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기계면 봉계리는 신라 왕손인 경주 김씨 “치동문중(致洞門中)”의 집성촌이다. 입향조 일암(逸庵) 김언헌(金彦憲)이 청도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울창한 산림을 손수 벌채하고 터전을 잡고 벌치동(伐致洞)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벌 자의 어감이 거칠게 느껴져 치동(致洞)이라 불러 오늘에 이른다. 그때가 1636년(인조 14) 일암의 나이 27세 되던 늦가을이었다. 윗대는 충청도에 살았다. 연산, 중종 조에 전라도 관찰사, 대사헌, 이조참판을 지내고 문간(文簡)으로 시호를 받은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이 그의 고조이다. 그러나 이후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다가 그나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어졌다. 따라서 사헌부 집의를 지낸 아버지 김업(金嶪)이 가족을 이끌고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