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이야기

대구수목원의 마스코트 들순이와 해피

이정웅 2016. 5. 1. 18:33

 

 

딸 은정이와 해피, 들순이와 찍은 사진도 있었으나 찾지 못했다. 해피는 죽기 직전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구수목원의 마스코트 들순이와 해피

청소과로부터 대곡 쓰레기매립장를 인수 받을 당시 이곳에는 떠돌이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스피치(?)로 몸집이 작은 갈색이었다. 누가 이곳에 버려 그동안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혼자 살았던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오래되었는지 야성(野性)이 강해 좀처럼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붙잡으려고 하면 재빠르게 도망가기 일쑤였고 혹 몰이하여 겨우 잡을 때도 있었으나 사납게 짖으며 물려고 해서 가까이가기가 어려웠다.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잔 밥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곁에 있으면 먹지 않고 늘 경계를 하드니 계속 되풀이하자 따르기 시작했다.

복토와 평탄작업 중이 든 현장을 점검할 때에는 늘 데리고 다녔다. 직원들도 간식을 주며 좋아하게 되고 어느덧 수목원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이름도 들에서 주은 암캐라고 하여 들순이라고 했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 자주 함께한 나를 잘 따랐다. 출장 갔다가 귀청(歸廳)하거나 아침에 출근하면 차 소리를 듣고도 멀리서도 쫓아 나와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수목원을 출입하는 그 많은 차 중에 어떻게 내가 탄 차의 소리만을 기억할까 신기하기도 하고 더욱 사랑스러웠다. 들순이가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일은 직원의 구별이다. 그 때 수목원에는 20여명이 근무했고 공사 중이라 외부 사람들도 많이 와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직원을 제외하고는 접근하기를 거부하고 때론 물기도 했다. 복장도 비슷하고 체격도 비슷한데 어떻게 우리직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지 불가사의했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 날 나는 가끔 수목원에 나와서 혹 잘못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이 때 들순이와 해피를 데리고 다녔다. 해피는 사무실이 두류공원에 있을 때 키운 개로 이사할 때 데리고 온 잡견이었다. 셋이 함께 둘러보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수목원의 곳곳은 내 발자국이 닿지 않는 곳이 없지만 들순이와 해피의 발자국도 따라서 남아있다.

내가 시청 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고도 수목원을 자주 찾았다. 점점 모양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즐겁기도 했지만 들순이와 해피와 함께 하고, 어떤 때에는 딸 은정이와 넷이서 산책하며 뛰 노는 시간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후 비교적 순한 해피는 수목원에 남아 있었지만 들순이는 성서의 화훼생산 포지로 옮겼다고 했다. 들순이와 비교적 친했든 조귀향씨가 옮겼다고 했다. 외부 사람들에게 사납게 굴기 때문에 위험해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특히 노약자나 어린 유치원생들도 구경 오는데 아이들을 물면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를 지난 후 남아 있든 해피가 홀대 받는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어왔다. 개를 싫어하는 다른 사람이 없애려고 한다고 했다.

개에 대한 호불호는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내가 수목원을 직접 지휘하지도 않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병이 들자 이동춘 계장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도 했다고도 했다.

어느 휴일 수목원에 들렀더니 해피가 웅크리고 있다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목줄이 여러 겹으로 꼬여 길이가 1m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길어야 활동이 자유로울 터인데 그렇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줄을 풀어 예전과 같이 한 바퀴 돌려고 하였으나 몸이 불편한지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 했다. 멍하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한참을 옆에 앉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아는 사람으로부터 죽었으며 뒷산 어디엔가 묻었다고 했다. 한 동안 멍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서로 의지하며 보냈던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눈을 감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때론 꽃밭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발길로 차인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꼬리를 흔들면 애교를 부리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이 해피였다.

더 시간이 지난 후 성서포지로 간 들순이도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곳 관사(?)에 거주하든 김병도씨가 잘 건사를 해 죽기 전에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고 했다. 한 때 데리고 와서 키울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일부직원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데 그들은 나를 배반하지 않아 마음 속에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명이 다해 하늘나라로 갔지만 들순이의 피가 섞인 새끼들을 통해 들순이 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주하는 곳이 좁은 아파트이고 아내가 반대해 이룰 수 없었다. 들순이와 해피는 내가 힘들어 할 때 가장 위로 받은 친구들이다. 지금도 수목원을 찾으면 그들과 함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든 생각이 되살아난다.

퇴직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망고, 미미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들순이와 해피 때문은 아니었다. 딸 은정이가 키우자고 했고 집도 많이 넓어졌다.

여전히 아내는 반대하였지만 지금은 딸아이나 나보다 더 좋아한다. 세월이라는 약이 있어 잊어진다고 하지만 망고와 미미를 보면서 아직도 들순이와 해피 생각은 내 가슴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