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이야기

울릉도 역사

이정웅 2011. 1. 16. 17:29

울릉도 역사

울릉도가 사서(史書)에 맨 처음 등장한 것은 512년(신라 지증왕 13) 하(아)슬라 주(지금의 강릉)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 복속시켰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청동기 철기시대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석묘, 무문토기 갈돌, 갈판이 등이 발견되고 있어 기원전 후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옥저조 즉 246년(고구려 동천왕 20)에 언급된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한 섬에 이르렀는데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고, 칠월이면 처녀를 골라 바다에 빠뜨리는 풍습이 있다’ 는 섬이 이병도 박사는 울릉도라고 한다.

 

 

 

 

                  삼국사기 지증왕 13년 6월조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속시게 했다는 기록)

 

 

그러나 이사부가 정복한 이후 약 400여 년 동안 울릉도는 다시 기록에서 사라졌다. 그 후 930년(고려 태조 13) 우릉도(芋陵島)에서 백길(白吉), 토두(土豆) 두 사람을 보내 여러 차례 방물(方物)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018년(현종 9)동북 여진족들의 노략질로 피폐해진 우산국에 이원구를 파견하여 농기구를 보내주었으며, 1022년(현종 13) 우산국의 민호 중에서 여진의 약탈을 당하고 도망하여 온 자들을 예주(오늘날 영해)에 편입시켰다고 했다.

이런 기록을 볼 때 후기에 와서 다소 달라지긴 했으나 고려는 울릉도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폈다.

1417년(태종 17) 조선조정에서는 김인우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하여 섬에 살던 사람들을 육지로 쇄환하고 그 후에도 이 일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섬을 비워두자 울릉도는 왜인들의 무대가 되었다. 1693년(숙종 19) 안용복이 조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왜인과 충돌하면서 외교 분쟁이 발생한다. 1696년(숙종 22) 안용복이 2번째 도일(渡日) 백기주 태수와 담판하여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하도록 했다. 이 후 1882년 고종이 (고종 19) 검찰사 이규원을 시켜 섬을 조사케 하고 그의 건의에 따라 다음 해인 1883년(고종 20) 육지에서 모집한 개척민 16가구 54명이 입도한 것으로 쇄환은 막을 내렸다.

 

 

 

                                                           너와집

                                                              투막집

1900년 울릉도를 강원도 울도군으로 승격

1907년 경상남도 울릉군으로 개편

1914년 경상북도로 울릉군으로 소속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