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민주운동을 돈으로 셈하다니

이정웅 2009. 12. 14. 19:43

민주운동을 돈으로 셈하다니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풀 꺾이고 났을 때 ‘한국이 세계 1위인 별난 것들’이란 제목의 풍자가 떠돌았었다.

‘세계 최고’ 거리는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전기가 잘 들어오는데도 세계에서 양초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제멋대로 짜 만든 뉴스 만들어 전 국민에게 마구 방영해도 아무도 책임 안 지는 나라’ ‘대통령 알기를 초등학교 반장 정도로 알고 경찰을 허수아비처럼 얕잡아 보는 나라’ ‘공산국가도 아닌데 좌파들이 판치는 나라’….

그 중에서 정곡을 찌른 풍자는 국회의원들을 비꼰 풍자로, ‘하는 짓거리나 실적에 비해 일당(日當)이 최고로 비싸게 치이는 나라’였다.

민생 법안 등 심의는 손도 안 대고 있으면서(4천732건 적체) 제 지역구에 생색 낼 예산 증액 요구액은 9조 원이 넘는다는 요즘의 국회를 보노라면 ‘세계 최고의 비싼 일당’ ‘세계 최고의 이상한 국회’란 비아냥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국회’의 ‘이상한 정신세계’는 더더욱 이상하다.

2`28민주화운동 지원 예산의 경우를 보자. 정부와 행정안전상임위에서 통과시킨 2`28 기념관 건립 국고 지원 비율(80%)을 예결위를 앞두고 60.3%로 깎아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그들(전문위)의 주장은 2`28 기념관 국고 지원 비율이 마산` 부산 등에 비해 너무 높으므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광주 5`18 기념 문화관 건립 때 국비 지원을 100%로 했었던 사실은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2`28민주화운동은 60.3%짜리 민주운동이고 5`18광주항쟁은 100% 수준의 민주운동이라는 논리로 오해될 수도 있는 예산 삭감 논리다. 더구나 예산 지원 규모를 % 비율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들 주장대로 따져도 대구 2`28 기념관 경우 총 사업비가 100억 원이었으니 80% 다 들어줘 봤자 80억 원이다. 반대로 광주 5`18 기념 문화관에 준 예산은 162억 원, 대구 2`28의 두 배가 넘는다. 마산3`15의거와 부산민주항쟁도 50~56%라지만 당시 요구액이 133억~160억 원이었으니 실제 지원된 예산은 양쪽 다 약 80억 원 선이었다.

유독 대구 2`28 예산만 적거나 같은 액수인데도 %가 많으니 적으니 딴죽 걸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은 물론이고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를 돈(예산)의 비율로 비교하고 재단하는 자체부터 민주정신을 욕보이는 것이고 지역 논란을 부추기는 망국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건국 이후 최초로 고교생들이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해 일어났던 2`28민주의거는 사실상 뒤이어 일어난 3`15, 4`19, 5`18등 민주운동의 효시였음에도 국가 지원은 거꾸로 가장 늦게 받았다. 그것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2`28 40주년 기념식에 참석, ‘2`28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라고 선언하고 2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던 게 처음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민주운동의 효시’라며 공약한 그 돈조차 아직 78억 원은 9년째 못 받고 있다. 노 정권 때도 5년 내내 계속 떼먹고 넘어갔다. 지금 뒤늦게나마 겨우 80억 원 지원해 달라는데 그걸 깎아야 한다고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못 받은 78억 원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 80억 원은 신규 지원이 아니라 10년 전 대통령이 약속한 돈을 받는 셈이다. 따로 100억 원쯤 더 타내도 공평한 민주화사업 지원이 될까 말까다.

표 얻는 선심 예산은 9조 원이나 서로 타내려 아웅대는 판에 현대사 최초의 민주운동의 효시라는 대구 어린 학생들의 민주의거 정신은 돈 깎아내리기로 폄하하는 국회의 정신적 황폐를 무엇으로 심판해야 할 것인가. 10년 세월 이리저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할 것 없이 치이고 눌리고 소외돼 왔던 대구, 이제는 민주의거 정신마저 돈으로 모욕당하고 역사적 긍지를 짓밟혀야 하는가. 대구 국회의원들이 몇 명인가! 대구정신의 뿌리인 2`28 정신과 그 정신을 기리고 물려줄 기념관 짓자는 예산 하나 못 지킨다면 금 배지가 부끄럽다. 4만여 2`28 회원들이 지켜볼 것이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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