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인물

이상희 전 대구시장

이정웅 2006. 12. 8. 23:22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매일신문 2006, 12,15 기사)

이상희(李相熙·75) 전 내무부 장관은 "노는 사람이 이상하게 바쁩디다. 공직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지금 그러면 믿어주질 않죠. '백수의 과로사'가 이해됩디다."라며 최근 근황을 묻는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대구시장을 비롯해 ▷경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수자원공사 사장 ▷토지개발공사 사장 ▷산림청장 ▷경남·전북 부지사 ▷진주시장 등 그가 맡았던 굵직굵직한 공직만도 열 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란다. "현역 때도 그랬지만 퇴직한 지금도 남는 시간은 없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가장 많은 시간을 희귀자료를 수집하는데 할애한다. 금요고서방(대구)과 코베이회사(서울) 등 가끔씩 열리는 책 경매장은 물론이고 유명 서점은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미 6만여 권의 도서를 모았음에도 그는 "탐구열과 희귀도서 수집욕구는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고 전했다.

특히 정말 희귀한 자료가 가끔씩 나오는 책 경매장에는 묘한 마력까지 느낀다. "지난 주말, 한말(韓末)에 만들어진 주요 요정 소개책자를 포기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10만 원에서 시작한 금액이 백만 원을 넘어가자 포기했는데 정말 아까웠어. 끼니 걱정에 입양 보낸 자식 둔 부모 심정이 이해가더구먼."

이미 소장하고 있는 자료도 상당하다. 지방행정, 나무, 꽃, 문화, 세계 관광명소들의 항공사진 등 분야도 갖가지다. 한번은 언론사에서 이육사의 시 '대구시민의 노래' 소장 유무를 물어와 당시에는 "없다."고 했는데 최근 서고 구석에서 우연찮게 발견했다. "대구시조차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없던 귀한 자료인데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고 자책했다.

"대구·경북 자료는 기를 쓰고 수집해 왔다."는 그는 특히 고향 '성주'와 관련된 자료들에는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조선 숙종 때의 목판지인 경산지(경산은 지금의 성주)는 고향을 소개한 것이어서 샀고, 세계적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송강의 가사는 당시 간행지역이 성주라서 구입했다.

이어 그는 "경북의 임업상태를 보여주는 1926년 경북 '임상도'를 보면 기가 찰거다. 당시 활성 녹지를 나타내는 녹색부분은 소백산과 울릉도 일부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임상도는 현재 그의 손을 떠났다. 일 년 전 경북도청 산림과장의 요청으로 기증했다. '선뜻 줄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언젠가는 거기 가야할 자료였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 수집해 놓은 자료나 책들의 '진로' 문제를 놓고 고민이다. 자신처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게 희망이고 그런 사람이나 기관을 찾아 전달할 생각이다. "악착같이 수집해서 과감하게 기증하는 행동은 부부싸움 원인의 90%를 차지한다."며 "현재 수입은 대학이나 공기관 특강 강사료뿐이고 대부분을 아내가 주는 용돈에서 충당하기 때문에 안사람이 불편해 하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다음으로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합천 '이씨' 종친회 활동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억지로 회장직을 물려줘 불만이 많은데 "종친회 행사는 극히 의례적인 것으로 비문의 글자 한자를 놓고도 조금만 틀리면 '예전과 다르다.'며 원성을 산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 전 장관은 우리식물 살리기 운동본부 등 산림과 관계된 단체 7, 8개의 고문역할을 맡고 있다. 대학이나 지방 자치단체가 공원이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거나 자문도  한다.

현재 그가 참여하고 있는 봉사단체 중 고건 전 국무총리와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한가람회'가 있다. 현재도 활동 중이고 다음달 8일에는 고 전 총리와 경북 고령군 우곡면의 한 불우노인 시설을 방문해 위문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회원들을 중심으로 고 전 총리가 대선조직을 구축한다는 소문에 대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정치적 소신과 모임의 목적이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원로 공직자로서 대구시 공무원에 대한 당부는 "튼튼한 뿌리가 되라는 것"이다. "태풍 불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가지가 잘려나가도 따뜻한 봄이 되면 새 가지 나고 싹이 돋듯 공직자들이 버티고 있으면 혼란이 와도 국민들은 버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산림청장, 대구시장 '후배'인 김범일 시장에 대해서는 평가가 후했다. "항상 연구하고 고민하는 자세와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며 "앞선 시장들과는 다른 점이 많아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 "위정자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가졌거나 없거나, 모든 국민을 백성으로 생각해야지 강남에 아파트 가진자 등 특정부류를 괘씸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70년도 상경해서 산 단독주택 한 채가 현 재산의 대부분"이라며 "청와대 재직시 도시행정과 재정 쪽에 있었는데 당시 갖고 있던 정보로 땅 장사를 했으면 벌써 부자됐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최근 정부는 국토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예전에는 '국토 미화 사업' 등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주요 사업 중의 하나였지만 현재 관련 기관들은 구조물 조성 등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그러면서 길거리에 쓰러진 나무를 보면 이유를 묻고 즉각적인 대책마련을 지시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국토 가꾸기는 자신으로 하여금 '꽃'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산림청장을 하면서 꽃에 대한 관심을 키워 온 것으로 아는데 잘못된 사실"이라며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공원조성이나 대규모로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자연유산인 '꽃'을 재발견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꽃을 사랑하면 악을 품을 수 없고, 나쁜 일을 하려고 해도 어렵게 된다. 온 국토가 꽃으로 덮이면 국민 전체가 선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나를 꽃에 묶어두는 이유다." 그가 꽃을 좋아하는 진짜 속내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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