝鄕)의 도시다.

특히, 이상화, 백기만, 이장희, 박목월(목월은 경주 출신이나 대구 계성학교를 다녔음) 같은 기라성 같은 시인을 배출되었고 비록 대구 출신은 아니지만 한 때 한국시단을 이끌어 온 ‘깃발’의 유치환, ‘꽃’의 김춘수도 대구에서 활동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연고가 큰 분이 청마 유치환(柳致環)이다.

수상집 ‘사랑했음으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플라토닉 러브의 대명사로 알려진 서간문집으로 그 주인공이 청도 출신의 시조시인 이영도여사라는 점과 청마가 여성 교육의 요람인 대구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교가를 지은 것이 오늘날에도 불리기 때문이다.

선생은 본관이 진주로 아호는 청마(靑馬)이며 1908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준수(焌秀)의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형 치진이 중심이 된 동인지 <토성, 土聲>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당시 시단을 풍미하던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감동하여, 형 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였다. 1931년<문예월간>에 시 <정적>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그리움>·<일월> 등 55편이 수록되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연수현(煙首縣)으로 이주하여, 농장 관리인 등에 종사하면서 5년여에 걸쳐 온갖 고생을 맛보고, 광복 직전에 귀국하였다.

이때 만주의 황량한 광야를 배경으로 ‘절도’ 등이 제2시집 <생명의 서>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문학 운동을 전개하였고, 6·25중에는 문총구국대의 일원으로 보병 3사단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렵의 시집이다. 1953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 후에는 줄곧 교직으로 일관하였다.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하여 경주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을 거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1967년 59세로 작고하였다.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공원, 통영 남망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집으로 <울릉도>, <청마시집>,<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이 있다.

선생이 대구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한 것은 1962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 3개 월 간이다. 그러나 그 기간 중에도 예술원상을 받고, 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경북지부장에 취임했으며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를 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전상렬 시인 등 대구지역의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선생이 교가를 작사했던 대구여고는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변했다. 혹 선생이 기억할만한 나무가 없을까 하여 졸업생 몇 분을 만나 보았으나 대다수가 그럴 만한 나무가 기억나기는커녕 나무가 없던 학교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옛 사진을 보니 지금 관리사무소 앞 히말라야시다가 그 때있던 나무로 판명되었다. 그 중 한 그루를 ‘유치환나무’로 기념하고 싶다.

그 나무 앞에 가칭 ‘행복우체통’을 설치해 그가 사랑하는 사람 이영도에게 편지를 보내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를 넣게 해 반년이나 1년 후쯤 열어 잘 쓴 편지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 글쓴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벤트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체통은 우체국이 놓게 하고, 작품 평가는 대구문협 등 전문가에게 맡기고, 소요경비는 공원관리주체인 대구시시설관리공단이 기부차원에서 맡으면 될 것 같다.

컴퓨터가 일상화 되어 편지 쓰는 것을 잊고 있는 세대들의 정서를 순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수상자를 뽑아 시상하면 참여자가 많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