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태조 이성계의 야망과 마이산 청실배나무

이정웅 2007. 9. 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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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와 마이산 청실배나무

 

 

 

늙고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치이고 흔들리며 살아왔어도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공직에 입문한 필자와 달리 실업계로 진출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는 친구로부터 내일 뭐 하느냐는 전화가 왔다.” “마이산에 있는 나무를 보러 간다.”고 하였더니 폭염(暴炎)에 그것도 나무 한 그루를 보기 위해 무려 3시간, 왕복으로 6시간이나 걸리는 그곳까지 가느냐고 어이없어하는 투였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사업하는 그에게 6시간은 수백만 원이 왔다 갔다 할 귀중한 시간일 것이나 빡빡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필자에게는 나를 다시 돌아볼 시간이자,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이산도 초행은 아니었다. 몇 차례 다녀와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은수사에서 100일 기도하고 그날 밤 꾼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으로 만든 자 즉 금척(金尺)을 주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을 계시하자 그 기념으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

다만 그전에 간 것이 도움 되었다면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라(천연기념물 제330)’이다. 도시가 고층화와 과밀화되면서 열대야와 미세먼지는 피할 수 없다. 바람길을 살려두고, 녹지를 넓히면 좋으나 지가(地價)가 비싸 그렇게 하기 어렵다. 녹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던 필자는 고민 끝에 담쟁이덩굴로 벽면을 덮으면 복사열과 미세먼지를 저감(低減)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묘사업소(대구수목원 전신)에 지시하여 묘를 생산하여 학교나 기관 단체, 군부대, 시민 등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파리, 모기가 끓고 겨울철 잎이 떨어지면 건물이 지저분하게 보인다며 기피(忌避)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때 마이산의 줄사철나무를 보고 힌트를 얻어 줄사철나무, 송악을 추가 보급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여 벽면녹화를 장려했었다.

버스에 올라 푸른 들판을 보며 갔던가 싶어는 데 잠시 잠든 사이 어느덧 영·호남의 도계(道界) 육십령이다. 조금 후 진안에 도착 콩국수로 점심을 먹고 마이산행 버스를 탔다.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고 내려 닿은 곳은 수마이산 아래에 있는 은수사였다.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는 참으로 준수했다. 시중의 먹는 배와는 다른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그랬는지 몰라도 많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노거수를 보았으나 수령이 640여 년으로 높이가 18, 가슴 높이 둘레 2.8, 가지가 동서남북으로 각기 7~9m, 이렇게 수세가 강건한 나무는 처음 보았다.

청실배나무를 심은 태조 이성계는 무인(武人) 집안 출신으로 1335(공민왕 4)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많은 전공을 세우고 1388(우왕 14) 마침내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위하도로 출정명령을 받게 된다. 이때 총사령관에는 8도 도통사에 최영, 좌군 도통사에 조민수, 우군 도통사에 이성계가 임명된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으며”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염려가 있으며”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들어 조민수와 함께 회군하여 개성을 함락하고 최영을 축출한 다음 우왕마저 물러나게 하고 창왕을 내세워 정권을 잡는다.

또한 정몽주와 손을 잡고 창왕을 폐위(廢位)시키고 정창군 요()를 왕으로 앉히니 이가 고려의 마지막 공양왕(恭讓王)이다.

13927월 조준, 정도전, 남은, 이방원 등이 추대하니 몇 번의 사절 끝에 마침내 왕좌에 올라 새로운 시대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청실배나무를 심은 뜻이 비로소 결실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마이산은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하고 그 후에는 용출봉(湧出峰)이라고 불렀는데 태종이 남행하다가 산 아래 이르러서 관원을 보내 제사를 올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으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꿈에 신인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재단하는 금척(金尺)을 받은 이야기와 더불어 마이산은 태조와 태종과 깊은 인연이 맺었다.

청실배나무는 700여 년 동안 자연재해와 병해충으로부터 견뎌낸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다. 어느 네티즌의 후계목을 양성해 놓았다는 댓글을 보며 좋은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드나 이는 민간이 할 일이 아니라 국가기관에서 유전자를 보전하여 배나무의 품종개량 등에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