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주희의 구곡도가(九曲棹歌)와 무이구곡

이정웅 2016. 9. 5. 16:28

 

 

주희의 구곡도가(九曲棹歌)와 무이구곡

주자(朱子)유적 답사 마지막 날 무이산 무이구곡을 찾았다. 무이산(武夷山)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고루 갖추고 있어 황산, 태산, 아미산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정한 중국 4대 세계복합유산의 한곳이다.

이곳 무이천(武夷川) 중에서 경관이 빼어난 36봉(峰), 37 바위(巖)가 있는 약 9.5Km 구간의 아홉 굽이가 무이구곡(武夷九谷)이다. 주자는 54세 때인 1183년(순희 10)이 계곡 옆에 무이정사를 짓고, 강학과 선유를 즐기면서 구곡도가(九曲棹歌)를 남겼다.

 



주자 상

 

이것이 소위 ‘무이구곡가(武夷九谷歌)’이다. 주자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겼던 이황과 이이, 송시열, 정구 등 조선의 많은 유학자들이 이런 주자의 삶을 이상(理想)으로 여겨 나름의 구곡을 경영하면서 구곡가를 남겼으니 도산구곡, 고산구곡, 화양구곡, 무흘구곡 등이 그것이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뗏목을 기다리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구곡을 손쉽게 올 수 있는 기회와 건강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사진을 잘 찍어 멋지게 소개하려고 벼르고 왔으나 1곡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9곡에서 강을 거슬러 출발하고, 햇볕을 뒤로 역광으로 산진을 촬영해야하는 어려움과 또 봉우리가 너무 많은데 비해 뗏목을 모는 현지인과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기회인 만큼 애를 써 가며 그런대로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구곡도가는 서시(序詩)를 포함하여 모두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무이구곡가에는 1~9곡까지 각곡마다 소(小) 제목을 부쳤다. 그러나 원본에는 없다. 따라서 이해하기는 쉬우나 기존 인터넷에 나도는 무이구곡가와 원본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중국의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대구의 구곡문화, 2014, 대구광역시·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연구책임자 김문기 교수의 글을 많이 참고 했다. 다만, 2곡 3연(聯)의 양대몽(陽臺夢)은 구본욱 박사로부터 자문을 받아 황대몽(荒臺夢)으로 수정했다.

서시(序詩)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상유선령) 무이산 위에 신선의 영혼이 있으니

山下寒流曲曲淸 (산하한휴곡곡청) 산 아래 찬물이 굽이굽이 맑고 맑다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그 가운데 절승지를 알고자 하니

櫂歌閑聽兩三聲 (도가한청양삼성) 즐거운 뱃노래를 귀기우려 들어보세

 

무이구곡 안내판

제1곡 승진동(升眞洞)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일곡이라 냇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 맑은 내에 잠겼더라.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는 끊어지고 소식이 없으니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만학천봉은 푸른 노을에 잠겼더라.

 

제1곡 승진동

 

제2곡 옥녀봉(玉女峰)

二曲亭亭玉女峰 (이곡정정옥녀봉) 이곡이라 우뚝 솟은 옥녀봉은

揷花臨水爲誰容 (삽화임수위수용) 누굴 위해 물가에서 꽃을 꽂는 가

道人不復荒臺夢 (도인불부황대몽) 도인은 황대의 꿈을 다시 꾸지 않는데

* 황대(荒臺) : 폐허가 된 옛 누각, 옥녀의 옛 낭군인 대왕은 옛 날의 영화를 꿈꾸지 않는데 옥녀만 머리에 꽃을 꽂고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뜻.

興入前山翠幾重 (흥입전산취기중) 흥에 드니 앞산은 푸르기만 더하네 

 

제2곡 옥녀봉

제3곡 선조대(仙釣臺)

三曲君着袈壑船 ( 삼곡군착가학선) 삼곡이라 그대는 매어둔 배를 보았는가.

不知停櫂幾何年 ( 부지정도기하년) 노 젓기를 그만둔 지 몇 해인고.

桑田海水今如許( 상전해수금여허) 상전이 바다 된 것이 언제이런가.

泡沫風燈敢自憐 (포말풍등감자련) 물거품과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우리인생 가련하다.

