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개발바람에 스러지는 역사의 골목

이정웅 2008. 3. 3. 23:14
개발 바람에 스러지는 역사의 골목
대구읍성의 맥 동아쇼핑~계산성당 일대
▲ 20세기 대구 민중의 역사를 간직한 계산성당~동아쇼핑(옛 성밖골목) 일대가 도심 개발에 밀려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사진은 현대백화점 예정부지 철거현장으로 노숙자가 배회하는 모습(위)과 대문을 도둑맞아 임시로 출입구를 막은 집(아래).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대구의 옛 역사를 간직한 골목길들이 도심 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최근 옛 대구읍성의 흔적을 되찾자는 취지로 읍성 돌 모으기 행사가 야심 차게 시작됐지만, 다른 한편에선 개발의 그늘에 역사의 흔적들이 하나 둘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취재진이 지난달 28일 전문가와 동행 답사한 동아쇼핑~계산성당 일대는 대구의 20세기 민중생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예전 대구 읍성의 중요한 맥(脈)이다. 특히 현대백화점 부지 바로 옆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유생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영남대로'. 대구읍성 바로 밖으로 길이 나있어 '성밖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던 영남대로는 100년 전만 해도 대구에서 가장 긴 골목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대백화점 예정 부지 일대는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고풍스런 한옥들은 목조 뼈대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허물어져 있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 담장마다 붉은색 페인트로 휘갈겨 쓴 ‘철거’, ‘진입금지’ 표시가 살풍경스럽다. 한 인부는 “요즘 대문을 떼어가는 도둑부터 고철 절도가 극성을 부리고 노숙자들까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홍장길(72) 골목길해설사 단장은 "백화점 건물이 들어서면 지금도 길이 좁은 이 일대가 폐허로 묻혀 버릴 것"이라며 "한때 이곳이 영남대로였다는 사실도 잊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일대는 또 임진왜란 후 조선으로 귀화했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살았던 동네로 뽕나무밭이 형성돼 '뽕나무 골목'이라고 불렸지만 그 명성 역시 현대백화점 그늘 아래로 사라지게 됐다.

한때 대구의 명물 골목길 중 하나였던 '떡전골목' 역시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염매시장 일대 떡집 37개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2개가 현대백화점 부지에 포함되면서 자리를 비우게 된 것.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이라는 거대 상권의 틈바구니에 낀 '염매시장'의 존립여부도 가늠하기 힘들다. 1970년 성밖 시장으로 출발해 호황을 누렸으나 1984년 동아쇼핑이 들어서면서 300개에 달했던 점포가 현재 50여곳까지 줄었고 현대백화점의 등장으로 다시 반토막이 나게 됐다.

홍 단장은 "지난 6년간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계산성당~동아쇼핑 일대에 대구 역사가 이만큼 많이 간직돼 있는지 몰랐다"며 "도심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런 옛 역사의 자취들을 보존하고 가꿔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08년 03월 03일 -

'대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위한 정의 구현인가  (0) 2008.03.10
미숙이의 옹골찬 도전  (0) 2008.03.06
대구의 운  (0) 2008.03.01
15세기 대일국제무역항 화원  (0) 2008.01.09
대구 십경  (0) 2007.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