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선유 및 누정문학> 발간
우리대구의 동쪽에서 흘러내려 서쪽 낙동강에 유입되는 연장 42Km의 금호강에 대하여 많은 시민들이 대구의 마지막 남은 오픈 스페이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또 안심습지와 연꽃단지, 동촌유원지, 하중도·섬들 등 몇 몇 명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상류로부터 하류에 이르기까지 고산서당, 아양루, 압로정과 소유정, 세심정, 화수정, 환성정 황씨동원각, 사양정사, 관어대, 이강서원, 용호서원, 이락서당, 부강정 등이 요소요소에 건립되어 있고 낙동강 연안의 아금정과 금암서당, 영벽정, 하목정에 이르기까지 금호강은 하나의 문화벨트를 형성하여 학문을 논하고, 문학작품을 창작하며, 선비들의 교류장이 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장소로는 상류에서 하류까지 조신시대 우리 선조들은 배를 통해 서로 오가며 공부하고 때로는 시회를 열거나 선유(船遊)를 즐겼다.
1601년(선조 34)에는 대구지역의 큰 선비이자 초대 의병대장이었던 낙재 서사원이 강학기관인 완락재(玩樂齋) 짓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구미에서 찾아온 조선 중기의 유학자 여헌 장현광 김천의 감호 여대로 등 무려 23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선유회가 열려 15편의 시를 남겼으며 그 때의 선유 모습을 그린 <금호선사선유도>라는 기록화를 남기기도 했다.
아울러 1565년( 명종 20)북구 동화천의 화암에 연경서원을 창건하여 그동안 서당 등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던 공부하는 방법을 탈피해 서원의 엄격한 원규에 의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1614년( 광해군 6) 성주 출신 거유 한강 정구가 북구 사수동으로 옮겨와 대구지역의 많은 선비들에게 성리학 강론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켰다. 이런 점에서 16세기 17세기 금호강은 대구 유학의 발흥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그러나 이런 선유와 누정에 어느 누가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가 정리된 바 없었다. 이에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는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금번 <금호강 선유 및 누정문학>을 펴냈다.
작품이 너무 많은데 비해 제책(製冊)과 기간이 제한되어 다 수록하지 못하고 170명의 작가의 작품 중 선유문학작품 26수, 누정문학작품 199수 모두 225수의 시문을 발굴하는데 그쳤다. 했다.
또 작품을 국역함에 있어 기존의 학자들에게 의존하기보다 그동안 발로 뛰면서 지역의 정체성 찾기에 노력해오든 분들을 참여케 하여 작품의 현장감을 높이려고 노력한 점도 의미가 크다.
최근 배광식 북구청장이 “금호강시대를 열자”라고 제안했고, 대구시도 대경연구원을 통해 “금호강 그랜드플랜” 부제 “ 대구 금호강시대를 준비하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금호강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각에 따라 개발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 발간되는 책 <금호강의 선유 및 누정문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외양상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하드라도 문화의 옷을 입히지 않는 작품은 빈껍데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옛 명소 세심정, 관어대, 부강정 등도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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