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인물

소설가 이문열

이정웅 2007. 1. 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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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소설가 이문열
"요즘처럼 언어가 표독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소설가 이문열(59) 씨의 부악문원(경기도 이천)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부악문원은 이 씨가 무명작가 시절 겪었던 고통을 되새기며 좋은 환경에서 후배 문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사숙(私塾)이다.

  대구서 이천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어 용인에서 내린뒤 완행버스를 갈아타고 이천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다시 택시를 타고 시골길을 20여분 달린 끝에 겨우 부악문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씨가 이천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20여년.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그는 "고향 가는 길에 중간에 한번 더 들른다고 생각하고 장만한 집"이라며 "대구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미국에 체류하다 최근 귀국해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를 출간했다. 햇볕정책을 비롯해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이 소설 때문에 그는 일부에서 또다시 '보수논객'으로 지목돼 화제를 모았다. 이날도 KBS의 ‘TV, 책을 말한다’(2월 5일 방영) 촬영팀으로 인해 몇 차례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다.

   ***내가 왜 '보수 반동'인가***

  작가 이문열은 자신에게 각인된 '보수 반동'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곰곰이 생각했는데 그런 소리 들을 일이 없었다.”며 “그동안 난 늘 보호 밖에 있었고, 이 때문에 소외되고 가치박탈까지 경험하면서도 이 세계를 지워버리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알다시피 그의 아버지는 월북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연좌제의 고리에 묶여 고통 받았다. 이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은 했지만, 통째 파괴하거나 빼앗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보수성향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자신은 이 세상을 지키려고 '수고하고 노력한' 사람 중 하나이며, “그런 사람들을 쉽게 잊지 않고 있었기에 ‘보수 반동’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시대의 언어는 황폐화됐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는 질문에 ‘황폐화된 언어’를 들었다.

  “요즘처럼 언어가 표독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며 “참담한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하나의 예로 한 시민단체가 자신의 책에 대해 가한 ‘책 장례식’을 들었다. “작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식과도 같은 책을 불태우는데, 이것은 문화사적으로 폭거”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문인협회는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했다.

  “민중의 의식과 심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이 시대의 말”이라며 “이를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 문화이고, 정치인들의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도 한 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몇 차례 말로 인해 수난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의 강연도 그 중 하나. 당시 국내에는 ‘효순.미선이 촛불 시위’ 때 북한이 3천여 명의 간첩을 보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그는 “용공분자가 얼마나 되냐”는 청중의 질문에 "거의 없다"는 식으로 한 발언이었다고 했다. ‘책 장례식’과 관련해 터진 “너, 전라도지?”, ‘대동아 공영권 논란’ 등도 이의 연장선이다.

  “현재 대통령을 만든 진영의 일부에는 오늘날 언어의 황폐화, 심성의 황폐화를 불러온 세력이 있다.”며 자신이 그 초기 타켓이 됐다고 했다. 또 현 정권에 대해 여론이 등을 돌린 것은 “그 부메랑이 되돌아 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 세력이 5년간의 실패를 대통령에게 다 떠넘기고 새로 살아날 궁리만 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쟁을 원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잘못 가더라도 바람이 바뀌면 원상회복 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남한의 정당간부가 북한의 정당간부처럼 ‘전쟁을 원하십니까?’라고 ‘공갈’을 치는 상황이 그렇고, 젊은이들이 기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까봐 끔찍하다.”

  그는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햇볕정책은 평화통일 정책이 아니라 (그동안 소외된) 일부 남한 정치세력이 저지르는 참혹한 복수”라고 말했다. “북한을 이용해 절대 다수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며 “북한을 대신해 ‘공갈’치는 것을 보면 평화세력이 아니라 투항세력·조공세력이며, 이들이 남한의 중심세력이 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가회성(不可回性)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 핵에 대해서도 우려를 강하게 드러냈다. “북한의 핵 보유를 마치 통일이 되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처럼 일부 젊은 층에서 여기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며 “북핵으로 피해 보는 것은 결국 남한”이라고 했다. 또 일부 지식인들이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용도 폐기된 이론을 마치 경천동지할 진리인 양 주장하는 것도 심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정치권에 들어갈 의향은 없어***

   그가 보수 우익의 손을 들면서 이번 대선 정국에 참여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의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나의 재능을 작가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작가로서는 효율적이지만 정치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늦게 등단했지만, 빨리 정상에 오른 편이다. 그는 “봉우리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했다. 작가로서 최고봉에 오른 그가 뒤늦게 정치에 입문해 또다시 최고봉에 오를지는 미지수라는 말일까.

“한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근거 없는 자만이었다. 나도 다수 중의 한 표일 뿐… 이제는 마음을 조금 가볍게 가지겠다. 방관자가 아니라 견자(見者)이다.”

  그는 “이제 관중석에 올라 경기를 관찰자로 보겠다.”며 현 정치를 경기장에 비유했다. “경기에는 선수와 관중, 자원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그런데 지금 정치판은 스탠드에 있어야 할 관중들이 경기장에 내려와 선수처럼 뛰고 있다. 내라도 되돌아가 선수들에게 성원을 보내는 입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는 작품에 대한 비난을 받는 일도 적지 않았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386세대의 비난을 받았고, 앞서 발표한 ‘선택’은 반페미니즘 소설로 꼽혔다. 또 그의 소설이 가부장적이라는 비난도 일었다. 이에 대해 그는 거듭 ‘책 장례식’을 거론하면서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비난도 쉽게 한다.”고 했다.

  또 “다양한 작품 중에 녹아든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존재론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은 ‘사람의 아들’이고, 동양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것은 ‘황제를 위하여’, 가부장적인 것은 ‘선택’ 등 각 작품마다 톤이 다른데 이를 한꺼번에 싸잡아 비난만 하는 것도 ‘언어의 황폐화’라고 말했다.

   ***‘호모 엑세쿠탄스’ 15만부 팔려***

  이달 초 ‘호모 엑세쿠탄스’가 출간될때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것은 책이 묘사한 정치적 풍자 때문일까.

  “이 정부 하는 꼬락서니 좀 봐라. 취임 몇 달이 지났다고 벌써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소리가 나오냐?”, “아마도 386찌꺼기들이나 홍위병 세력의 요행수 국회 진출은 늘겠지만,”... .

  그러나 그는 이런 관심이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신예작가라면 책을 사고 싶은 흥미를 유발시키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문열 책이라면 대부분 한두 권은 읽었을 것이고, 책의 내용까지 소개된 마당에 독자들의 구입욕구가 당연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 정치를 풍자한 정치소설로 생각하는데, 그런 내용이 들어간 부분은 원고지 2천800장 분량 가운데 200장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다빈치 코드’처럼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제 독자들의 다른 독법을 요구하고 싶다.”

  출간 3주째의 ‘호모 엑세쿠탄스’는 15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어려운 출판계 현실에서 대단한 판매량이다. 그럼에도 그는 성이 차지 않는 눈치다. 이제까지 그의 소설 5종은 각 100만부 이상 판매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책이 나올 때마다 시비가 붙는 바람에 ‘선택’(1997년)과 ‘아가’(2000)는 기대에 못 미치는 30만부 선에서 그쳤다.

  그는 ‘호모 엑세쿠탄스’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재미도 있지만 (명성에 걸 맞는) ‘나이 값’을 하려고 애도 많이 쓴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김중기 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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