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도둑들도 道가 있다는데

이정웅 2009. 11. 30. 20:31

도둑들도 道가 있다는데
 
 
 
한국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할 만큼 물질적으로는 차고 넘친다. 유전(油田) 구멍 하나 없으면서도 자동차 보유 대수는 가구당 1.7대를 넘어서고 도처에 파헤쳐 놓은 혁신도시마다 수십조 원을 쏟아붓고도 다시 4대강, 세종시에 수십조를 또 퍼부어 넣을 수 있을 만큼 부티를 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풍족해 보이는 한국 땅에서 닳아가는 벼루처럼 사위어지고 모자라져 가는 것이 있다. 나타나서 안 될 것은 넘치고 사라져서는 안 될 가치는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도(道)다.

세종시의 갈등과 분쟁, 철도의 파업 등을 보면서 새삼 오늘의 道를 생각하게 된다. 道란 무엇인가. 道를 본디 글자로 풀이한다면 한줄기로 뻗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걸어서(?=끌 인) 궁극적으로 가장 윗부분(首=머리 수)에 닿는 것을 의미한다. 근원과 바탕, 깨우치고 정통하여 시작과 끝이 맞춰지는 것으로도 풀이한다.

그렇다면 道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道는 향교의 서가(書架)나 산속 선인(仙人)들의 사유(思惟) 속에만 있지 않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공동체 속에 살아 있다. 가르침에는 사도(師道)가 있으며 집안에는 효(孝)와 부(婦)의 道가 있고 무(武)의 세계에는 무도(武道)가 있다. 장사에서는 상도(商道)를 말하고 술 마시는 데조차 주도(酒道)가 있듯, 나라를 다스림에는 치도(治道)와 패도(覇道)가 있다. 나라와 공동체 속에 그런 道가 살아 있으면 그 국가와 민족은 강성하고 道가 사그라진 시대에는 문명이 쇠락했다. 중세유럽의 기사도(騎士道), 영국의 신사도(紳士道), 일본의 무사도(武士道), 신라의 화랑도(花郞道) 등이 역사 속의 해답이다.

지금 한국에는 道가 있는가? 불량 먹을거리와 불공정 가격 담합의 비리(非理) 등은 商道가 무너졌음을 말하고, 일부 전교조의 일탈은 師道가 무너지고 있음을 말하며 돈을 위해 혈육을 살해하는 패륜은 孝의 道가 빛을 잃어 감을 말하고 있다. 전선의 철책이 뚫리는 것도 武道의 무너짐이다. 한마디로 ‘무도시대’(無道時代) ‘결도(欠道)의 나라’가 돼가고 있다.

도척(盜?)같은 도둑도 道를 따랐다는데 한낱 도둑보다도 못한 나라로 떨어지자는 것인가. 제자가 ‘도둑에게도 道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세상에 道 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4가지 ‘도둑의 道’를 말했다는 도척의 고사가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재물을 불의(不義)로 탐내지 않는 것이 첫째의 道 곧 성(聖)이요, 맨 먼저 담 넘어 들어가는 것이 두 번째 道 즉 용(勇)이며, 훔친 뒤엔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을 세 번째 道로 의(義)라 하고, 훔친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으로 네 번째 ‘도둑의 道’라 말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해도 갈등의 불이 쉬 꺼지지 않는 국론 분열을 보며 우리에게는 어떤 道가 부족해서 저렇게 목숨 걸듯 싸우는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商道니 師道는 제쳐두고 治道 한 가지만 두고 도척의 道에 비유해 보자. 선심성 표를 얻으려 거짓 약속을 한 것은 불의하게 남의 것을 탐낸 것이니 첫 번째 聖의 道가 없었음이요, 처음엔 덮어두다가 어쩔 수 없을 때서야 뒤늦게 사과를 한 것은 불이익을 무릅쓰고 먼저 들어간 勇의 道가 아니었고, 반발 무마를 위해 이것저것 한곳에 모아 주고 보상까지 더 챙겨보겠다는 선심은 더더욱 공평하게 나누는 仁의 道가 없음이다.

늦었지만 그만큼 사과했으면 받아들여질 것도 같은데 반발은 더 거세지고 저항이 사그라지지를 않음은 그처럼 治道가 도둑의 道에도 미치지 못한 듯한 미진함이 남아서일지 모른다. 왕의 사과에도 감히 계속 저항하고 고개 치드는 것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권력이나 세 치 혀의 말솜씨가 아니라 바로 道임을 말해준다.

세종시에 황금의 성을 쌓는다 해도 물질만 넘치고 道가 없으면 한낱 모래성이다. 4대강, 세종시, 철도파업, 모든 갈등과 분쟁을 통합의 길로 이끌어 가려면 먼저 아래위, 계층 곳곳에 道가 있는 나라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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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