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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공원을 자주 간다. 이른 봄 왕벚나무 꽃이 구름 같이 피더니, 이어 풀또기, 꽃사과, 수수꽃다리 영산홍, 산철쭉이 울긋불긋 장관을 연출하고, 또 다시 연초록 신록이 융단처럼 부드럽게 바람에 나부끼더니 어느덧 녹음에 짙은 계절 여름이 되었다. 그런데 종전에 보지 못했던 이상한 차림새의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여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궂는 날이나, 맑은 날 할 것 없이 차양(遮陽)이 긴 모자를 쓰고도 모자라는지 눈만 빠꼼히 보이는 소위 자외선(紫外線) 차단용(?)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공원을 전사(戰士)처럼 활보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공기가 나빠져 호흡기나 피부병환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차도르(chadori)를 써야 외출이 가능한 회교도(回敎徒)로 개종한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닐 터인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아마 젊은이나 나이가 든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요즘 유행하는 외모 지상주의 한 단면이자 비록 늙더라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나 왠지 씁쓰레하다.
나는 지금까지 테니스의 여왕 샤라포바나, 골프의 천재 미셀 위가 기사(騎士)처럼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보다 운동 강도도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아침 산책길에 그 까지 것 볕에 노출되어 보아야 그리 큰 해를 주지 아닐 터인 데 하는 생각을 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하기야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도시이고, 주거생활 역시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단절된 아파트에 살다보니 공동체정신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랴만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60~70년대 모든 것이 궁핍했던 그 때 우리 형제자매들은 삼복(三伏)에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변변한 수건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밭을 맸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 이 알량한 햇볕 정도가 무슨 문제랴.
사실을 자기를 감추는 좋지 못한 풍습은 중세(中世) 서구 사회에서 유행했다. 풍족한 상류층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좀 자극적으로 놀 수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중 남의 여인이나 내 아내나 할 것 없이 얼굴을 가리게 하고 추었던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가 바로 그 것이다. 우리 나라 역시 반상이 엄격했던 시절 타락한 사대부들을 풍자하기 위하며 민초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이 탈춤이다. 따라서 가린다는 것은 뭔가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지구상 어디나 어느 시절을 막론하고 바람직한 사회는 밝고 투명해야 한다. 따라서 천식이나 피부병을 앓는 환자가 아니라면 구태여 마스크를 착용하여 남을 불쾌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낮을 모르니 서로 인사는 못할망정 밝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부처님은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남에게 베풀지는 못해도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화안보시(和顔布施)만으로도 큰 공덕을 쌓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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