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을 세계의 강으로 | ||||||||||
대구와 경북은 곳곳이 명소고, 구석마다 모퉁이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석굴암도 있고, 팔공산 갓바위도 있고, 경주 고분, 불로동 고분도 있다. 대구를 방문한 내외국인들에게 이런 명소를 소개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곳을 비롯해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소, 그리고 대구시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명소를 소개한다면 더욱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봄기운이 완연한 금호강변을 걸었다. 인터불고호텔 앞의 화랑교에서 출발해 망우공원, 동촌유원지, 해맞이공원, 아양교, 동촌 쪽의 강둑을 거쳐 다시 화랑교까지 가는 길이었다. 금호강의 모습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해맞이공원에서 본 금호강의 경관은 정말 일품이었다. 해맞이공원 언덕에 가면 조선조의 문인 서거정 선생이 금호강을 노래한 다음과 같은 시비가 있다.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한가히 오가며 갈매기와 노닐다가 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오호가 어디뎌냐 이 풍류만 못하리'(琴湖淸淡泛蘭舟 取此閑行近白鷗 盡醉月明回?去 風流不必五湖遊). 서거정 선생은 금호강을 대구 10경 중 제1경이라고 칭송했다. 서거정 선생의 시비 앞에서 금호강과 그 주변 경관을 보면서 금호강을 세계적 명품 강으로 만들고 금호강변 일원을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와 생활이 어우러지는 대구의 대표적인 국제적 관광지로 개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호강변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도 있다. 동총유원지 옆 망우공원에는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 육지에는 곽재우 장군이 있어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망우공원에는 순국선열탑도 있으며 영남제1관문도 우뚝 서 있다. 금호강 북쪽에는 팔공산의 높은 기상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팔공산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은 신라가 수도를 옮기려 했던 명당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금호강변은 시민생활의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휴식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동촌유원지가 있고 새해가 되면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면서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공원이 있으며 이 지역 최고급 호텔도 있다. 동촌 쪽 금호강변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스포츠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둔치가 있으며 강변생태공원도 있다. 호텔 쪽에서 바라보는 금호강 둔치는 이곳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장소가 맞기는 한가 싶은 느낌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화랑교 상류의 습지는 또 얼마나 풍성하고 멋진 생태계인가.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금호강변에는 밤을 새워도 끝없을 만큼 이야기가 있고, 사람살이가 있다. 세계적인 도시들은 아름다운 항구나 명품 강을 갖고 있다. 우리도 금호강을 세계적 강으로 만들어 보자. 금호강은 이미 갖가지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생태공원이다. 물새들이 먹이를 찾아 강물 위를 날아다니고, 새의 그림자에 깜짝 놀란 물고기가 황급히 몸을 숨기는 생명이 꿈틀대는 곳이다. 그뿐인가. 고단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사람살이가 깃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금호강은 오직 관광지로서 존재하는 동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나이 지긋한 남자가 건강을 위해 산보를 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지는 살아있는 공간인 것이다. 조금만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는 강이다. 우리들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세계적 도시의 명품강 유람선에 관광객이 모여들듯이 금호강에 멋진 유람선 띄워 내외국인들이 대구를 이야기하고 기억하게 하고 찾아오게 하자. 그리고 그들에게 금호강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래서 대구를 방문하고 떠난 그들이 굳이 사진첩을 꺼내 펼치지 않아도, 금호강의 풍경을 떠올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그날 봄볕을 받으며 걸었던 금호강변은 말 그대로 대구의 제1경이었다.
노동일(전 경북대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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