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정웅 2009. 10. 26. 20:42

[수암칼럼]
 
 
 
공무원노조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노동부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를 불법노조로 규정하고 행정안전부는 뒤따라 지방자치단체에 전공노가 불법단체이니 가차 없이 엄정하게 대처하라는 압박과 함께 노조위원장을 즉각 파면해 버렸다. 정부 쪽의 단호한 처단을 보면 전공노란 조직은 나쁜 조직이고 법적으로도 온전치 못한 고약한 집단으로 비친다. 전공노는 나쁜 조직인가?

본란은 그 평가를 공무원 복무 규정 등 복잡한 법리(法理)나 공직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신 다른 생뚱한 기준으로 좋은 집단이냐 나쁜 집단이냐를 판단해 봤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공노(일부 지역)는 그다지 좋은 집단이 아니다’다. ‘좋지 않은 집단’으로 보는 판단의 기준이랄까 이유는 ‘애국가’ 때문이다. 애국가를 전공노 집단의 선악(善惡) 기준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몇 달 전 ‘통일원생(願生)’이란 이름의 나이 드신 독자 한 분이 애국가 가사를 고쳐야 한다며 이런 편지를 보내 오셨다. ‘동해물이 마르고 어쩌고 하니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라 부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어쩌고 하니 중국이 백두산 원시림을 자기네 땅처럼 깔아뭉갠다. 그런데도 김정일이나 남한의 대통령, 국회는 중국에 대고는 꿀 먹은 벙어리이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성적이고 성긴 논리로도 들리지만 나름 애국가에 대한 애정과 나라 사랑의 열정이 엿보이는 편지였다.

그분은 자신이 권하고 싶다는 가사도 적어 보내왔다. ‘천지산(天池山) 동해물은 영산(靈山)이요 용수(龍水)로다-한얼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태성역(泰聖域) 삼천리 화려강산, 밝은 사람 밝은 나라 영원토록 보존하세-’

장황하게 노(老) 독자의 애국가 이야기를 쓴 것은 일부 지역 전공노 조직이 그들의 통합 준비회의 공식 행사 때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않겠다고 선언한 패덕과 노인의 애국심을 대비(對比)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공직자이면서도 자신이 태어나고 살고 있는 조국의 애국가 대신 운동권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를 불렀다.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는 국민의례 때는 주먹을 내지르는 자칭 ‘민중의례’란 걸 치렀다. 앞으로도 전공노 행사 때는 애국가 안 부르겠다고 선언한 그들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조차 ‘열사에 대한 묵념’으로 대신했다. 특정 지역 지부의 이단이었지만 전공노의 숨겨진 얼굴이다. 유치해 보이는 듯한 애국가 가사까지 써 보내며 내 나라를 더 부강한 민주국가로 만들자고 호소한 노인의 얼굴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5만여 전공노 조합원들의 얼굴이 다 그런 모습으로 물들었거나 물들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설마 설마 두다 보면 어느 날 국경일 행사장에 애국가는 사라지고 임을 위한 행진곡만이 울려 퍼질 날이 오지 않는단 보장도 없다. 그들은 애국가 안 부르는 이유를 ‘이 나라가 애국할 나라가 아니고 애국가 부르는 세력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행진곡을 부른다’고 했다. ‘이 나라의 사회 성격을 애국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변혁시킨 뒤에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도 했다(언론 보도).

공직자가 제 월급 받는 나라를 충성할 만한 나라가 못 된다고 말하는 집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길은 두 가지다. 절대다수 충직한 공직자들을 더 물들이기 전에 단호하게 손을 쓰는 것과 투쟁의 빌미를 주지 않을 만한 깨끗한 정부, 신뢰받는 통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정이념에 세뇌된 자가 직무를 공정히 할 리 없고 따로 조종당하는 데가 있는 자는 국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끊임없이 정부의 약점과 과오를 헤집어내 ‘봐라, 애국할 수 있는 성격의 나라가 아니잖느냐’며 충돌거리를 만들고, 사회를 흔들고, 투쟁을 선동할 것이다. 따라서 솎아내는 처벌도 중요하지만 나쁜 풀이 돋아날 빌미나 틈을 주지 않는 토양과 국격(國格)을 가꾸는 것도 위험한 변혁을 꿈꾸는 세력의 발호를 막는 유효한 방법이다.

전공노, 민중의 힘을 얻고 싶으면 먼저 애국가를 불러라.

金 廷 吉 명예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