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물의 성지(聖地)입니다. 100m~150m만 뚫으면 100살, 200살 된 질 좋은 미네랄 워터가 가득하죠. 대구 시민은 복 받았습니다."
'물 박사'로 불리는 성익환(55)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 연구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온통 어렵고 안되고 나쁘다는 소리뿐인 대구에 대해 그런 반가운 말을 하는 사람을 모처럼 만난 기쁨에 그의 입만 쳐다봤다. 설명은 이랬다.
"한반도는 3분의 2가 화강암 지대입니다. 대구를 포함한 4분의 1이 퇴적암 지대입니다. 나머지는 화산암이고요. 화강암은 물맛은 좋으나 미네랄이 적습니다. 퇴적암 지대 지하수의 미네랄 함유량은 화강암 지대의 3, 4배, 많게는 10배에 이릅니다. 대구는 지하수 양도 풍부합니다. 은근과 끈기의 대구 기질은 미네랄이 풍부한 물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질은 음식, 특히 물의 지배를 받습니다."
경북중과 대륜고를 졸업한 뒤 경북대 지질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30여 년간 지하수만 연구한 '물 박사'이자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회장이 하는 말이니 믿어야 할까? 그는 자료를 들이댔다. 지난 85년부터 3년간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원한 6억 원으로 대구의 지하수를 종합적으로 조사한 자료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외국 전문가의 세세한 지도와 상당한 인원이 투입돼 제대로 조사한 것이다.
"대외비로 조사한 것입니다. 지금 가치로 따지면 60억 원은 될 겁니다. 그것을 들고 프랑스로 갔죠." 그가 파리 6대학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 제목도 '대구 지역 지하수의 지구화학적, 지구물리학적, 수리지질학적 자료 통계를 통한 분석 연구' 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구는 그런 천혜의 지하수를 갖고 있으면서도 낙동강 페놀사고로 고통을 겪는 등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지하수 개발 때 공구당 1억 원은 들여야 하는데 1천만 원 정도 들여 부실 시공한 데 있다. 구멍이 뻥뻥 뚫린 시추공으로 지하수를 뽑아올리니 하수 등 각종 오염물질이 섞여 나온다는 것.
그는 볼펜을 들고 계산해 가며 대구의 미네랄 워터를 살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민 1인당 매일 마시는 물의 양은 2리터 남짓하다. 넉넉잡아 10리터라 쳐도 250만 명이 마시려면 매일 2만 5천 톤(1천 리터=1톤)이면 된다.
100톤을 뽑아올리는 지하수 시추공을 250개, 8개 구·군청당 30개씩 만들면 대구 시민은 누구나 미네랄 워터를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추공도 새로 팔 필요없이 아파트 단지 등 5천여 개에 이르는 기존 시추공 가운데 적당한 것을 골라 오염방지 시설만 하면 그만이다. 물론 처음에는 예전처럼 우물에서 물을 떠서 마셔야 하는 불편이 있다. 하지만 신도시를 만들거나 구획 정리, 리모델링 때 관을 까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된다.
"지하수는 소독도 필요없습니다. 앞산에 가서 생수를 떠와봐야 지표수에 불과하지요. '미네랄 워터-대구'는 꿈이 아닙니다."
성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하수 전문가이다. 지하수 석사 1호, 지하수 외국 박사 1호. 1994년 제정된 먹는샘물관리법도 그의 작품이다. "생수공장을 양성화하는 법안을 만들면서 국회에서 공청회를 했는데 7명의 전문가 중 6명이 신고제를 주장했습니다. 제가 마지막 발언자로 나서 전 세계의 현황을 설명하고 허가제를 주장했죠. 결국 제 의견대로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지하수 예산을 1조 5천억 원이나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대통령 주재 청와대 회의에서 무례하게도(?) 3번이나 예정에 없이 마이크를 잡아 대통령을 설득한 결과였다.
"환경부가 지방 상수도에, 건교부가 광역 상수도에 중복 투자하면서 연간 10조 원 가운데 4조 원이 샙니다. 10조 원 들어간 수돗물을 국민 2%가 마시죠. 지하수는 연간 120억 원에 불과해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농어촌 주민 520만 명이 마시는 지하수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느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성 박사 얘기를 들으니 눈물이 다 나려 한다.'며 예산 확보를 지시했습니다."
외국에 자주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지하수를 공부했다는 그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대륜고 시절 악대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불었고 가곡 솜씨도 수준급이다. 키 168cm, 몸무게 50kg의 작은 몸집이지만 경북대 시절 마라톤 대회에서 마라톤 특기생을 제치고 4년 연속 우승했다. 대구 팔공산악회 회원으로 활동, 1년에 150회 이상 산행을 하는 산 마니아이기도 했다.
그는 산악인 허영호 씨의 오늘이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982년 마칼루봉 등정 당시 당연히 등반 실력이 가장 뛰어난 성 박사가 맨 앞에 섰어야 했다. 그러나 성 박사는 조난 당한 이스라엘 산악인을 구해 하산한 직후라 마칼루봉을 오를 수 없었고 대신 허영호 씨가 앞장서도록 추천했다는 것.
성 박사를 만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풍부하고 치열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