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은주 기획취재부장
그런데 그가 들으면 더 흥분할 만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며 경기 여주 이포의 보(洑) 건설현장에서 농성을 하던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쓰레기를 불법 매립했다가 들통이 났다. 여주군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수박·옥수수·빵 등 음식물 쓰레기 3~5㎏을 불법매립했다는 자인서를 받았다. 대신 이들은 같은 구덩이에서 수박 껍질 등과 함께 발견된 통닭과 뼈, 비닐봉지 등은 매립한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고 한다. 이들은 곧 2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등 행정조치를 받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 3~5㎏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환경이 제1의 가치로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100㎏이든 1㎏이든 쓰레기를 강가에 파묻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닐봉지 하나에서 '썩지도 못하는 지구'를 염려하고, 화려한 청계천을 바라보며 '인공 개천의 한계'를 말하는 환경론자라면, 이런 행위가 얼마나 자기모순에 해당하는지를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몰랐다면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이러고 보면 애초에 이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가 정말 환경을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운동이라는 '대의'가 사소한 일상의 과오쯤은 충분히 상쇄해 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농성장을 빠져나와 음식물분리수거 봉투를 사서 그걸 담고, 그걸 또 일정한 구역에 갖다 놓는 일 같은 것을 하기엔 그들은 너무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경을 지키는 일이란, 사실 매우 쩨쩨하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환경운동뿐 아니라, 대부분의 혁명·혁신·개혁이 실은 매우 쩨쩨하고 사소한 '자기 절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적잖은 수의 386세대는 '큰 자유'를 말하는 이들이 '쩨쩨한 정의'를 무시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80년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선배들로부터 '쁘띠 부르주아 근성'이라고 비판받고, 다음날에는 "선배 잠수(도피) 자금이 필요하니 잘사는 네가 돈 좀 가져오라"는 얘기를 들었던 한 친구는 운동권에 염증을 냈었다. 그 많던 '운동권 대학생'이 운동에 천착하지 못한 이유는 이런 모순에도 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건 어쩌면 '입으로 하는 운동'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2년 전,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도심으로 몰려나온 시위대 역시 각종 쓰레기와 페인트, 스티커로 광화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이후 어떤 반성도 없었다. 치사하고 쩨쩨할 정도로 기본 원칙을 지키는 운동가는 대체 어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