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무엇을 위한 정의 구현인가

이정웅 2008. 3. 10. 22:50
무엇을 위한 정의구현인가
참 어이없는 일이다. 전 국민이 일 한번 제대로 해보라고 뽑아준 대통령이 막상 자기가 일 부릴 일꾼조차 쓰고 싶을 때 제때 못 쓰고 있다. 누굴 쓸까며 인재 고르느라 부릴 때를 못 맞추고 있거나 아직 마땅한 인물을 못 찾아서 제때 못 쓰고 있다면 어이없단 소리 날 리가 없다. 도대체가 새 정부의 국정인사 통치권자가 변호사인지 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의 소수 신부들인지 알 수가 없기에 하는 말이다. 국정원장 인사청문회가 계속 헛돌고 있어서다.

정의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게 돌아간다. TV를 보며 사람들은 이구동성 혼잣말처럼 되묻는다. ‘삼성 특검하는 데 신부들이 왜 나서지?’ ‘정의구현사제단이 뭐하는 단체지?’ 이런 물음은 주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의문이다. 가톨릭을 좀 아는 사람들도 옛날 군사 정권 때 지학순 주교님이 잡혀가는 등 반민주적 정치폭력이 있었을 때 正義(정의)를 구현한다는 정신으로 들고 일어선 일부 사제그룹의 민주운동 조직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신자 중에도 ‘왜 나서지?’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잖다. 정치권이나 지식계층이 정권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던 그 시대에는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신과 역할은 共感(공감)을 얻고 있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주체가 신부님들이라는 신분적 신뢰를 바탕으로 뭣이든 그분들이 나서면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정의’로 추인되는 측면이 있다. 과거 그분들이 구현하고자 싸웠던 정의는 실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정의로운 정의였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구현하고 싶어 할 만한 가치와 格(격)이 있는 정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특검 떡값 의혹 제기는 왠지 국민들의 가슴에 ‘신부들이 왜 나서지?’ 하는 찜찜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재벌이 고위공직자에게 돈으로 로비하는 짓은 정의롭지 못한 게 분명하고 그걸 나무라자는데 찜찜하긴 뭐가 찜찜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틀린 반박은 아니다. 적어도 김용철이란 변호사가 끼어있지 않고 사제단의 독자적인 증거 확보와 증거 제시에 의한 의혹 제기였다면 찜찜해하는 쪽이 잘못일 수 있다.

그러나 폭로 제기 전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짚어봐야 할 게 있었다. 의혹을 귀띔해준 사람의 모습이 과연 사회정의로 볼 때나 인간적 도의를 기준할 때 보통사람들이 정의롭다고 인정할 만한가 하는 점이다. 비리와 싸우는 검사의 직업을 가졌던 인물이 백억원 가까운 봉급을 받을 땐 비리에 가담 동조 내지 묵인하다가 밀려난 뒤엔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것을 두고 보통사람 양심은 ‘정의’라 하지 않는다.

정의를 제대로 구현하겠다면 특검을 믿고 증거를 다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며 수사기관의 입에 귀 기울여야 옳다. 국민정서와 양심에 생선뼈처럼 걸리는 이상한 정의는 구현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비뚤어진 정의는 구현될수록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에 背德(배덕)과 비양심이 자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의구현이 아니다.

따라서 사제들이 정의로움을 의심받는 자의 입만 빌려 모호한 폭로 제기를 한 것은 과거 민주투쟁시대의 정의구현정신에 맞지 않았다. 이 땅의 전체 가톨릭 사제들의 뜻도 아니다. 사제는 누군가에게서 의혹이 보이고 느껴질 때 그 사람이 가장 상처가 덜 나는 쪽으로 바라보려 애써야 한다. 그것이 종교지도자의 矜恤(긍휼)의 자세고 신앙적 사랑이다.

의혹의 시선을 부정적인 쪽으로 돌리고 그것도 정의롭지 못한 동기를 지닌 제3자가 증거 없이 던진 의혹 수준의 폭로를 무차별 중계 폭로하는 것은 정의구현이란 이름으로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왜 정의를 위해 폭로했다는 데도 義人(의인)이라 부르지 않고 ‘저 친구는 왜 못 잡아넣나’라는 사람들이 생겨날까를 생각해 보라….

대통령 취임 한달 가깝도록 변호사, 사제단 기세에 제사람도 제때 못 쓰고 있으니 국정이 삐걱댄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일단 특검에 맡겼으면 떠들지 말고 기다리고, 특검은 특검대로 신속히 제대로 밝힌 뒤 김 변호사도 수사하라. 그것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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