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밤 도심에 평화로운 시위가 가능할까

이정웅 2009. 9. 26. 11:07

밤 도심에 평화로운 시위가 가능할까

이동한·사회부장

헌법재판소는 24일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집시법이 제정된 지 47년 만에 야간 옥외 집회를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게 됐다.

집시법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5·16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62년 말이었다. 4·19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해서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을 겪은 다음이었다. 당시 헌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 금지를 규정해서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제를 금지했다. 하지만 집시법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 또는 시위 절대금지, 야간 또는 특정장소에서의 옥외 집회 시위 금지 조항 등을 담았다.

야간 옥외 집회 금지 조항이 지금처럼 조건부(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로 허용된 것은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89년이었다. 이른바 87년 민주화 시위와 88년 총선 이후 여소야대 체제에서 대통령 단임제 헌법을 만들고 나서다. 사회 전체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집회의 자유를 확대하자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조항은 이후 20년간 공공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1994년 야간 옥외 집회·시위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소송이 제기됐으나,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그랬던 헌재가 15년 만에 입장을 바꿔 이번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의 하나이다. 국민들이 국가의 의사형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권리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동시에 기본권이라도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경우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공공성이 강한 만큼 위법 상황으로 발전할 위험성도 높은 기본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본질적인 부분이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많은 나라가 '공공의 이익'을 내세워 일정부분 제한을 하는 이유이다.

이들 국가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제한한 것은 불법 폭력 시위로 인해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난 뒤이다. 사회적으로 불법 폭력 시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것이 법에 반영된 것이다.

헌재가 야간 옥외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불법·폭력 집회를 허용하자는 뜻이 아니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설명을 붙인 것은 사회 일각의 불안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된 선진국들도 불법시위를 막기 위한 제한과 단속을 강화했는데, 우리의 시위문화가 과연 그럴 수준에 이르렀느냐는 걱정이다. 많은 국민들은 야간 옥외 집회들이 불법·폭력으로 얼룩진 사례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집시법을 헌법 정신에 맞게 개정하자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이르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황이다. 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지는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집시 문화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본인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중요하며, 본인이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곤란하다.

법과 현실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법이 현실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법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을 앞서 가는 경우도 있다. 이번의 헌재 결정이 폭력·불법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시위 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