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인 최완수(67)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그동안의 겸재 연구를 집대성한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을 펴냈다. 본문만 200자 원고지 3673장 분량에 도판 206장, 삽도 14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는 "마침 올해 겸재(1676~1759) 서거 250주년을 맞아 작심하고 마무리를 지었다"며 "이제 겸재 그림을 이해하려면 이 책 하나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책은 겸재의 그림뿐 아니라 가계도와 가정형편, 교우관계, 학맥 등 개인사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 상황까지 분석해 겸재를 입체적·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최 실장이 교열만 18차례 봤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
1965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던 그는 1966년 고(故)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소개로 간송미술관에 들어왔다. 겸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최완수 실장은 "간송 선생이 겸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겸재 작품을 수집해놓았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했다"고 했다.
"나는 간송 선생을 뵌 적도 없어요. 내가 간송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인 1962년에 이미 돌아가셨거든요. 그분의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 겸재 연구에 몰두했고, 간송미술관은 겸재 전시회를 11회나 열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겸재의 그림은 알면 알 수록 오묘한 세계”라며“지난 40년간 겸재 연구에 몰두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행복했다”고 했다./간송미술관 제공
왜 하필 겸재였을까. 그는 "조선시대 문화가 형편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제 강점기 근대사학의 영향으로 우리 사학계는 조선왕조 500년이 정체됐다는 시각이 만연해 있었죠. 이를 바로잡으려면 조선시대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 500년의 문화사 중 절정을 이루는 18세기의 진경(眞景)시대'를 조명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진경시대의 핵심인물인 겸재를 연구하게 된 거죠."
'진경산수화'란 말을 창안한 주인공인 그는 "한 문화의 수명은 대략 250년에 불과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도 노쇠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현명해서 조선왕조 전반기 250년은 중국을 닮기 위해 주자성리학을 심화시켰고, 인조반정 이후 후반기에는 조선성리학이 발아해 진경(眞景)시문학과 진경산수화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집스럽게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그는 늘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이다. 대학에 몸담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아와 그의 밑에서 공부한 후학이 수십 명에 이르러 '간송 학파'를 형성하고 있다. 최완수 실장은 "내가 평생을 걸고 밝혀낸 결과를 담은 이 책을 바탕으로 앞으로 겸재 연구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나는 앞으로 추사 김정희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