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靈山 팔공산 최고봉 비로봉 '시민의 품으로'

이정웅 2009. 4. 23. 20:25
[달라지는 팔공산] (상)비로봉 개방
 
 
 
 
▲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 주위에는 온통 폐철조망이 뒤엉켜 있어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 비로봉 정상에 이곳저곳 세워져 있는 방송사 통신탑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군위군 부계쪽으론 볼 수 없다.
대구의 영산(靈山) 팔공산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등산로가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각종 국제대회를 앞두고 개발 계획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환영할 부분도 있고 걱정스런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팔공산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본다.

비로봉은 말이 없었다. 쇠말뚝과 철조망에 몸을 내어준 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묵묵부답이다. 콘크리트와 군홧발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돼 신음할 힘조차 없었을까? 비로봉은 세월에 묻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비로봉에 올라보니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은 금지된 땅이었다. 20일 취재진은 팔공산순환도로를 타고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도로를 따라 올라가 비로봉 바로 아래 공군부대에 닿았다. 헌병에게 신분조회를 받은 뒤 부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전날 군부대에 연락해 미리 출입허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전 10시쯤 비로봉(해발 1천192m)에 오를 수 있었다. 신라왕이 천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보였다. 손에 잡힐 듯해 보이는 동봉(1천168m)과 서봉(1천153m) 사이로 동구 용수동이 내려다보였다. 비로봉은 갓바위~동봉~비로봉~서봉~파계봉~한티재가산바위까지 20km 걸쳐 이어지는 팔공산 능선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팔공산의 최고봉이다.

뒤로는 오도암의 하얀 절벽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군위군 부계 쪽도 한눈에 펼쳐졌다. 동행한 대구등산학교 장병호 교장은 "동봉과 서봉에서는 군부대와 통신 시설물에 가려 군위 부계 쪽을 볼 수 없다"며 "비로봉에 오르지 않고선 팔공산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고 했다.

비로봉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봉을 팔공산의 주봉(主峰)으로 여기는 시민들이 많다. 이 때문인지 최고봉이라는 위엄과 천제를 지냈다는 권위는 온데간데 없다.

벌겋게 녹슨 철책들이 비로봉 곳곳에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비로봉 아래쪽에는 깨져 있는 크고 작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능선을 따라 어지럽혀져 있었다. 빨간색 페인트로 군데군데 칠해진 낙서까지 눈에 띄었다. 방송사 통신시설에서 들려오는 '우웅'하는 굉음을 들으며 10m 아래 능선으로 내려가자 어른키를 훌쩍 뛰어 넘는 높이의 철책들이 겹겹이 쳐져 있었다. 철책 너머에는 또 하나의 철책이 비로봉을 가두고 있었다. 장 교장은 "1990년 중반쯤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쓰지도 않는 군사시설들이 비로봉 일대에 흉측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시민의 품으로…

조만간 비로봉이 철조망이 걷히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1960년대 말 군사보안, 통신시설 보호 등의 이유로 닫힌 이후 40년 만이다.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 측은 "이미 1억원 상당의 예산도 확보해뒀으며 이르면 올해 7월쯤 대구 방향쪽으로 쳐져 있는 철책을 거둬낼 것"이라고 말했다.

비로봉은 지금껏 군사안보와 통신시설 보호 명분으로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돼 왔다. 현재 비로봉 정상에는 KT 등 통신회사와 MBC, KBS, TBC 방송국의 송신탑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구등산학교 총동창회가 비로봉 개방 서명운동을 펼쳤고,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가 공군부대 등에 협조 요청을 보내는 등 비로봉을 되찾자는 여론이 일면서 비로봉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 등산로의 단순한 개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군부대 철수, 통신 시설 이전 등 온전한 비로봉의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장 교장은 "비로봉은 최고봉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대구시민이 느끼는 역사성과 자부심의 상징"이라며 "등산로 개방을 단초로 이 일대를 태고적 모습으로 서서히 복원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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