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임경당 김열과 율곡 이이선생의 호송설

이정웅 2010. 9. 6. 07:24

 

 

 상임경당(강원도유형문화재 제55호) 뒷산의 송림

 

 임경당 김열의 덕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지었다는 임경당

 

 임경당 김열의 부탁으로 율곡선생이 지어준 호송설

 

 임경당 김열사당

 

 임경당 현판 추사의 부친인 유당 김노경이 썼다.

 

 임경당 사랑채

 

 임경구장(臨鏡舊장)이라는 현판(왼쪽)으로 보아 이 곳이 원 임경당이 아닌가 여겨진다.

 

임경당 김열과 율곡 이이선생의 호송설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어 우리나라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호학파의 종조로, 훌륭한 어머니의 표상인 신사임당의 아들로,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의 한 분으로, 심지어 누구나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5천원권의 지폐(紙幣)에도 올라있는 율곡(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소나무를 보호해야할 이유를 적은 호송설(護松說)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사로운 친구의 부탁으로 지은 것이기는 하지만 숲 가꾸기 등 힘든 일을 천시했던 당시에 고매한 유학자가 직접 소나무를 보호해야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집 주변에는 그의 아버지 김광헌(金光軒)이 조성한 100무(畝, 3,000평)의 소나무 숲이 있었고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소나무를 보호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따라서 어느 날 찾아온 친구 율곡에게 소나무 숲을 가리키며

‘나의 선친이 손수 심은 것이라네. 우리 형제 모두 이 집에서 저 소나무 숲을 울타리로 삼고 살고 있네. 그런데 숲을 볼 때마다 선친의 은혜를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내 능력으로는 보전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으니 그대가 이를 잘 보전하도록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써주면 사당(祠堂)의 벽에 걸어 놓고 자손들로부터 늘 보게 하여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겠네.’ 라고

하여 써 준 글이다. 그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면 이러하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말이 어찌 보탬이 되겠는가. 자네의 아들이 자네의 뜻을 알고, 자네의 손자가 자네 아들의 뜻을 알아 멀리 백세까지 이르더라도 뜻으로써 서로 전하면 반드시 영원토록 자취나 흔적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 아닌가.

만약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영예롭게 이어받아 효도를 다하고 형제간 우애가 깊어진다면, 조선(祖先)의 물건에 대하여 아무리 토막 난 지팡이나 헤어진 신짝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귀중하게 간수하여 공경할 것인데 하물며 손수 심으신 집 주변의 소나무는 더 아끼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혹 교육이 잘 못 되어 양심을 꽁꽁 묶어서 없애버리고 그가 부모보기를 남 보는 것과 같이 한다면 소나무 숲 보호도 게을리 할 것이다. 말로서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글로서 가르치는 것은 뜻으로써 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말이 어찌 보탬이 되겠는가.’ 하였다.

(중략)

‘비와 이슬을 먹고 자라고 서리와 눈으로 다져져 견실하게 자랐으니 잠깐만 눈에 지나쳐도 감회를 일으켜 두려워 조심하고 부모를 생각하여 비록 한 가지 한 잎의 작은 것이라도 아껴서 상하고 해를 입을까 두려워할 터인데 더구나 가지나 줄기를 범할 수 있겠는가. ’

이상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호송설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해를 돕기 위해 나름대로 짜깁기한 것으로 독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명문장 호송설이 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쉬운 우리말로 완역되지 못한 점도 아쉽지만, 임연당의 부친이 일찍이 소나무의 중요성을 알고 조성했다는 숲의 위치도 어딘지 복원되지 아니한 것 같다. 뿐만 아니다. 숲을 보전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임연당의 유적도 임연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성산면 금산리 445)과 상임연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6호, 성산면 금산리 620) 두 곳으로 어느 것이 먼저지은 것인지? 기록을 찾을 수 없고, 또한 어떤 까닭으로 두 곳으로 나눠져 있는지? 알 수 없는 등 관리상태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또한 호송설의 배경이 된 숲은 강릉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한 소나무 인공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강릉시가 내걸고 있는 구호 ‘솔향강릉’의 시발지라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장을 복원하고 그 곳에 호송설 비를 세워 강릉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산림청 또한 마찬가지다.

나무를 심어 국토를 푸르게 하여 이 강산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공이 큰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역할도 중요하지만 조선 중기 400여 년 전 시골의 한 선비가 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숲을 조성하고 그의 아들이 어버이가 물려준 그 숲을 보전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공해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미담이다.

