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1일 만개시 모습
190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왕벚나무를 발견한 다겟 신부가 1922년 제주도에서 임기를 마치고 대구교구청으로 올 때 가져와 심은 왕벚나무
다겟 신부의 묘지(천주교 대구교구청 성직자 묘역) 의 묘비 2016년 4월 4일 컨퍼런스 시 이름을 따케로 하자고 했다.
좌로부터 대구시공원녹지과 전체영 주무관, 김찬수 박사, 박상진 교수 , 정홍규 신부 조환길 교구장
다게신부가 교수로 재임했던 성유스티노 신학대학
좌측 왕벚나무를 조사했던 김찬수 박사 오른 쪽 조환길 교구장
다겟신부와 천주교대구교구청의 왕벚나무
2015년 정홍규 신부(대구가톨릭대학 교수)가 에밀 다겟(Emile Taquet, 1873~1952)신부가 1922년 천주교 대구교구청 산하 성유스티노신학교 교수로 오면서 안익사 앞과 대건관 옆, 성바오로수녀원에 심은 왕벚나무 3그루가 있다는 제보를 중구청에 했다.
이에 중구청(담당 김명주 관광개발과장)에서는 놀라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와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를 초청해 1차 현장조사를 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꽃이 진 상태여서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박 교수의 의견에 유전자 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중구청에서는 박 교수가 추천한 우리나라에서 왕벚나무 최고 권위자인 국립산림과학원 김찬수 박사에게 의뢰했다.
2015년 6월 23일 드디어 김 박사와 연구진 일행이 대구에 오고, 정홍규 신부를 비롯한 박 교수, 대구수목원 유성태 연구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안익사 앞의 것과 대건관 옆의 2그루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이 때 김 정홍규 신부는 교구청 내 성직자 묘역에 있는 다겟 신부의 무덤도 안내했다. 이에 김 박사는 지금까지 왕벚나무연구에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지만 다겟 신부의 묘지가 대구에 있다는 것과 학계에서는 타케로 부르는 이름이 다겟인 것도 처음 알았으며 타케가 일본인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라 지적이 있으니 앞으로 다겟이라고 묘비에 적힌 대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러나 그 후 보낸 유전자 검사결과는 2그루 모두 제주자생지의 왕벚나무와 유전적으로 연관성이 없으며 시중의 왕벚나무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해 실망이 컸다.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자생지라고 하는 사실은 1908년 다겟 신부가 한라산 관음사 부근에서 꽃을 채집하여 베를린대학의 쾨네 박사에게 보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겟 신부가 가져와 심었다면 응당 제주 자생지의 나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겟 신부는 국적이 프랑스로 우리말 이름은 엄택기(嚴宅基)이다. 1873년 프랑스 북부 캉브레(Cambrai)의 에크(He-차)에서 태어났다.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898년 서울에 도착했다.
부산 범일 본당(당시 초량 성당)의 3대 주임을 역임하고 밀양, 김해, 진주, 거제, 마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02년 서귀포 본당(당시 한논 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선교활동 이외 식물채집에도 열성을 보였다.
1907년 포리 신부와 구상나무를 채집하고, 1908년 4월, 14일 관음사 일대에서 왕벚나무를 채집해 독일 베를린대학 쾨네 교수에게 보내 1912년 제주벚나무(Prunus yedoensis var. nudiflora Koehne)로 세상에 알렸다.
1931년 성유스티노 신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1945년 67세 때 고령으로 사임하고 은퇴해 지내다가 1952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911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사목 활동하던 같은 국적의 포리(Faurie R. P)신부로부터 온주밀감 14그루를 얻어와 제주에 보급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서귀포성당 면형의 집 뜰에 그 때 일본에서 가져온 온주밀감 한 그루가 남아있다.
그러나 정말 기쁜 소식은 일 년 후 개최(2016년 4월 4일)된 정홍규 신부가 주관한 ‘왕벚나무 통합생태론’컨퍼런스에서였다. 영남대학교 박선주 교수는 국립산림과학원 김찬수 박사가 시행한 유전자 감식 결과와 달리 안익사 앞의 것과 성바오로 수녀원의 것 모두 다겟 신부가 발견한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제159호)와 유전자가 유사하다고 했다.
이 컨퍼런스를 통해 대구는 또 하나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을 가지는 도시가 되었다.
다겟 신부는 왕벚나무 이외에도 섬잔대(Adenphora taquetii Leveille), 한라부추(Allium taquetii Leveille et Vaniot), 왕밀사초(Carex taquetii Leveille), 두메담배풀(Carpesium taquetii Leveille), 섬잔고사리(Diplazium taquetii C. Christensen), 반들고사리(Dryopteris taquetii C. Christensen), 갯취(Ligularia taquetii Nakai), 좀갈매나무(Rhamus aquetii Leveille), 제주가시나무(Rosa taquetii Leveille), 사슨딸기(rubus taquetii Leveille), 해변취(Saussurea taquetii Leveille et Vaniot), 한라꿩의 다리(Thalictrum taquetii Leveille), 뽕피나무(Tilia taquetii C. K. Schneider) 등 모두 15종의 식물을 발견해 우리나라 식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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