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을서 27명이 단체 옥고…고령 도진리 '3·1의 전설' 사흘간 만세궐기 당시 성인 거의 붙잡혀…고령 박씨 문중 중심 | ||||||||||
하지만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사는 고령 박씨 문중 사람들에게는 3·1운동은 아직도 피가 펄펄 끓어 넘치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고초를 겪은 조상들의 항일 정신을 후손들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고령 박씨 문중 인사들을 비롯한 주민 27명이 단체로 옥고를 치른 3·1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3·1운동 1개월여 뒤인 4월 6일. 고령 박씨 10세인 승로 조(祖) 묘지에 흙을 얹는 개사토 무렵 26세 후손인 박재필(당시 35세)은 일족과 가복(家僕)들에게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면서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제의했다. 이날 저녁 박재필은 마을 주민 100여명을 규합해 나팔을 불고 태극기를 흔들며 도진리에서 5㎞ 떨어진 고령경찰서 개진면 지서까지 행진했다. 만세운동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다음날인 7일 일본 경찰은 도진리에 들이닥쳐 박재필 등 만세운동 주동자를 검거하고 주민들을 위협했다. 만세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일본 경찰은 마을 주민을 강제로 모아 시국 강연을 열면서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격분한 박채환(당시 37세)은 강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주민들에게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만세를 선창했다. 이에 주민들이 호응하자 일본 경찰은 박채환을 체포했다. 이 소식을 접한 박기로(당시 28세)는 강 건너 우곡면 대곡리로 달려가 한이군, 한용발, 박용학 등 뜻있는 청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마을 주민 50여명과 함께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또다시 만세운동을 벌였다.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자 일본 경찰은 경찰관 수십명을 동원해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동자는 물론 주민 모두를 연행, 대구형무소에 수감했다. 당시 40가구였던 도진리 마을에 어른들이 없어졌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으로 미뤄 마을의 모든 성인들이 만세운동에 가담했고,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 연행된 주민 가운데 박재필과 박채환, 박기로 등 27명(도진리 20명, 이웃 마을 7명)은 재판에 넘겨져 그해 5월 대구지방법원에서 박재필은 징역 1년 6월, 박채환과 박기로, 박영화 등 3명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23명은 6개월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징역형을 받은 주민 중 김시윤(당시 15세)과 한광용(당시 18세) 등 두 명은 10대의 어린 나이였다. 고령 박씨 문중을 중심으로 한 만세운동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다 2005년 국가자료원이 일제강점기 법원 재판기록을 전산 처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박재필과 박채환, 박기로, 박영화 등 4명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박영우와 박정열 등 고령 박씨 문중 참여자와 김경술과 강복이 등 마을 주민 참여자 19명에겐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시윤과 도원섭 등 4명은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고령 박씨 문중이 중심이 돼 3일 동안 펼친 만세운동은 최근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박씨 문중과 향토사학자들에 따르면 도진리 만세운동은 문중 차원의 3·1운동으로, 독립운동사에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 박영우의 후손인 박준열(86·도진리)씨는 "잊혀질뻔한 조상들의 만세운동이 늦게나마 조명을 받아 다행"이라고 했다. 당시 마을 주민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정만도의 후손인 정화춘(77·도진리)씨도 "요즘에는 손자, 손녀들에게 증조 할아버지의 항일운동을 자랑스럽게 얘기해 준다"고 털어놨다. 고령 박씨 도진종친회는 조상들의 항일정신과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독립만세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추진위원회 박돈헌(62) 총무는 "저희 문중과 마을 주민들이 궐기한 기미년 만세운동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 정신에서 발로한 사건"이라며 "조상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받들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애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장을 만들기 위해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령·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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