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

이정웅 2009. 10. 8. 16:51

조선시대 문화의 힘을 보여줬어요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 40년 연구 집대성 '겸재 정선' 펴내

"간송(전형필)과 겸재(정선)의 만남이 숙명이었듯이 내가 겸재를 만난 것도 숙명이었죠. 지난 40년 동안 겸재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최완수(67)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그동안의 겸재 연구를 집대성한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을 펴냈다. 본문만 200자 원고지 3673장 분량에 도판 206장, 삽도 14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는 "마침 올해 겸재(1676~1759) 서거 250주년을 맞아 작심하고 마무리를 지었다"며 "이제 겸재 그림을 이해하려면 이 책 하나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책은 겸재의 그림뿐 아니라 가계도와 가정형편, 교우관계, 학맥 등 개인사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 상황까지 분석해 겸재를 입체적·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최 실장이 교열만 18차례 봤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
"세상에 알려진 겸재 관련 문집은 거의 다 독파했어요. 이제 남은 것은 낙수(落穗) 정도지요. 이전에 냈던 겸재 관련 저서는 작품 성격에 따라 그림을 나눠서 한 화첩에 있던 작품이 흩어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편년체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1965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던 그는 1966년 고(故)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소개로 간송미술관에 들어왔다. 겸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최완수 실장은 "간송 선생이 겸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겸재 작품을 수집해놓았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했다"고 했다.

"나는 간송 선생을 뵌 적도 없어요. 내가 간송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인 1962년에 이미 돌아가셨거든요. 그분의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 겸재 연구에 몰두했고, 간송미술관은 겸재 전시회를 11회나 열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겸재의 그림은 알면 알 수록 오묘한 세계”라며“지난 40년간 겸재 연구에 몰두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행복했다”고 했다./간송미술관 제공

왜 하필 겸재였을까. 그는 "조선시대 문화가 형편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제 강점기 근대사학의 영향으로 우리 사학계는 조선왕조 500년이 정체됐다는 시각이 만연해 있었죠. 이를 바로잡으려면 조선시대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 500년의 문화사 중 절정을 이루는 18세기의 진경(眞景)시대'를 조명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진경시대의 핵심인물인 겸재를 연구하게 된 거죠."

'진경산수화'란 말을 창안한 주인공인 그는 "한 문화의 수명은 대략 250년에 불과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도 노쇠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현명해서 조선왕조 전반기 250년은 중국을 닮기 위해 주자성리학을 심화시켰고, 인조반정 이후 후반기에는 조선성리학이 발아해 진경(眞景)시문학과 진경산수화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집스럽게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그는 늘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이다. 대학에 몸담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아와 그의 밑에서 공부한 후학이 수십 명에 이르러 '간송 학파'를 형성하고 있다. 최완수 실장은 "내가 평생을 걸고 밝혀낸 결과를 담은 이 책을 바탕으로 앞으로 겸재 연구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며 "나는 앞으로 추사 김정희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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