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 탐방 '歲寒의 의미, 추사를 묻는다'
'우상' 옹방강의 저술·글씨 서재에 모으고 바위에 새겨
"추사체 만들어내느라 벼루 10개, 붓 1000개 닳아"
조선후기의 서화가이자 금석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 1856)는 고졸(古拙)한 아름다움이 특징인 추사체(秋史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외척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19세기 조선에서 학자와 예술가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길 위의 인문학' 열 번째 탐방은 추사의 예술세계와 이면의 아픔을 따라가는 '세한(歲寒)의 의미, 추사를 묻는다'였다. 온종일 보슬비가 따라다닌 궂은 날씨였지만 100여명의 탐방단은 11일 추사의 고향인 충남 예산을 찾아 추사기념관~추사고택~월성위김한신묘~화순옹주홍문~백송~추사묘~화암사~예산도서관~수덕사(성보박물관)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추사를 가슴 깊이 새겼다.
추사는 끝없는 여행을 통해 학문을 이룬 인물이었고, 길에서 얻은 지식을 귀하게 여겼다.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도 200여년 전 추사처럼 길을 걸으며 산과 바위를 보고, 글씨와 그림을 읽었다. 첫 탐방지인 추사기념관은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을 존숭했던 추사의 학문관을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추사 전문가인 고문헌연구자 박철상씨는 '보담재(寶覃齋)'라 새긴 추사의 인장(印章)을 가리키며 "연예인을 좋아하는 요즘 10대처럼 추사도 어릴 때부터 옹방강의 저술과 글씨를 서재에 모아두었고, 서재의 이름도 옹방강의 호인 담계(覃溪)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 ▲ 추사 김정희는 24세 때 생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백송(白松)의 씨앗을 가지고 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었다.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이 추사가 심은 백송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 ▲ 추사 김정희의‘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
탐방단은 수덕사 내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돼 있는 '무량수각' '시경루' 편액을 감상하며 이날의 탐방을 마무리했다. 조재순(45·서울 잠원동)씨는 "추사가 글씨를 잘 쓴 명필인 줄만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한 글자를 써도 기교가 아니라 혼을 담아 쓴 분이란 걸 알게 돼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몇몇 중년 여성 참석자들은 백송 앞 잔디밭에서 발견한 네잎 클로버를 이름표에 끼워넣고 "이것도 '길 위의 인문학'과 추사 선생이 주시는 추억"이라며 소녀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