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진석 경제부 정책팀장
"대전 제2청사로 옮길 때는 그나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가는 것이었지만, 세종시는 허허벌판인데…."
재미없는 얘기는 하기 싫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요즘 공무원들에게 세종시가 그렇다.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그래서 생각하기 싫은 그런 일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방법이 없어진 일이다. 2012년에 시작해 2014년까지 9부 2처 2청이 세종시로 옮기게 된다. 공무원 1만440명의 집단 이주(移住), 가족까지 합치면 수만 명의 이동이라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질 참이다.
세종시로 내려갈 공무원들의 말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에 만나면 국정 효율성이 떨어지게 될 거란 얘기를 많이 한다. "국회가 열리면 장관부터 주요 간부들은 모두 서울로 오는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는 짓을 해야 한다", "국정 효율을 높여도 국제 경쟁이 어려운 마당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 저녁 자리에 술이 한 잔 돌면 목소리가 축 처진다. 한숨부터 쉬어야 얘기가 돌아간다.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에 남겨놓고 두 집 살림을 해야 할지,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면 교육 여건은 어떨지 고민거리로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 부처의 한 과장은 "기혼 여성들도 많을 텐데 직장을 가진 남편들이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세종시가 '기러기 특별시'가 될 것"이라면서 쓰게 웃었다.
같은 부(部)의 여성 사무관은 "남편이 툭 던지듯 '우리도 주말부부 해야겠네'라고 하더라"면서 "애가 아직 어린데 내가 데리고 가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식경제부의 한 과장은 "내가 도사(道士)는 아니지만 예언하겠다. 아이가 중학생 이상이면 거의 100% 세종시 기러기가 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웃는 얼굴이 우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 여건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학교나 학원이 어떨지, 공무원 자녀들로만 채워진 학교에서 아이들이 겪을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기획재정부의 고참 과장은 "우리 집은 나 혼자 내려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인데 세종시 내려갈 무렵이면 중학교 올라갈 때라 못 내려간다"고 했다. 그는 "집사람도 직장을 다니는데 세종시 때문에 직장 그만두고 내려갈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한 6급 직원은 "이런 것 생각해 봤느냐"고 물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공무원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기업들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거니까 애가 학교에 가면 모두 공무원 자녀들일 것 아니냐"면서 "누구 아빠는 국장이고 누구 아빠는 과장이고 이렇게 되면 눈치가 빤한 아이들인데 교육상 뭐가 좋겠느냐"고 했다.
이런 고민들의 마무리는 예외 없이 이렇게 끝이 난다. "솔직히 설마설마했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다. 다음 대선이든 뭐든 또 어떤 일이든 생겨서 결국 안 갈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세종시 문제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정작 세종시로 옮겨가야 할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상한 공무원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