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동산 서쪽 사면 푸르개 보이는 것이 회양목
하식애 자라는 회양목, 이른 봄이지만 상록이라 푸르게 보인다. 사진 위, 아래
화원정 부근의 조경용으로 심은 회양목, 왼쪽 휀스 쪽이 텅비어 있어 씨가 떨어져 싹이 돋은 것이 아님을 증명함
절벽 위쪽, 나무가 자라기 좋은 곳임에도 모수는 물론 싹이 돋아서 자라고 있는 회양목이 없다.
2022년 2월 24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3년간 (사) 대구생명의숲(이하 생숲) 이사장을 맡았다. 나이도 많고 하여 거절했으나 그동안 수목원을 조성하는 등 유사 분야에 활동한 경력이 있으니 이름만 걸어두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다는 장정걸 박사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은근히 하고 싶기도 했었다. 푸른 대구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환경단체와 맞섰던 일이 많아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그러면서도 시정부(市政府)에 우호적인 즉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환경단체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생숲”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해 이른 봄, 화원동산을 찾았다. 몇 년 전 김문오 군수가 수질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물리치고 사문진 나루터에서 달성습지로 바로 갈 수 있는 목교(木橋)를 놓았다. 시간도 절약하지만, 물 위를 걸으며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화원동산 서쪽 면의 오랜 세월 강물에 의해 깎이고 파인 하식애(河蝕崖)를 보는 즐거움으로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명물이 된 곳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수직 가까운 절벽에 숲이 우거지면 보이지 않을 푸르스름한 식물이 군데군데 모여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과 더불어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우리나라 특산종 “회양목(Buxus microphylla var. koreana)”이었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이곳을 보며 지나갔지만 모두 그냥 지나쳤는데 한두 개체가 아니라. 바위가 풍화되어 흙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는 곳의 대부분에서 회양목이 자라 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회양목은 1920년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발견되어 그곳의 이름을 따서 명명(命名)된 늘 푸른 떨기나무로 주로 조경수로 심는다. 그러나 재질이 단단하여 조선 시대에는 호패(戶牌)나 머리를 빗는 참빗 및 가구재로 쓰였고, 도장 만드는 데 많이 이용되어 일명 “도장나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고양나무”라고 한다. 3~4월에 연한 노란색 꽃이 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강원도 강릉시 석병산, 삼척시 두타산, 경북 안동시 왕모산, 상주시 백화산, 청송 주왕산 등에도 군락지가 있었다.
그러나 화원동산 하식애의 군락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군락지 중에서 가장 남쪽이라는 점이 식물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또한 모감주나무 450여 그루 (대구시 지정,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와 공생하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이렇게 하식애(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절벽)에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경사가 급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했고, 낙동강 물가 쪽의 절벽이라 접근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식애 바로 밑까지 다리가 놓이게 됨에 따라 올라갈 수는 없어도 누구나 쉽게 볼 수는 있다.
또 이곳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인 삵과 천연기념물 제324-2호인 수리부엉이가 서식하고 있어 인근 달성습지의 맹꽁이와 더불어 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문진 나루터와 달성습지생태학습관과 연계하면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다. 개체 수와 수령(樹齡) 등을 보다 더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식생 조사와 보전대책이 요구되었다.
민간 단체인 “생숲”이 시(市)나 구, 군의 담당 공무원이 미처 놓친 이런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설립 목적의 하나인 것 같고, 이 귀중한 자연유산을 시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해당 군에 통보하고 모 일간지에 자료를 보내 보도(2022년, 3월 15일 영남일보)했다.
그 후 모 숲 해설가를 만나 조금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더니 일제 강점기에 화원유원지를 개발하면서 심은 회양목에서 씨가 떨어져 자란 것이지 자생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깜짝 놀랐다.
충분히 그를 수 있는 데 비해 그것까지는 검증하지 아니하고 관계기관에 공문을 보내고 대외에 발표한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후회하면서 다시 화원동산을 찾았다.
하식애 상단부 일대를 면밀하게 훑어보았다. 그때 심었다면 모수(母樹)가 아직 살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떨어진 씨에서 싹이 튼 회양목이 자라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다리로 쉬엄쉬엄 올라가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니 회양목 자체가 없고, 조금 위에 안동댐 만들 때(1971~1976) 수몰 지역에서 옮겨온 화원정(花園亭) 주변에 몇 그루 조경수로 심은 회양목은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 부근에 상당한 공지가 있으나 어린 회양목은 한그루도 없었다. 엉터리 보도로 시민을 실망시키고 허위 사실로 관(官)을 기만한 신중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한 것과 같아 한동안 가슴 졸이며 지냈으나 결국 내 판단이 옳았음을 직접 확인해 안도했다.
첫 발견 된 곳이 이북 회양(淮陽)이고, 최남단 자생지가 상주 백화산, 또는 청송 주왕산이라고 알려진 이 작고 여린 나무가 누구인가 일부러 심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어떤 연유로 우리 화원동산 하식애에 뿌리를 내렸을까. 신의 간섭이 아니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숙연하기까지 하다. 참으로 귀중한 만남이었다. 잘 보듬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대구의 자연유산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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