사료를 발굴해 자료집을 만들고 일대를 공원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추기 : 이 후 수습한 율곡의 호송설 전문을 게재합니다.

 

호송설(護松說)

 

 

김군(金君) ()은 정산(鼎山) 아래에 살고 있다. 집의 주위를 빙 둘러 소나무를 심었는데, 맑은 그늘이 널리 퍼져 수백 묘나 될 성싶다. 김군이 이를 가리키면서 나더러 말하기를, “이는 우리 선인(先人:선친)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지요. 우리 형제가 모두 여기에 집지어 살고 이 소나무로 울타리를 삼았으니, 소나무를 보면 어버이를 사모하는 정이 스스로 그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세대가 멀어지고 전승이 없어지면 도끼를 대어 베는 일을 면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여 그대의 몇 마디 말을 얻어서 가묘의 벽 위에 걸어 자손에게 보이려 하오.” 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말이 어찌 보탬이 될 수 있겠소, 그대의 아들이 그대의 뜻을 알고 그대의 손자가 그대 아들의 뜻을 알아 멀리 백세까지 이르더라도 뜻으로써 서로 전하면 반드시 영원토록 민멸하지 않겠지요. 만약 당구(堂構)를 실추(失墜)하지 않게 하여 효제(孝悌)를 일으키면 조선(祖先)의 물건에 대하여 아무리 도막난 지팡이나 헤어진 신짝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또한 귀중하게 간수하여 공경함을 일으킬 것인데, 하물며 손수 심으신 집 주변의 수목이겠소. 만약 혹시 교육이 잘못되어 양심이 곡망(梏亡)하면 그 부모 보기를 또한 진월(秦越)처럼 할 것이니, 하물며 문밖의 식물쯤이겠소. 말로써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써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글로써 전하는 것은 뜻으로써 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말이 어찌 보탬이 될 수 있겠소.” 하였다.

김군은 말하기를, “그대의 이 말은 그러하거니와 다만 사람이 갖추고 있는 인지의 본성은 하늘에서 얻은 것인데, 이것을 완전히 확충하는 사람도 진실로 적지만 이것을 아주 끊어버리는 사람도 또한 드물지요. 보통사람의 성품이란 경계하여 주면 양심을 발하고 경계하여 주지 않으면 어두우니 나는 보통 사람을 경계 계발시켜 어둡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요. 저들 그 마음을 곡망하고 부모를 진월(秦越)같이 대하는 자는 금수일 뿐이니 내가 비록 효제로써 자손에게 기대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보통 사람으로써 기대할 수야 없겠소. 자손들도 또한 마음이 있으니 어찌 금수로 자처(自處)하는 데까지야 이르겠소. 아마 그들도 이 말에 감발(感發)하는 것이 있겠지요.”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훌륭하오. 이 말씀이여! 이것으로써 자손에게 훈계를 전해주면 충분하겠소. 아버지가 돌아가심에 그 서책을 차마 읽지 못하는 것은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그 배권(杯圈)으로 감히 먹지 못하는 것은 입김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 하물며 덮여져 있는 소나무는 재배한 손안에서 나왔음에랴. 비와 이슬로 적셔져 자랐고 서리와 눈으로 다져져 견실하게 되었으니, 잠깐만 눈에 지나쳐도 감회를 일으키어 출척(怵惕)하고 처창(悽愴)하여 비록 한 가지 한 잎의 작은 것이라도 늠연히 오히려 상해될까 두려워할 터인데, 더구나 가지나 줄기를 범할 수야 있겠소. 진실로 금수의 마음을 갖은 사람이 아니라면 반드시 경계할 줄을 알 것이니, 그대는 면할 수 있겠지요.” 하였다.

나는 이것으로 인하여 느낀 것이 있으니, 대저 선조가 고생과 노력을 축적하여 반드시 한 세대로써 기약하여야 비로소 가업을 이루는 것인데, 자손이 불초하면 무너뜨림의 빠름이 한 해를 다 기다릴 것도 없을 것이오. 이 소나무도 북돋아 심은 지 수십 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인데 도끼로 벤다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것이니, 어찌 이와 같은 것이 가업을 이루기는 어렵고 파괴하기는 쉬운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소. ! 이것이 내가 느낌이 있는 까닭이라오.

 

출처 : 󰡔국역율곡전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