 

 

제3곡 선조대

 

제4곡 금계동(金鷄洞)

四曲東西兩石巖 (사곡동서양석암) 사곡이라 동·서에는 바위산인데

岩花垂露碧攬毶 (암화수로벽람참) 바위틈 속 꽃들에는 이슬 맺혀 더욱 곱고

金鷄규罷無人見 ( 금계규파무인견) 금닭 울음 그치고 인적 없으니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달 밝은 산 속엔 못 물만 가득하다.

 

제4곡 금계동

제5곡 무이정사(武夷精舍)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 오곡이라 산은 높고 구름 기운 깊은데

長時煙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언제나 안개비에 평림은 어둡더라.

林間有客無人識 (임간유객무인식) 숲 속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사람 없고

欲乃聲中萬古心 (욕내성중만고심) 사공의 노래 소리 세상 근심 여전하네.

 

제5곡 무이정사

제6곡 선장봉(仙掌峰)

六曲蒼屛繞碧灣 (육곡창병요벽만) 육곡이라 푸른 벼랑 물굽이를 둘렀으니

茅茨終日掩柴關 (모자종일엄시관) 띠 집의 사립문 종일토록 닫혔는데

客來倚櫂岩花落 (객래의도암화락) 노 저어 객이 오니 바위에서 꽃 떨어져도

猿鳥不驚春意閒 (원조불경춘의한) 원숭이 새들 놀라지 않고 봄이 한가롭네.

 

제6곡 선장봉

제7곡 석당사(石唐寺)

七曲移船上碧灘 (칠곡이선상벽탄) 칠곡이라 배를 몰아 푸른 여울 올라가서

隱屛仙掌更回看 (은병선장갱회간)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却憐昨夜峰頭雨 (각린작야봉두우) 어여쁠손 어젯밤 산 위에 내린 비

添得飛泉幾度寒 (첨득비천기도한) 폭포수에 더해지니 얼마나 차가울까.

 

제7곡 석당사

제8곡 고루암(鼓樓巖)

八曲風煙勢欲開 (팔곡풍연세욕개) 팔곡이라 바람 안개 개려고 하니

敲樓岩下水濚廻 (고루암하수영회) 고루암 바위 아래 맑은 물 돌아드네.

莫言此處無佳景( 막언차처무가경) 이곳에 좋은 경치 없다고 말 말게나.

自是遊人不上來 (자시유인불상래)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제8곡 고루암

 

제9곡 성촌(星村)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이라 다하려 하니 눈이 훤히 열리니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이슬비 내린 뽕밭 삼밭 평천을 보누나.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사공이 다시 무릉도원 찾지만은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 말고 세상에 별천지 있으랴. 

 

제9곡 성촌

 

 

 

맺는 말

주자(朱子)의 이름은 희(熹), 송나라(宋)의 휘주(徽州)에서 아버지 위재(韋齋) 주송(朱松)과 어머니 축씨(祝氏) 사이에서 1130년에 태어났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찍부터 성격이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점잖고 엄숙했으며 말수가 적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어려서는 부친의 지기인 호적계(胡籍溪)·유백수(劉白水)·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과거급제 이후에는 주돈이와 정호 등의 학통을 이은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찾아가 사사,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를 사숙하여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후 유교 경전을 탐독하고 풀이 주석을 교정하고 공자, 맹자 등의 사상을 풀이하였는데 이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성리학으로 발전하였다.

19세의 나이에 과거 시험에 등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황제에게 요순(堯舜)의 덕치(德治)를 설명하며 봉사(封事)와 상서(上書)로 누천만언(屢千萬言)을 개진하였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한탁주 등 관료들의 미움을 받아 만년에는 모함을 당하고 기인으로 몰리는 등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의 학문을 성리학(性理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 하는데, 고대 경전의 주해 외에 유교의 주류인 이기심성(理氣心性), 거경궁리(居敬窮理)의 학설을 제창하여 그 학문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주역본의계몽(周易本義啓蒙)·시집전(詩集傳)·대학중용장구혹문(大學中庸章句或問)·논어맹자집주(論語孟子集註)가 있고, 소편(所編)에는 논맹집의(論孟集義)·중용집략(中庸集略)·효경간오(孝經刊誤)·소학서(小學書)·통감강목(通鑑綱目)·근사록(近思錄)·주자집(朱子集) 등을 남겼다.

1200년에 졸하니 사망당시 향년 71세였다. 송 영종(寧宗) 때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송 이종(理宗) 연간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었으며 신국공(信國公)으로 추봉되었다가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고쳐 봉해졌고 문묘에 배향 종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