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 화목원(花木園)의 상사화
대구수목원의 화목원은 말 그대로 꽃이 피는 나무나 풀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이곳 중간쯤에 상사화(相思花)가 심어진 곳이 있다. 상사(相思)는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함’이라는 뜻이다.
이는 상사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이른 봄에 싹이 터서 30cm 정도 자라다가 6월 하순 경 잎이 마르면서 흔적을 감추었다가 8월 경 꽃대를 불쑥 내밀고 그 끝에 몇 개의 봉오리를 맺어 꽃이 피기 때문에 잎과 꽃이 함께 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이 너무 지나쳐 병으로 발전한 것을 두고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상사화의 이런 생태적인 습성에서 불리게 된 것이다.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아주 오랜 옛날 산사 토굴에서 정진 하던 젊은 스님이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날,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고 짝 사랑한데서 시작된다.
깊은 사랑에 빠지고 가슴앓이를 했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었다. 100여 일 후 그 여인이 죽자 스님은 그녀를 기리며 토굴 앞에 이름 모를 풀을 심었는데, 봄이 되자 잎이 났다가 말라 죽고 여름에 꽃대가 나와서 꽃이 피므로,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하게 되니 상사화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이런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와 달리 이 꽃을 ‘어머니의 꽃’이라고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올해 93세인 어머니는 전처의 아들 삼 형제, 딸 둘 ,당신의 배로 아들 넷, 딸 하나를 낳아 모두 10남매를 건사한 분이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살림하랴 자식들 키우랴 고생이 많았을 것이지만 불평 한번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숙명으로 받아드렸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오래 동안 혼자 시골집을 지켰다. 가끔은 마을 경로당에 가시기도 했지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셨다.
시골 집 우물가 텃밭에는 상사화가 많았다. 이른 봄 어느 풀보다 잎이 일찍 돋고, 늦여름 연분홍분이 꽃이 아름답게 피지만 그 꽃을 보고 예쁘다든가 곱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 꽃은 오랜 기간 무료하게 보냈던 어머니와 눈길을 마주한 꽃이다.
나는 고향에서 이 꽃을 가져와 수목원의 화목원에 심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지만 당신의 아들이 조성한 이곳의 흙냄새를 맡으며 비록 크게 돈 벌고, 소위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달라는 염원도 담았다.
세금으로 조성한 이곳에 사적(私的)인 이유로 꽃을 심은 것을 두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아름다운 꽃은 많은데 비해 상사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수목원은 자연학습, 식물교양강좌 등 여러 기능 이외 종(種)을 많이 보유하는 것도 설립 이유 중 하나이다.
따라서 수목원에 없는 식물을 구해 심는 것은 심는 사람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수목원에 필요한 일이다.
퇴직을 하고도 가끔 수목원을 방문한다. 주로 공휴일이나 토·일요일을 이용하는데 평일에 갔다가 직원을 만나면 상사였던 나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느 날 수목원을 찾아 한 바퀴를 돌아보고 늘 하든대로 상사화가 심긴 곳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포기도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포지를 정비하면서 약용식물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필요에 의해 옮긴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조그마한 귀퉁이에 심어 두었으니 영구히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믿고 후배들에게 부탁하지 않은 내 잘못이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후 수목원을 찾을 때도 비록 빈자리이기는 하나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데 언젠가 봄에 찾았더니 새싹이 듬성듬성 돋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새로 심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약용식물원으로 옮길 때 깊이 박혀 있어 못 캐 간 뿌리에서 싹이 돋은 것이 분명했다.
감격이 새로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상사화의 정령(精靈)의 보살핌인가 풍이 와서 팔 다리가 자유롭게 못한 것 외 어머니의 건강은 크게 나쁘지 않는 편이다.
'대구수목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수목원의 마스코트 들순이와 해피 (0) | 2016.05.01 |
---|---|
어느 시민의 편지 (0) | 2016.04.24 |
대구수목원 운동장 (0) | 2016.04.03 |
수목원 동쪽의 산 (0) | 2016.04.01 |
수목원 청사 뒤편의 전나무 숲 (0) | 201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