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전 현장 대구여고 건물을 중구청이 사용하고 있었다.
조성 후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당시 문시장은 공원을 더 넓히기 위해 중앙도서관 이전까지도 검토했었다.
대구 정신을 대표하는 두 사건을 말한다면 국채보상운동과 2, 28의거일 것이다. 전자는 일본의 경제적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2,000만 동포가 3개월 동안 금연하고 그 절약한 돈으로 외채(外債)를 갚자는 운동이고, 후자는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집권하려는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데 기여한 운동이다.
이 두 사건은 개인의 평안보다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 선 대구시민의 용기 있는 행동을 만천하에 공개한 자랑스러운 운동이다. 그러나 시민의 무관심은 물론 정부조차 외면하는 바람에 이 자랑스러운 운동이 시민들의 뇌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대구상공회의소가 창립 90주년을 맞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꺼져 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사업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건립하려 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을 두고 어떤 학자는 지역과 성별과 연령, 신분의 귀천을 뛰어 넘어 많은 국민이 동참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운동이자 3.1운동의 모태라고 한다. 따라서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사료를 보관 · 전시할 기념관 건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건립하고자 하다 보니 공원조성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전직 시장은 물론 일부 시민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 시 당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대구의 새로운 명소다. 그러나 조성하기 전에는 중구청과 중앙도서관이 있었고, 한국은행대구지점은 이미 허가가 되어 막 착공하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중구청을 옮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은 금싸라기 같은 비싼 땅을 팔아 적자에 허덕이는 시 재정에 보태지 아니하고 공원을 만든다고 많은 비난을 했었다. 이런 점에서 공원주변에 있는 땅을 매입하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손쉽다고 하여 공원을 잠식하려는 것은 다소 모순이 있다. 따라서 온갖 비난을 혼자서 감내하며 공원을 조성한 전직 시장의 입장은 이해할만 하다고 본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인근 지역의 토지매입에 최선을 다 해보고 그 것이 정 어렵다면 공원 부지활용문제를 공론화 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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